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감자

감자로그 2015. 6. 30. 12:21

 

 

 

 어젯밤부터 비. 누웠다가 빗소리에 일어나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가 다시 눈을 뜬 것도 새벽. 빗소리 때문이었다. 아침에도 비, 가는 대나무 가지처럼 가늘고 곧은 비가 죽죽 떨어진다. 감자야, 다시 또 장마인가봐.

 

 

 오늘은 해님 안떠요, 비오는 날이에요.

 오늘은 지렁이 나와요, 비오는 날이에요.

 오늘은 장화 신어요, 비오는 날이에요.

                                                          - 강현정 어린이의 말에 백창우 아저씨가 곡을 붙인 노래

 

 

 감자야, 오늘은 마당에도 나가보질 못하겠네. 그대신 비오는 거 구경하자. 바람이 세진 않으니 창문 열어놓고 비오는 거 볼 수 있겠다. 저렇게 하늘에서 빗줄기가 내려. 처마 끝엔 방울방울 고여있던 굵은 빗방울이 뚜욱뚝뚝뚝, 앗차거라 앗차거. 비가 오질 않아 걱정이던 강원도에 큰아빠큰엄마들, 강화에 이모삼촌들, 말라가던 어린 모야 힘내라, 바짝바짝 타들어가던 어린 잎들아 힘을 내!  

 

 

 

 뒤안으로 난 문을 열어주었더니 감자는 이렇게 한참도록 비를 보네. 모를 보니 감자야, 비가 오는 날엔 맨발에 비맞고 돌아다니는 거, 아빤 모니모니 해도 그게 최고더라. 감자가 쩜만 더 크면 찰방찰방 아무렇게나 물도 튀겨가며 비맞고 돌아다니자. 감기걸릴 거라 엄마가 못나가게 하거든, 엄마 안 보이는 데까지만 우산 쓰고 나가는 척 비를 맞고 돌아다니자 ㅋ

 

 

 

 아침 밥상을 다 차리도록 감자는 이렇게 칭얼대는 것도 없이, 끙끙대는 것도 없이 꼼짝도 하질 않아. 비가 좋으니, 빗소리가 좋으니, 빗줄기가 좋으니. 그 빗줄기 사이로 들어오는 싱싱한 비내음이 좋은 거니. 이담에는 너도 외로울 줄을 알게 되는 걸까, 고독이라는 걸 가장 가까운 벗으로 삼을 줄을 알게 될까. 외로움이며 고독이며 끝내 그리움에 닿게 될 그것들과 잘 사귈 수만 있다면, 살아가는 일은 그만큼 더 깊어질 수 있을 거야. 깊어질 뿐 아니라 기뻐지게 할 그것.

 

 

 

 

 

 그치지 않을 것 같은 비가 죽죽 내리고, 감자는 그 비를 본다. 아빠는 엄마 눈칠 보면서 슬그머니 장전리 구멍가게에 나가 막걸릴 받아와야할텐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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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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