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본

냉이로그 2011. 9. 5. 02:51

새벽 바람에,밤새 빈소를 지켰을 분들조차잠깐 눈을붙이고 있을,누가 다녀갔는지도 쉬이 알아차리지 못할, 그리하여잠시나마 영정 앞에서 손을 모아 눈을 감고 있어도 좋을. 그렇게 가시는 길에서나마 십 년이 지난 인사를 드렸다. 아마도 기억하시지 못할 테지만, 그 때 잡아주시던 따뜻한 손. 전태일, 그 이름으로 주는 그것을 받는 일은, 적어도 그 세상에 대한 꿈을 꾸는 이들에게 더없는 영광이겠으나, 그러나 그것은 이내 감당하기 어려운 멍에가 되고 말아.

식장 바깥에서 오도엽 시인을 만나 몇 마디를 나누었다. 장지는모란공원, 태일이 형 옆으로 모시기로 했나요, 눈감으시기 전 모습은 어떠셨어요,이제 또 사람들이 많이 몰려올 시간이 되겠네요, 따로어떤 준비된 일정 같은 것이 있나요….아마도 그리하겠는데 논의중이라고,의식을 놓아 지내신시간들, 영도 조선소엘 가보고 싶어하셨다는 얘기, 어제만 해도 천명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으니오늘 하루는 아마 더할 거라고.그런 사람들말고 노동자들이 많이 찾아주면 더 좋아하실 텐데, 하는 씁쓸한 웃음.아, 그리고문득 궁금해진 것이 있어 뜬금없이 물었다. 그런데 어머니 이름이 한자로 어떻게되지요. /작을 소에 선녀 선./ 아아, 작은 선녀, 소선.잘 어울리네요, 어머니랑 너무 잘. / 그러게요, 정말.

연건동 병원을 나와 여느 일요일 오전처럼 강남역에 있는 강의실로 수업을 받으러.잊고 있었는데, 지하철을 타고 움직이면서도, 강의실에 들어서면서도, 사람들 시선이 잠깐씩 멎는 것 같아 보니 그제서야 빈소 앞에서 단 리본을 그대로 달고 있다는 걸 알았다. 시선이라는 건 늘 불편하고 민망스러울 뿐이라, 그만 떼어야 할까 하는 마음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그대로 두고 싶었다. 생각보다, 착한 선녀, 그 이름을 모르는 이들이 더 많았다. 누가 상을 당했나 봐요, 물으면,네, 상을 당했어요, 라고 대답을 했고, 그 이름을 알거나 어제 뉴스를 보았다는 이들도, 그렇다고 별스럽게 그렇게할 것까지야 하는 표정에, 친족이라도 되나 하는 피식 웃음까지 들었지만, 그러거나말거나. 어쩔 수 없이 나 또한 그러한 내 꼬라지를 의식하면서, 그 리본을 달고 앉아 무언가 내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의식하면서, 이게 무언가 싶어하면서, 마지막 시간 문제풀이를 했고, 마지막 강의라고 찹쌀떡을 나누어먹었고, 맥주집 뒷풀이에도 가앉아 있었다.강남, 그 욕망의 거리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언제나 떠나고 돌아오는이들로북적이는 동서울터미널에 가표를 끊었다.누군가의 말처럼존재가의식을 배반하는 것인지, 아님, 그 거꾸로인지. 그러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인지, 그도 아니라면 그토록이나 역겨워마지 않는 의식의 허세를 몸소 보이고 있는 것인지, 막차를 기다리는 터미널 대합실에 앉아, 나는 내 몸뚱이가 그렇게나 낯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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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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