부석사 답사

굴 속의 시간 2010. 6. 30. 09:46


부석사 답사 (6/28)

부석사에 다녀왔다.

무량수전으로 오르는 길, 계단과 석축들을 눈여겨 보려 했다. 그런데 사진은 별로네.

강의실에서 석축에 대해 공부할 때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던 것 세 개가 불국사의 석축과 부석사의 석축, 종묘의 석축이었다. 부석사는 익히 알다시피 무량수전까지 오르는 길에 제법 오르막을 탄다. 화엄사상에 맞춰 공간을 배치했다 설명을 하면서 9단 석축과 3개의 문으로 10가지의 수행 단계를 상징하는 거라면서 말이다. 화엄경의 10품을9단의 석축으로 끊어준다 했고, 그 10품을 크게는 세 단계로 나누어 세 개의 문으로 구분한다.

불국사의 석축이 자연석과 장대석의 이단 가구형식을 띄고 있고, 종묘 정전의 석축이 장대석만을 이용한 석축이라면 부석사의 석축은 그야말로 자연석만으로 쌓은 것으로,다시 부석사를 찾게 되거든 석축 하나, 계단돌 하나도 유심히 보라 했다. 큰 돌들 사이에 작은 돌을 끼워넣은 난석쌓기를 했기 때문에 부석사의 석축은 퇴물림을 줄 수가 없었고, 그 대신 면 자체를 기울여 쌓아단면으로 봤을 때는 사다리꼴 기울기를 갖는다며 말이다.

계단을 오를 때도, 아, 힘들다, 힘들다만 하지 말고 계단의 양식을 잘 보며 오르면 나름의 재미가 있다 했다. 석축도 그러하거니와 계단을 놓은 방식도 폭이 좁은 계단과 넓은 계단, 그리고 석축바깥으로 계단을 쌓은 것과 석축 안으로 파고드는 것 등 계단의 모습에 다양한 리듬감을 주었다며 말이다. 때로는 아랫계단보다 윗계단이 좁아서 몰입감을 크게 했다 하고,계단이 석축 바깥으로 나왔다가 안으로 파고들었다 하면서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하는빛의 조절 또한 있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석축에서 잘 볼 것은 배수 시설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짧은 석축에서는 물길이 석축을 둘러가게 만들었고, 긴 석축은석축 내부에 배수구를 두고 있다는 점도.

글쎄, 그런데 사진에서는 그러한 특징이 될만한 것들을 잘 잡지 못한 것 같다.살짝 그런 생각으로 긴장을 하며 오르느라 그랬는지 무량수전까지도금세 올라 버렸다. 예전에 단풍 구경한다며 다닐 때는멀기도 하네 하면서 한참을 갔던 것도 같은데. 게다가 이번에 갔을 때는 회전문 복원 공사를 한다면서 어느 구간의 계단은 아예 막아놓기까지 했다. 저 쪽으로 돌아가라고.



범종루로 올라가기 전 동석탑과 서석탑 한 쌍의 석탑이 있었다. 사진에서 본 것과도 비슷하고, 안내판에도 부석사 삼층석탑이라 써 있기에 아아, 얘가 그 유명한 보물인가 보다 하고 자세히 보며 갔는데, 보물인 부석사 삼층석탑은 저 위에 있었다. 크기도 얘보다 훨씬 커. 그러나 양식이나 형태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형적인 신라시대 삼층석탑의 모습. 이 석탑 역시 천 년 세월을 넘게 버텼으니 깨지거나 갈라지고 틈이 난 부분들이 많았다. 석탑의 해체 보수를 공부하면서 기단과 옥개부의 이격이랄지, 아니면부재의 이탈 같은 내용들을 떠올리면서 옥개부의 하부와 탑신 상부의 면이맞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겠는지, 기단 내부의 적심 구조는 어떻겠는지를 생각하곤 했다. 만약에 이 탑 해체 수리를 해야 한다면 가설덧집은 어떻게 설치해야 할지, 가설 공사는 어찌해야 할지, 해체 부재의 보관과 이동은, 그랬을 때 주의해야 할 점들은…….


