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도무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열흘만큼의 시간을 두게 되어 다시 사잇골로 올라왔고, 다시 병원으로 갈 때까지 하기로 했던 것들을 어떻게든 해 봐야지 했지만 도무지 되지를 않는다. 시간이 없어서만은 아니야, 실제로 시간이야 이렇게 주어지기도 했지만 마음이 되지를 못하는 것이다. 가슴은 울렁울렁,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 숙제처럼 맡아놓은 그 일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주어진 열흘 시간동안 할 수 있는 만큼 그 아픈 것에 관련해 찾아볼 것도 찾아보고,시간을 쪼개 공부라도 해야 하겠지만그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를 않아. 며칠돌보지 못한 손바닥만한 텃밭에 풀들이 삐죽삐죽 올라와 있지만그조차 그냥 망연히 보기만 할 뿐.엉아는 오자마자 샘골에 올라가 논에 물을 대고 다시기운을 내 일을 하고 있는데외려 나는 기운도, 정신도 차리지 못한 채 이렇게 오두막에 쳐 박혀 있을 뿐이다.겨우 한 거라고는 하기로 했던 일거리, 글을 써 보내기로 한 곳들에그만 마음을 굳혀, 미안하다는,써 보내지 못할 거라는메일을 보낸것뿐이다. 그러고나니 그나마울렁대던마음에 한 줌 걸리던 건 내려놓은 것 같아.곁에서 더 씩씩해야 하는데, 더 기운을 내야 하는데 그것도 억지로 되지는 않는다.이미 싸움은 시작되었고 다시 병원으로돌아가고 나면 그 때부터는 정말 길고 긴 싸움에들어갈 테지.내내 씩씩하고 기운 있어야 할 거라는강박도 어쩌면자연스럽지 못한 건지도 몰라.나 또한 내 상태를 인정하고 몸과 마음을 살펴 이 상태로 있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우격다짐의어거지 씩씩함을 가장하느니 약하면 약한대로, 두려우면 두려운대로 몸과 마음의 평온함, 맑고 부드러운 기운이 오래 흐를 수 있게끔 그에 맞추는 것이 더 좋을 거야.
안녕이라 말했던 사람 / 한강
어젯저녁에는 엉아들, 아이들이랑 같이 속초 시내에서도 밝히고 있다는 촛불집회 하는 곳에 나갔다 왔다. 이리 말하면 그 자리를 마련하고 준비하느라 애쓴, 절박한 심정으로 그곳에 모인 이들에게 미안한 말이 될는지 모르겠지만, 실은 바람이라도 쏘이고 싶은 마음에 거기를 갔던 거. 마음이 답답하고 울렁거려, 몸에 기운이 없고,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가 않아 거기라도 나가본 거. 아마 서울이니 어디니 하는 곳들에는 그런 촛불이 엄청났다지. 아마 온 나라가 밤마다 촛불들로 점점이 반짝이고 있는가 보다. 맑은 것, 무언가 맑은 것을 찾다가 오랜만에 이계삼 선생의 글들을 모아 놓은 까페 에 들어가 한참토록 눈을 씻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는 최근 몇 해 사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지런히, 그리고 가장 구석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밝혀 말해오고 있어. 지난겨울 아버지를 여의었다 들었는데 그러던 사이에도 참으로 성실하고 부지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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