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날 것들은 나타나기 마련이고, 그리운 놈들은 찾아지기 마련인가.
연락처도 무엇도 하얗게 잃어버리고 있던 공기족이 나타났다.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너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했고, 아주 공손하옵게도 실례지만, 제 전화기에 번호가 저장되질 않아서, 죄송하지만 누구신지, 를 물었다. 까까까까 마녀처럼 웃어대던 녀석. 그제서야 놈인줄을 알아. 이게 죽을래?
여기저기 출판사를 옮겨다니며 편집디자인을 하고 있다고 했고, 역시나 그 외로운 영혼은 또한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였다. 지금은 일년 넘게 성북동에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해, 점심시간마다 길상사를 거닐곤 하는 것이, 숨쉴 수 있는 그 틈이 행복하다고 했다. 그 밖에도 묻지 않을 것은 묻지 않으며, 변죽의 농담을 섞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게 너는 그렇게, 나는 이렇게 살고 있음을 서로에게 확인시켜주던 백만년 만의 통화.
그러던 녀석이 어떤 영화 하나를 꼭 보라고 거듭, 거듭 다짐을 주어. 들어본 적도 없는 제목이라 내가 아리까리하게 대답을 하니 볼펜을 찾아 메모를 하게까지. 서칭포슈가맨. 아라써, 찾아서 볼께. 꼭 봐야되요, 오빠.
그걸 어젯밤 보았다. 당대의 음반 제작가들이나 평론가들은 밥딜런보다 지미헨드릭스보다 더 뛰어나고도 위대한 음악가라 하던, 아니 음악가로서뿐 아니라 현자의 모습이었다 기억하는 한 실존 인물에 대한 다큐. 그리고 새벽에 눈뜨자마자 숙제검사를 받는 아이처럼 녀석에게 메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