작은 삼층석탑들이 있는 곳을 지나 법고와 목어 같은 것을 매어 놓은 누각을 지났다. 누상주와 누하주 사이로 귀틀구조를 짜고 있는, 누하진입을 하게 되어있는 누각 건물. 그 아래로 지나면서 보니 귀틀목과 마루 청판 사이가뒤틀리거나 들떠 있는 곳에는 고임목들로손보아 놓은 것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어떤 귀틀들은 신재로 새로 교체해넣은듯한.


오를 때도합각부가 정면에 있어 조금 이상하다 싶었는데, 오르고 나니까 아아, 이 건물은 전면이 팔작이고 후면이 맞배로 구성되어 있는 지붕이었다. 어느 글에서 보기로 저 위 안양루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배가 산으로 날아가는 듯한 형상이라더니 과연 그러했다.사진 하나를 당겨서 찍어본 건 익공 사이간포 자리에 놓인 화반들이 협칸의 것과 퇴칸의 것이 모양이달라.


그 다음에는 다시 계단을 올라 안양루를 지났다. 화엄교리로 보자면 10품의 마지막 단계를 지나는 셈. 안양루의 누하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먼저 석등이 보이고, 그 뒤로 무량수전이 서 있다.고려시대에는 예불 행위를 불전 바깥에서 했기 때문에 무량수전 앞 마당이 좁기 때문에 이처럼 상층의 마루가 마당의 바닥면과 평평하게 되어 있어 그 예불 공간으로 쓰이게 했다던가. 극락을 뜻하는 무량, 그리고 안양.

홀쭉하고 날씬하며 하대석에는 복련이, 상대석에는 악련이 봉근하게 초각되어 있다. 사각의 지대석과 팔각의 하대석, 팔각 기둥 모양의 간주석과 상대석, 화사석과 옥개석, 상륜. 이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은 법주사 사천왕 석등, 보림사 석등과 더불어 통일신라시대 전형 양식을 지닌 석등으로 꼽힌다. 고려시대에도 이와 같은 양식이 계승되어 무량사 석등이나 금산사 석등, 나주 서문석등과 같은 전형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가 화사석이 커지고 화려해지면서 자연히 간주석은 짧고 굵게 바뀌면서 고복형(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실상사 석등, 임실 용암리 석등) 석등으로 바뀌는 것이 커다란 흐름이겠다. 물론 각 시대마다 이형 양식은 따로 있기 마련. 통일신라 시대에는 간주석 대신 사자 두 마리가 상대석을 받치고 있는 쌍사자 석등(법주사 쌍사자 석등,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들이 보인다. 고려시대에 가서는 화사석이 방형으로 구성된 방형 양식(관촉사 석등, 통도사 석등) 같은 것이 보이기도 하며, 통일신라 쌍사자 석등과는 다르게 사자 두 마리가 하대석 자리에서 엎드려 있는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이나 타원의 화사석과 화사창을 보이는 군산 옥구 발산리 석등, 조선시대 장명등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 신륵사 조제존자 석종 앞 석등 같은 것도 보인다. 그 밖에도 화사창 두 개를 나란히 낸 대구 부인사 일명암지 석등이나 보제존자 어머니상을 중대석 자리에 두고 있는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앞 석등 같은 것이 있다.조선시대에 가면 사찰의 석등은 별로 없고, 주로 왕릉 앞에 세운 장명등이 많은데 이것들은 간주석이 매추 짧아지면서거꾸로 상대석과 하대석, 옥개석 들이 두꺼워지면서 과다한 장식이들어가 있는 모습들을 보인다고 했다.

무량수전 앞에 섰다.

무엇부터 봐야 할까 하다가 일단 눈에 들어오는 것부터 보자 한 것이 소심하게도 기단부터 보았다. 우주와 탱주가 없는 가구식 기단. 아이러니하게도 백제계인 익산 미륵사지 터에도 이처럼 우주, 탱주가 생략된 가구식 기단이 사용되었다고 했다. 지대석은 어떻게 놓였는지, 면석은 어느정도 크기로 해놓았는지, 갑석은 또 얼마나 덮고 있는지, 그냥 한 번 더 다시 눈으로 확인을 하고 싶었다. 아무리 그러한 내용들 인이 박히도록 외우고 있다 해도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은 확실히 달랐다. 그래봐야 별 것도 아니지만.

기단 위에 박석을 깔아놓은 것도 보고,자연 주초가 아닌 가공 주초를 쓰고 있는 모습도 다시금 확인을 하고, 주초와 주초 사이 고막이 초석을 쓰고 있는 모습도 보아두고.

