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다시 찬바람으로 날이 추워졌지만, 그래도 느린 걸음으로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따뜻한 햇살, 보드라운 바람,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노란 유채와 연두 잎사귀들. 그때쯤이면 감자도 목을 다 가누게 되어 포대기에 업고 나갈 수 있게 될까. 그래서 요즈음엔 감자를 안아 재우거나 할 때마다 봄을 부르는 노래를 지어 부르곤 한다. 봄아, 언제 올 거니. 봄이 오면은, 우리 감자도 노란 햇볕으로 나가자, 마당에 나가 새들이랑 친구하자,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멍멍이도 쫓아가고, 야옹이도 쫓아가고. 봄이 오면은, 엄마아빠랑 바다에도 가고, 오름에도 가고, 산책 나가자.
지금까지는 외출이라지만 햇볕과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하는 건 아직 아니었다. 그래도 벌써부터 감자는 바깥 나들이를 적지 않게 다니고 있었어. 집이 아닌 곳 가운데 감자가 가장 많이 간 데는 물론 들이네 집이지만, 거기는 외출이라기보다는 '또다른 집' 같은 느낌이기도 하니 거기는 빼고. 그 다음으로 감자가 자주 가 있던 곳은 그꿈들 전시를 하던 제라진 갤러리와 마을에 있는 난장이공 까페, 그리고 곽지의 커리왈라.
이건 12월 20일, 그러니까 감자가 온지는 예순닷새가 되던 날이었다. 이날은 그꿈들 전시 중 행사가 있던 날. 속초에서 에게해 언니도, 서울에서 낮은산 식구들도 모두 내려온. 그리하여 감자네 식구도 행사 시간에 맞추어 갤러리로 나갔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감자와 어딜 나간다는 건 여러가지로 만만치가 않았지만, 희한하게도 감자는 제라진에 가서는 너무도 편안히 있곤 하였다.
게다가 이날은 여러 뮤지션들의 공연이 있어 음향이 제법 커다랗게 울려대었는데도, 감자는 꽤나 긴 시간을 편안하게 잠에 들었다. 한참 뒤 깨어나서도 젖달라 보챌만도 하였는데 고요한 얼굴. 갤러리에서 나와 저녁을 먹는 자리까지 내리 여섯 시간이나 그렇게 고맙게 있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고, 차 안으로 안고 들어가 젖을 먹었다.
제라진 갤러리에서 행사가 있던 날, 감자의 외출.
감자야, 저기 저 아저씨가 살람 아저씨야.
저기 저 형아는 핫싼 형아.
이거는 해가 바뀌어 남지 이모가 집에 왔을 때, 사잇골에서 내려온 노미 샘을 만나러 다시 또 제라진 갤러리에.
그리고 감자가 또 좋아하는 데는 소길리에 있는 난장이가쏘아올린작은공 까페. 여기엘 가면 난장이공 이모들이 몹시도 아기를 예뻐해주어, 이모들에게 감자를 맡겨놓을 수가 있어. 난장이공 이모들은, 감자네 식구가 집에서만 오십 일 가까이를 지낼 무렵, 일부러 감자를 보러 집으로 찾아와 주었다. 마침 난장이공 이모가 달래랑 한 동갑이라, 친구로 지내자 하며, 언제라도 답답할 때면 까페에 올라오라고, 일보러 가야 하면은 감자를 맡기고 다녀오라고. 아니나다를까, 난장이공에 올라가면 엄마아빤 두손 두팔이 자유로울 수 있어. 난장이공 이모랑 작은이모가 서로 질세라 감자를 안아주고 보아주고 있어. 게다가 한 마을에 있는 까페라, 갑자기 급하면 바로 집에 다녀오거나 집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 마음의 부담이 한결 가볍기까지.
소길리 마을까페 난장이공.
난장이공 이모랑 삼촌.
조과장네가 육지로 올라가기 사흘 전.
