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 사는 집. 실제로 에게해가 어떻게 생겼는진 모르지만, 사람들은 늘 이곳을 에게해라 불렀다. 베란다에 바짝 붙어 앉지 않아도 바다를 한껏 끌어들인 방과 거실. 그리로 바다가 들어오고, 바람이 들고, 파도가 철썩이고, 갈매기가 날으고, 오징엇배가 지나간다. 그런 델 가보진 않았지만, 이런 전망은 해변의 특급호텔 같은 데가 다 차지하는 거 아닌가 싶은. 그러나 이 오래되고 조그마한 아파트에는 주로 가난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살아간다. 바다 안 쪽 마을 또한 낡고 오래된 담벼락들을 그대로 지키고 있어. 당신을 닮아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 에게해.
그로 인해 비로소 나는 십 년의 시간을 털어낼 수 있었다. 목에 걸려 어쩌지 못하고 있던 그것을 비로소 삼켰고, 또 비로소 토해내었다. 그리고 당신이 기꺼이 그것을 그대로 받아 안아. 이제는 내가 당신을 안쓰러워할 차례. 당신의 붓질 하나하나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를 알기에, 목숨을 소진시킬 것만 같은 그 엄청난 에너지에, 가슴이 조마조마. 그러나 그 대결이 아니고선 당신이 살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기에, 그저 가슴을 졸이고 있을 수밖에. 쥐스꼬부띠스끄, 당신도 어쩔 수 없이 끝까지 가야만 살 수 있는 인간, 그것이 무엇이건 외면하지 않고 그 칼날 위를 걸어, 그 극한을 통과해야만 살 수 있는 인간이니까. 그러나 한 번이라도 그를 스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 세상에 그보다 평화로운 얼굴을 본 일이 있는지, 그 조그만 몸 속 식지 못하는 불덩이, 깊은 소용돌이를 품고 있으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