그렇게기단부와 초석 부분을 중심으로 보면서 건물둘레를 돌다보니 뒷면 우협칸 쪽 초석 하나가 무지하게 큰 걸 썼구나 하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들고간 문화재연구소의 도면을 보니 도면상에도그 커다란 초석이 표시되어 있는데, 도면으로 보면서는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그러다보니 입면도 뒷면부터 본다. 판문과 살창으로 처리되어 있는 고려시대 전형적인 입면 구성. 마치 봉정사 극락전의 전면과 같은 구성 모습이다. 판문 아래에는 신방목이 보이기도 하고.

무량수전은 귀솟음이 적용된 대표적인 건물이다. 도면에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표현되어 있기도 하고. 그래서 건물 뒷면에서 입면을 보면서 확인해보려 하니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순간, 어? 왜지? 왜 그렇지? 하다 보니까 건물 뒷면의 우주 쪽 퇴칸에는 문이라는 것이 아예 없고, 상인방이라는 것도 미장으로 가려져 있으니 그럴 수밖에. /배흘림의 기둥 옆으로 벽선을 그렝이질해서 붙여 놓은 것이 보인다.


다시 정면. 그 앞에 서서 보기로 하자면야 기둥도 봐야 하고 공포도 봐야 하고 처마도 봐야 하고 지붕도 봐야 하고 볼 것이 많지만 이 사진을 찍을 때는 계단을 보고 있었다. 하나씩 다시 한 번 확인을 해보는 거다. 정면 다섯 칸 건물에 계단은 셋, 어칸과 협칸 앞에 있다. 퇴칸 밑에는 없다는 말씀. 부석사 무량수전은 특히 건물 내로 진입하는 동선이 중요하다. 그것은 무량수전만의 특징인 내부 평면의 문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것. / 장대석으로 쌓은 계단의 소맷돌은 이처럼 기단 갑석의 반턱을 물고 있다.



건물을 정면에서 봤을 때 왼쪽 퇴칸이다. 문인방(문미) 위의 상인방과 창방의 춤이 두꺼워지면서 귀솟음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 확연히 보인다.

요거는 사진이 누워있기는 한데, 추녀를 받치고 있는 활주다. 지난 주 문제풀이를 하면서 기둥 동바리 시공에 대한 내용이 있었는데 그 때 동바리 이음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주먹장이음, 나비장이음, 촉이음, 엇걸이산지촉 같은 것이 있다고 했다. 그 가운데 엇걸이산지촉을 쓰는 경우는 기둥이 굵지 않은 경우 맞댄면을 길게 하기 위해서 엇걸이산지촉을 사용한다면서 활주 같은 것에 많이 쓰인다고 했다.


측면에서 본 입면 사진. 측면 세 칸. 내진주 공간이 되는 측면 어칸은 꽤나 넓다. 그래서 기둥 사이, 주심포 사이에 장식재로 붙여 놓은 쪽소로도 측면 어칸에만 두 개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정면이나 뒷면은 어칸, 협칸, 퇴칸 할 것 없이 모두 하나씩 들어가 있다. / 합각부의 넓이는 측면 어칸을 조금 초과하는 정도.

아직까지도 소심하게시리 건물 바깥에서만 뱅뱅 돌고 있다. ㅎ

예전에야 답사를 가게 되면 공포부부터 눈에 불을 켜고 사진을 찍으며 하나하나 따져보는 게 일이었지만 이제는 그냥 예의상 찍어준다. (약간 거만 모드 ^ ^) 어쨌든 부석사 공포도는 이제 눈 감고도 그릴 정도는 되었다. 아직 종단면도를 외워 그리라면 땀을 삘삘 흘리고야 있지만. / 주두굽받침이 있는 것부터 본다. 주두굽에는 안으로 오목하게 내반곡을 가진 것을 본다. 그것은 소로도 마찬가지. 소첨차의 십자결구와 대첨차의 십자결구 위로 인방과 보머리가, 그리고 그 위로 출목부위에서는 외목도리를 받는 초방이 행공첨차와 결구하여 단장혀와 외목도리를, 주심선상에서는 외목 초방이 첨차와 한 번 짜여지고 그 위에 다시 주심을 받는 초방이 얹어져 단장혀와 주심도리를 받는다. 봉정사 극락전과 다르다면소첨차와 대첨차 사이에 인방재가 가로지르지 않고 그 둘의 결구 위에서 지나간다는 것, 그리하여 부석사 무량수전은 봉정사 극락전보다 한 단 더 높게 짜여진다는 것, 봉정사 극락전에는출목에 행공첨차가 없지만 부석사 무량수전에는 있다는 것, 단장혀의 길이로 보더라도 봉정사 극락전 외목도리의 단장혀보다 부석사 무량수전 외목도리의 단장혀가조금 더 길다는 것…… 첨차들 사이가 떠 있는 곳을 판재로 가려놓았다는 건 전에는 눈여겨 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첨차의 밑면이 연화두형인 것은 봉정사 극락전과 같지만 마구리면은 직절이 아니라 사절되었다는 점도 확인해 보아야 할 것.

