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촛불

감자로그 2016. 10. 31. 10:27

 

 주말마다 몸이 왜 이렇게 좋질 못한지. 이즈음 젤로 행복한 순간이, 등 뒤로 감자가 기어오르거나 누워있을 때 감자가 올라타는 거이건만, 좋다고 올라타는 감자에게 말 노릇을 해줄 수가 없어. 왜 그런지 한 쪽 어깨가 무너져내리면서 몸을 돌리지도, 팔을 들 수도 없는. 그렇게 있어야 했더니 감자에게 미안, 품자에게 미안, 주말마저도 두 몫을 해야만 했던 달래에게는 말할 수 없이 더 미안.

 

 제주시청 앞, 감자와 다녀왔다. 네 식구 함께 가기로 예정하고 있었지만 하루이틀 새로 바람이 얼마나 찹던지. 아무래도 품자가, 지칠대로 지쳐있는 달래가 함께 가기에는 무리. 하여 감자랑 아빠랑 둘이서 찾아간 촛불문화제.

 

 감자의 첫 촛불이었나 했더니, 생각해보니 그건 아니네. 감자가 여섯 달 되던 봄, 세월호 2주기 촛불 자리에 갔었으니 감자에겐 그게 촛불의 첫 경험이었던 거. 하지만 그땐 그야말로 엄마 품에 안겨있던 갓난 아기. 감자가 눈으로 무언가를 보고, 무언가에 놀라거나 기억하기에는, 어쩜 이번이 처음이 되는 건가 모르겠다.

 

 광화문이나 청계에 댈 거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섬에서는 꽤나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집회 시작 십여 분을 늦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마련된 양초도 모두 동이 나. 감자하고 나는 단상이 보이지도 않는 길가 끝에서 사람들이 손에 든 피켓들과 뒷모습밖에 볼 수가 없던.

 처음엔 눈앞 가득한 사람들 뒷모습에, 물결처럼 외치는 하야하라는 커다란 소리에, 감자는 놀란 얼굴이기도 했지만, 유모차에 앉아 있는 아가를 보며 모르는 이들도 따뜻하게 말을 걸어와. 그러고 있는 사이 강정마을에서 만나오던 딸기이모도, 호수이모도, 혜영과 반디 이모, 미량이모, 개똥이이모도, 그리고 엊그제 만난 승민삼촌, 선경이모도 그 길 끝에서 함께 만나 따뜻하고 반가웁던. 시청 둘레로 행진을 하던 끝에는 난장이공 미란이모야네도 만나 또한 반가웠지 모야.

 더 즐거웁고, 더 재미나게, 더 반가웁고, 더 흥에 겨운, 축제가 되어야만 할 그 시작.

 

 촛불집회에 다녀온 다음 날, 뉴스 화면에 광화문 모습이 나오니 감자가 텔레비전에 대고 손가락질을 했다. "으응, 그래, 감자야. 감자도 촛불 켜는 데 갔다 왔지?", "으응, 사람들이 저렇게 하야하라, 하야하라 그랬지이?" 요즘 들어 응! 응! 하고 대답하는 걸 시작하는 감자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눈을 떼질 않고선 응! 응! 화면 속 사람들이 촛불과 피켓을 들어 무언가를 외치면, 감자도 두 손을 들어 만세를 하는 시늉을 해. 기억하는구나, 감자도. 저렇게 사람 많은 속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외치고, 그 많은 사람들이랑 행진을 함께 하던 걸.

 

 

 

 99프로의 민중이 개돼지라는 소릴 대놓고 했다던 이가 교육부 정책기획관이랬나. 실제로도 저런 소릴 해대는 자가 있다는 거에 놀랐고, 그런 자가 이 나라 교육을 주무른다는 거에 기가 찼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이 지경인데도 끌어내질 못한다면, 이대로도 두 눈 뜬 채 보고만 있는다면, 어쩜 우린 그런 소릴 들어도 싸다는.

 이제껏 너무 오래 보아온 기시감에 지레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으면 한다. 간절히 바라면 우주의 기운이 도울 거라던데, 아직도 간절함이 모자라서일까. 도무지 희망은 없는 걸까. 해맑게 피켓을 들고 웃는 감자의 얼굴, 품자의 눈망울을 들여다 보는 일이, 왜 이리도 슬프기만 한지. 

 

 

 

 

 

 

 

 

 

 

 

'감자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촛불 0205  (4) 2017.02.06
광화문 감자  (2) 2016.11.28
지구별 두바퀴  (7) 2016.10.18
생일선물  (0) 2016.10.18
감자, 구월  (0) 2016.10.18
Posted by 냉이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