숭례문에서 일을 하며 인연을 맺은 조과장네 식구가 겨울방학을 맞아 식구들이 다같이 제주에 내려왔더랬다. 그것도 감자네가 살고 있는 소길리에, 감자네 바로 옆집. 그런데 이걸 어째, 그 즈음부터 달래는 몸이 가장 힘들었고, 끝내는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그랬으니 한달이나 집을 빌려 바로 옆집에 머물고 있었지만, 함께 시간을 보낼 처지자 되질 못하였다. 아주 잠깐 짬을 내어 들러보는 게 다일 뿐. 여행온 식구들에게 밥 한 끼를 차려주기는커녕 오히려 여행온 식구가 차려주는 밥을 얻어먹기까지 ㅜㅜ 말하자면 수술환자와 갓난쟁이를 두고 있으니, 저녁에 막걸리 한 잔을 하러 옆집에 잠깐 다녀온다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게다가 달래가 수술을 받기로 한 바로 그 전날, 하필이면 그날 숭례문에서 함께 일하던 반가운 이들이 떼로 내려왔다. 그러고는 세 밤이나 감자네 바로 옆집, 조과장네 식구가 머무는 집에서 지내었지만, 하룻저녁 잠깐 건너가 얼굴을 보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은 어쩔 수가 없던.
그래도 조과장은 아이를 둘이나 낳아 키웠으니 그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아. 모처럼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하러 내려와 있었지만 짬이 날 때마다 감자네 집에 들러 감자를 보아주고, 안아주고, 챙겨주곤 하였다. 그러다가 조과장네가 제주살기를 마치고 올라가기 사흘 전, 난장이공에서 보낸 하룻저녁.
고 며칠 전에 내려온 엄마도 함께 나갔다가, 저녁 일곱시가 되면서 엄마는 일일연속극을 보아야 한다며 먼저 집으로 ㅋ
난장이공에는 감자를 재우기에도, 기저귀를 갈아주기에도 딱 좋은.
조과장네 집 승우 형아랑 승효 형아.
이 때가 감자가 온지 92일이 되던 날, 마침 조과장의 남편이 디에스엘알 좋은 사진기를 가지고 있어. 게다가 난장이공 까페는 아기자기 예쁘게 꾸며져 있으니, 잘 되었다, 여기에서 백일 사진을 찍어보자며 갑자기 포토타임을 시작.
팡!
팡!
팡!
곽지리에 있는 커리왈라. 그전부터도 자주 찾곤 하였지만, 감자를 안고 바깥에 나갈 때면 먼저 꼽게 되는 곳이다. (아무래도 감자가 나들이를 많이 하게 되는 데는 감자가 좋아하는 데라기보단, 감자를 안고도 편하게 갈 수 있는, 말하자면 엄마아빠가 가있는 편할 수 있는 곳 ㅋ) 이곳 역시 감자를 마음놓고 맡겨 안길 수 있고, 편안하게 누일 수가 있어. 가게엘 들어가면 언제나 미나씨 노트북이 있는 테이블을 치워 감자 침상으로 만들어주어. 신기하게도 감자는 커리왈라에 갈 때마다 그 침상에서 한참씩을 잠에 들곤 해.
인도 가정식 커리, 커리왈라.
요기가 감자의 전용 침상.
다와씨가 아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미나씨도 감자를 잘 보아주지만, 다와씨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
이날은 지영이 이모가 이틀밤을 보내고 육지로 올라가던 날이었나. 우리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감자는 다와씨가.
감자, 지슬. 그리고 여권에 들어갈 영어 이름, 포테이토까지. 이렇게 감자의 이름은 셋이었는데, 다와씨가 알려주어 하나가 더 생겼다. 다와씨는 티벳에서 온 친구인데, 그곳에서는 감자를 '셔거'라고 한다던가. 하하, 그러니 언젠가 감자네 식구가 티벳을 여행한다면 셔거네 식구들이 될 것이다. 아마도 감자는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그곳에서 쓰는 말로 이름이 하나씩 늘어나겠다 ^ ^
아서 이모가 감자를 보러온 날에도 커리왈라엘 갔더랬어. 이 날은 다와 삼촌은 없고 미나 이모랑 첸좀 누나만 있던 날. 미나 이모 품에 안겨 한참을.
아서 이모는 감자 어멍과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닌 친구. 제주의 동쪽 평대리에서, 손꼽히는 게스트하우스를 꾸려가고 있는. 감자야, 봄이 오면 동쪽에도 놀러가자. 아서 이모네 예쁜 집에 놀러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