고개를 좀 더 쳐들어 기와를 보았다. 고려시대 기와 양식. 조선시대 기와는 막새 마구리가 사절되었고, 그 길이가 긴 편인데 반해 고려시대 기와의 막새는 마구리가 직절되었고 짧다. 이것은 봉정사 극락전과도 같아.

이제 점점 건물 위로 올려다 본다. 이건 외목도리 위에 연목받침을 확인하면서 찍은 인증샷이다. 물론 귀처마 쪽에는 외목도리 위로 갈모산방이 놓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선자연 구간에서 끝나야 할 텐데, 무량수전에서는 평연구간에서도 얇은 받침목이 길게 이어져 반대쪽 갈모산방과 다시 이어진다.

추녀, 사래 쪽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것은 선자연의 초장이었다. 어라, 여기에는초장이 붙임혀로 되어 있지가 않네. 사래 옆에 붙은초장은 붙임혀처럼 반을 따서 붙여놓았는데. 사진이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는데부연에는 그 간격을 맞추기 위한세발 부연도 보인다.


이건 좀 멀찍이 떨어져 기와 부분을 당겨서 찍은 건데, 기와에서 나는 아직 잘 부고, 착고, 적새 부분에 대해 또렷이 머릿속에 그려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글쎄, 아직도 잘.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부처님께 절을 세 번 올리고, 도면을 펼쳐들고 까치발로 살금살금 천장 위를 살피고 돌아다녔다.마음 같아서는 구석구석 사진기를 들이밀고 다 찍어오고 싶었지만 이런 곳들은 사진촬영금지라는 글씨가기둥 앞에 무시무시하게 써 있다. 그저 도면만 들고, 연습장에그려보면서 이리 돌아가고 저리 돌아가고 하다가 용기를 내어 몰래몇 컷을 찍었다. 플래쉬를 안 터뜨리고 몰래 찍으려고 했는데 조작할 줄을 몰라 그만 플래쉬 펑펑 터뜨려대면서.스님이 한 번무섭게 쳐다봤다. ㅠㅠ / 아무튼 요 사진은후열 퇴칸 쪽. 툇보들이 나가고 그보다 한 단 높게 약간 휘어져 올라간 귓보가 나가고,주심을 받는 초방들이내고주 위 대첨차가 연장되어이쪽 저쪽으로 나가는 것이 보인다.

이거는 추녀가 하중도리 왕찌를 거의 파먹고 내려앉은 모습을 찍은 것인데 아무래도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가 않는다.사진기를 바지춤에 숨겨 다니면서 살금살금 몰래찍어야 하는 통에, 안 그래도 각도가 잘 나오지 않는데제대로 자세를 잡을 수도 없지 ㅠㅠ. 하중도리와 외기도리의 장혀를 따라가다가 그것들이왕찌를 이루는 지점을 쫓아가보면 알아볼 수는 있다.


여기는 후불벽 뒷공간이다. 건물 정면에서 봤을 때는 왼쪽 퇴칸. 이 사진에서 왼쪽벽이 후불벽이고 오른쪽 벽이 외진열을 이루는 곳이다.

