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에서

냉이로그 2016. 10. 18. 09:53

 

  이역만리, 아득하기만 한 중동의 나라에서, 이렇게 꼬부랑 글씨가 써 있는 우편물이 왔다. 녀석이 요르단으로 건너간지가 얼마나 된 거나. 감자를 낳고 얼마 뒤였을 테니, 녀석의 요르단 살이도 두 돌이 되어갈테지. 그래도 전에는 카카오톡 부록으로 있는 보이스톡으로 목소리라도 듣곤 했는데, 언젠가부턴 그 나라에서 그걸 막아놓았대서 그럴 수도 없어. 그저,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겠거니, 생각할 뿐이니.

 

 

 우편 소인을 보니 그 나라 우체국을 들러, 망망대해 배를 타고 건너온 건 아니었고, 한국으로 건너오는 인편이 있어 부탁한 모양이었다. 배를 타고 왔건,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건, 어쨌든 발신자는 그 먼나라에 있는 녀석이 맞는 거고, 스웰리하가 동네 이름을 말하는 건지, 몬 말인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요르단 스웰리하에서 건너온 봉투였다.

 봉투 안에 들은 건, 벌써 4년하고도 반년이 지난 달래와 냉이의 결혼식 동영상 씨디. 그때 혼례를 준비하면서 녀석에게 부탁했던 것인데, 이제나저제나 (실은 당사자들도 까먹고 있었음) 한 해 두 해가 지나고, 요르단 가기 전엔 편집해주고 가겠다, 요르단에 가서 만들어주겠다, 차일피일이더니, 결혼 오년차가 되어 이렇게 바다 건너로부터 전해받은 거.

 저 씨디를 받은지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달래와 나란히 앉아 틀어보지를 못했네. 집에 있는 동안에는 품자를 안아야지, 젖을 물려야지, 안고 서성이며 재워야지, 그리고 감자를 쫓아다니며, 감자가 시키는 거 해야지, 그림책 읽어라 하면 그림책, 퍼즐 맞춰라 하면 퍼즐, 블럭 꺼내라 하면은 블럭. 감자 앞에서는 전화기든 컴퓨터든 그런 전자기기를 꺼내는 건 조심스럽기만 해. 한 번 맛들이고 나면 그거 내놓으라, 켜달라, 게다가 제멋대로 아무거나 눌러대기가 일쑤일 테니.

 그래도 하루 마음을 먹고선 마루에 노트북을 꺼내놓고, "이야아, 엄마랑 아빠 결혼식 비디오 보쟈!" 하고 세팅을 했건만, 아뿔싸! 모든 컴퓨터에는 씨디를 꽂는 데가 있는 줄 알았더니, 아빠가 쓰는 노트북엔 아무리 찾아봐도 그게 없는 거라 ㅠㅠ 굳이 보자면 짐창고처럼 되어버린 책방에 들어가서 데스크탑으로 보아야 할 텐데, 감자랑 품자랑 다 같이 그러기에는 ㅠㅠ 그래서 모처럼 계획했던 엄마아빠 결혼식 영상 관람은 실패가 되고 말아.

 달래는 혼례식 내내 신부방에 가둬져있다시피 했고, 뜰에 나와 맞절을 하고 그럴 때도 얼굴을 가려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했으니, 자기는 그날 모습을 거의 모른다면서, 궁금하다, 보고싶다 하는데, 아무래도 호시탐탐 감자품자랑 다 같이 볼 수 있는 때를 노려봐야지. 그래도 나는 씨디에 있는 파일을 노트북에 옮기면서 슬쩍 들여다보긴 했는데, 하하하, 겨우 오년 전이건만, 그때만 해도 많이 젊었더라. 나 뿐 아니라, 한옥마을 마당에 모여 웃고 손뼉쳐주던 그리운 얼굴과 얼굴들 모두 ㅎ

 고맙다, 란아. 오년이나 걸려 편집해 보내준 작품도 고마웁지만, 그 먼 나라에서 꼬부랑 글씨로 이름을 써 보내온 그 봉투가 더 반가웠나도 모르겠다 ㅎㅎ

 

 

 지난 번에 한국 들어왔을 땐 난장이공 들러가면서 감자랑 인사했지만, 품자는 아직 못 보았으니. 품자랑 이렇게 인증샷을. 품자야, 란이 이모야가 보내준 엄마아빠 결혼식 비디오야 ㅎㅎ 란이 이모는 저 멀리 꼬부랑 더운 나라에 가서 꼬부랑 알 수 없는 말을 배우고 있단다.

 


 

 

 

 

 

 

 


 

'냉이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야  (1) 2016.10.26
조탑에서 강정  (0) 2016.10.18
서귀포  (4) 2016.08.30
감자네 여름휴가  (2) 2016.08.10
불치  (2) 2016.07.19
Posted by 냉이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