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1109

냉이로그 2016. 11. 10. 10:48

 

 주말마다 있던 제주시청 앞 촛불집회가, 이제는 간격을 당겨 수요일 저녁에 있었어. 퇴근을 하자마자 기저귀 빨래와 쌓여있는 설거지를 서둘렀고, 감자를 씻기고 옷을 입혀, 곤히 잠든 품자를 안고서 시청 앞으로 나섰다. 아침만 해도 아가들이랑 바깥에 나간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추운 초겨울 날씨였건만, 오후 들면서 햇볕이 나고 그나마 날이 풀려. 그렇다 해도 아가 둘을 데리고 그 길바닥으로 나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긴 했지만, 다른 건 못하더라도 촛불 하나 더하는 거, 그거나마 하고 싶은 마음에 아가들 둘둘 감을 겨울옷에 담요를 찾아 들고서.

 

 

 주말 아닌 평일이라 사람이 덜 할지 모르겠다 싶었건만 그게 아니. 첫 주말보다 다음 주말에 두세 배는 많더니, 두번째 주말보다 이날은 또 서너 배가 많아. 차라리 주말이 아닌 평일이어서 학생들이 많이 함께 할 수 있었을까, 그 가운데 반 가까이는 교복을 입은 청소년들.

 

 

 

 오늘은 감자 품자가 그전보다는 좀 많이 힘들어 하더라. 곤한 잠을 깨워 안고 나섰으니, 잠이 모자란 품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엄마를 찾았고, 감자는 파고드는 바람에 몸을 덜덜 떨며 추워했다. 그러고보니 두꺼운 옷이며 담요는 품자 것만준비했지, 감자 것은 따로 준비를 하지 않았던 거라. 미안, 감자야. 집회 시작부터 행진을 마칠 때까지 감자는 아빠를 감아 안고선 놓지를 않아. 집회를 마치고 행진이 시작할 즈음, 아무래도 안 되겠다, 품자와 달래는 차에 들어가 기다리게 하고선 감자하고 아빠만 행진의 행렬을 따라. 감자는 비록 컨디션이 좋질 않긴 했지만 촛불 든 사람들, 그 광장과 행렬 속에 있는 걸 싫어하질 않아. 오히려 행진을 다 마치고, 그만 돌아나오려는데도 더 있자고, 거기에 더 있자고 연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울음섞인 얼굴로 몸을 버팅겨. 결국 집회차량의 앰프와 조명 전원이 다 꺼지고 나서도 한참을 거기에 있어야 했네.

 

 

 

 감자는 거기에서 무얼 보았을까. 물결처럼 일렁이는 촛불과 피켓들, 그리고 마이크 쥔 사람들이 질러대는 쇳소리에 함께 외치는 사람들의 함성에, 어떤 기분, 마음이었을까. 품자가 힘들어하던 게 잠이 모자라였다고는 했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냐. 구호의 외침, 함성에 깜짝깜짝 놀라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으니, 그럴 때면 마음의 갈등이 아주 없지는 않아. 이 갓난 아가아게, 그 성난 목소리, 분노에 가득한 쇳소리들의 함성이, 그래도 괜찮은 걸까 싶은. 감자를 꼭 끌어안고 행렬을 따라 행진을 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되풀이하는 하야하라의 외침에, 어딘가를 망연자실 바라보던 감자의 눈망울을 보곤 했다. 왠지 감자에게는 다른 말을 해주어야 할 것만 같아, 귀에 가까이 대고는, 감자야 지금 사람들이 "좋은 나라 만들게 해주세요" 하고 있는 거야, 평화로운 나라가 되게 해주세요, 정의로운 나라가 되게, 가난하고 행복한 나라가 되게 해주세요.

 

 어둔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쓸쓸함과 허전함은 무어였을까. 아니, 그게 무어였는지를 모르지 않기에 더욱 쓸쓸하고 허전했을. 집에 닿아 차에서 내리면서 감자는 깜깜 밤하늘에 떠있는 달부터 찾는다. 아, 달님 예쁘다, 반달이 환하게 떴네. 달나라에서도 촛불을 들고 있나 보다, 저기, 저기, 또 저기에도 촛불처럼 반짝이는 별빛들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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