추녀가 주심도리 왕찌를 살짝 파고 드는 것도 사진으로 찍어놓고 싶었다. 그런데 그 때 마침절 안에서 무슨 접수도 받고 하는 보살님이 자리로 돌아와 앉는 바람에안에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그치만주심도리 왕찌는 바깥에서도 조금은보이게 되어있다. 이 사진에서 보면 서까래들을 받고 있는 조금 거뭇한 나무가 주심도리이고, 그 끝에 추녀가 살짝내려앉으며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그토록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고려시대 건물들의 추녀 설치의 특징.추녀 뒤뿌리가 중도리 하부에고정되면서 지붕상부하중으로 뒷뿌리가 들리지 않게끔 하고, 그러려다 보니 주심왕찌를 살짝, 하중도리 왕찌를 거의 다 파 먹으면서 내려가 중도리에서는 왕찌 하부로 들어간다는.



요건 조금 더 잡아당겨서 크게 찍은 인증샷.

무량수전에 들어갔을 때 안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것 하나는 종도리 밑을 받치는 대공과 그 양 옆으로 중도리를 잡으러 나가는 솟을합장의 결구 모습이었는데 그건 아무리 고개를 쳐들고 봐도 정확히 보기가 좀 그랬다. 아무래도 내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며 볼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고. 암튼 무량수전에서는 그렇게 안팎을 나름껏 보고싶은만큼 살펴보고 나왔다.

아참, 그리고 불전 안에 있는 커다란 미륵부처님, 소조여래좌상에는 차마 사진기를 댈 수가 없었다. 부처님한테 혼날까봐서이기도 하고, 스님한테, 아니면 그 안에 있는 보살님이나 다른 예불객들에게 혼날까봐 차마. 어쨌든 무량수전 안에는 또한 국보인 소조여래좌상이 있다. 흙으로 빚어 만들었다는 소조여래좌상. 하기에 만약에 부석사를 해체 수리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불상을 바깥으로 들어 옮기는 건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그대로 두고 공사를 진행할 수도 없는 일, 그렇다면 보호각을 씌우거나 하여 충분한 보양 조치를 취한 뒤 시공을 해야 한다는 것 또한 유념해야 할 일이겠다.


무량수전에서 조사당으로 오르는 동쪽으로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서 있다. 기단이 넒고 탑신의 옥개부가 기단을 초과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신라계 석탑. 이 탑에서는 삼층 탑신 몸돌에서 사리공이 발견되었다 한다. 보통은 탑이 법당 앞에 세워지는 게 통례인데 이 탑은 법당의 동쪽에. 그러고 보니 안내판에 비춰져서 무량수전이 보인다. 사진을 찍고 있는 나도 보인다. ^ ^

조사당에 올랐다. 몇 안 되는 고려시대 건물 가운데 하나.정면 세 칸, 측면 한 칸의 아주 자그마한 건물이다.

이번에도 건물 앞에 서서 가장 먼저 눈이 간 곳은 기단이었다. 앞에서 봤을 때는 장대석을 쌓은 장대석 기단인 것 같지만 뒤로 갈수록 자연석 난석을 쌓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이 건물의 기단은 난석과 장대석을 혼합해서 쌓았다고 말하는 게 가장 정확할 것이다. 지지난 주였나, 이천이 년 시공 문제에서 고려시대 기단 일부를 신재로 보충하는 공사에 대해 묻는 문제가 나왔는데 그럴 때는 고려시대 건물들을 기단 양식에 따라 일단 분류를 하고 시작해야 했다. 봉정사 극락전과 수덕사 대웅전은 장대석, 부석사 무량수전은 가구식, 부석사 조사당은 난석과 장대석 혼합 양식. (강릉 객사문은 남아 있는 기단 양식이 원형의 것이 아니어서 논하기가 어렵다 했고.) 지대를 보면 터가 굉장히 좁은데다 건물 뒤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높아지는 모습이다. 굳이 외울 것이 아니라 현장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 또 한 가지 이 건물에서 볼 수 있는 건 전면은 겹처마로 되어 있는데 후면이 혼처마로 구성되었다는 점. 조선 시대에 복원되는 건물에는 일부러 전면을 부각하기 위해 전면만을 겹처마로 하기도 하지만 부석사 조사당은 원래 그랬을 거라 보여지는 것이 전면과 후면의 기단부의 폭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건물 앞의 기단은 넓고 뒤는 좁은 것.

계단은 건물 가운데 하나. 장대석으로 쌓아놓았고, 소맷돌이 있다. 그 소맷돌은 기단갑석 아랫부분에서 걸리게 되어 있어.

