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디자인으로 열 개도 넘는 시안이 있었어. 그 중에서 가장 내 마음에 들었던 거는 이거.
그렇다고 이 애를 쓰기로 한 건 아닌데, 그렇다 해도 아쉬움 같은 건 없다. 서른일곱의 작품 가운데 그 어느 거를 책 겉장에 넣는다고 해도 모자랄 건 없어. 그 가운데 한 점만 골라야 한다는 게 얄궂게 느껴졌을 뿐.
마지막 교정지까지 보고 글자 몇 개를 고쳐 썼다. 주말을 지나고 나면 인쇄소에 들어간다 하였고, 이제 곧 책이 되어 나온다. 그림이 다 되던 때, 오두막으로 모이기로 하면서 레이아웃을 잡은 원고를 살피다 끄적여둔 메모를 찾아보니, 그것도 벌써 한 달 전이었어. .
10.
모운동으로 올라간 건 지난 해 이맘 즈음이었다. 내내 몸 속 깊이 박혀있던 기억이며 슬픔, 무력감과 부채감. 십 년이 되는 해였고, 차마 엄두조차 낼 수 없던 그 기억과 슬픔을 숨을 뱉듯 내놓았다. 어떻게 시작해야 하겠는지, 어떤 말을 주워담을 수가 있겠는지, 그리고 끝내는 무엇을 그려낼 수 있을지. 미술 시간에 쓰는 스케치북을 공책 삼아, 그 위에 한 글자, 한 글자. 그렇게 십 년의 시간을 스케치북 한 권에 담았다. 여전히 다하지 못한 말들, 더 했어야 했을 얘기들이 많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으로 다였다. 꼭 십 년이 걸렸다.
에게해에서는 그 스케치북을 받아 밤없이 그림을 그렸다. 실로 놀라울 정도의 에너지. 언니는 붓질을 하지 못할 정도로 어깨가 망가져가면서도, 나머지 팔로 붓을 잡은 팔을 지탱하며 그곳으로 걸어들어갔다. 어쩌지 못할 불덩이, 그 극한의 칼날. 이따금 에게해에 들를 때마다 그 조그만 방에는 십 년 전 그곳과 십 년을 살아낸 그 시간들이 믿지 못하리만큼 살아나고 있었다. 차마 마주하기 어려운 눈망울, 그리고 그이들의 뒷모습. 겹겹이 쌓여가는 캔버스에서 폭발음이 들렸고, 어디선가 모래바람이 불곤 했다. 그렇게 언니는 꼬박 일 년을 십 년처럼 살았다.
내일이면 편집자와 디자이너, 화가와 작가가 오두막에서 모이기로 약속. 십 년과 일 년, 그렇게 10+1의 시간을 지나면서 저 너머는 더한 혼란 속으로만 들고 있어. (2014.06.24)
이 중에서도 표지로 들어갈 애는 없어. 결국 새로 디자인을 할 거라 하였고, 그렇게 하여 작업을 마친 거는 나도 아직 보지를 못해. 아마 책이 나오면 그 때나 보게 될 텐데. 그러나, 여기에 있는 어떤 거라 해도 다 마음에 드는.
다만 가슴이 더 아플 수밖에 없는 건, 십 년하고 또 한 해, 10+1을 지나면서 거기는 더한 아픔의 땅이 되어만 가고 있다는 거. 이 책과 그림들을 거기 아이들, 친구들에게 보여줄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