공포 양식은 역시 주심포이다. 그런데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봉정사 극락전과는 분명하게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주두 밑에서부터 시작하는 헛첨차. 세 번째 사진은 우주에서 찍은 것이라 창방이 그대로 헛첨차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처음 사진은 주두 밑의 첨차 부재가 쓰인 것이 보인다. 게다가 부석사 조사당 공포의 또 한 가지 특징이라면 창방이 공포부 구성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헛첨차가 쓰인 수덕사 대웅전이나 강릉 객사문 같은 경우는 보방향에서 주두 밑의 헛첨차가 쓰였기 때문에 주두 위에서는 도리 방향의 소첨차와 보방향의 긴 살미첨차가 나오는데, 조사당은창방 위에서 바로 주두 말고 소로들이 놓이면서 주두 위에 놓이는 도리방향의 첨차가 대첨차인 것이다.

그 밖에도 무량수전의 공포 구성이나 부재 사용과 다른 점을 든다면 창방에 운두가 있다는 점, 그리고 이 건물에서는 외목도리나 주심도리 밑에 지나가는 장혀가 단장혀가 아니라 끝에서 끝까지 이어진 통장혀라는 점이다. 그래서 조사당에는 간포 자리에서 장혀가 약간 처져서 도리와 이격이 발생되고 있다 했는데, 미처 그 부분은 눈여겨 보지를 못하고 왔다. 외출목 쪽에 순각판이 설치되었다는 것도거기에서는 보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다행히 맨 위에 있는 사진을 보면 뒤늦게나마 확인을 할 수 있다.보이는만큼 보이는 거라더니 멀쩡히 눈에 들어오는데도 못 알아보고 있다가 공부했던 걸 다시 보면서야 비로소 보이고 있다. 솔직히 부석사를 가기에 앞서 무량수전에 대해서만 긴장하고 있었지, 조사당은 가는 길이니 같이 보고 온다는 정도로 아무 생각 없이 갔기 때문이다. 그것들 모두 보고 왔으면 참 좋았을 걸 ㅠㅠ.


조사당 뒤편 언덕으로 배수로 같은 것이 있어 그리 올라가보니 지붕이 바로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서 다시 한 번 기와들을 어떻게 쌓았는지를 보았다. 기본적으로 암키와 수키와 이런 거 말고, 용마루며 내림마루를 이루는 마루기와들을 어떻게 쌓는 것인지. 아무래도 지난 번 기출문제를 풀면서 그 부분 제대로 그림을 못 그렸던 게 가슴에 계속 답답했던가 보다. 그런데 솔직히 이렇게 사진을 찍어오면서도 잘 모르겠는 것이, 조금 전 강의시간에 공책에다 따라서 그려놓은 그림이랑 견주어 보다보니 이제는 알 것 같아. 아, 착고가 저거구나, 부고라는 거는 저거구나. 그렇게 한 뒤에 적새를.

보다시피 막새기와는 없고, 건물 뒤편은 홑처마. 그리고 건물 뒤편 어디에도, 측면 어디에도 개구부는 없다. 조사당 안 벽면들이 벽화들이 가득 채워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벽화. (지금 안에 있는 것은 새로 그린 것이고, 원래 벽화는 보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조사당에도 들어가 의상대사에게 절을 하고, 안을 둘러보았다. 오량가의 조그만 건물이어서 지붕가구가 그리 복잡할 것은 없었다. 서까래도상연, 하연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장연 하나로 종도리에서 외목도리까지 하나로 걸치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조사당을 돌아내려오며 보는 풍경. 삼층석탑과 무량수전과 안양루와 그 아래로 이어지는 산과 하늘.



무량수전 지붕도 다시 한 번 더 잡아당겨 보았다. 용마루와 추녀마루 그리고 내림마루. 부고, 착고, 적새……. 이 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가물가물이었는데 이제는알겠다 싶으니 이렇게 시원할 수가.

밑으로 내려와서 올려다 보는 가람배치 모습.


내려오는 길, 길 바깥으로 사과밭 너머로 연꽃이 보이기에 들어갔더니 이렇게 웅덩이가 있고 연꽃이 피어 있어. 아, 기분 좋아라. 아직은 활짝 피지 않고 봉우리져 있는 조고만 연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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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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