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순 누님에게 전화가 걸려와. 소길리 집으로 쌀이 와 있다면서, 감자네 집 앞으로 배달이 왔다는데 언제 시간이 되느냐며. 거기, 우리가 제주에 와서 두 해를 살다 떠난 소길리 조그만 돌담집. 품자가 태어날 준비를 하면서, 게다가 할머니까지 내려와 함께 지낼 생각을 하면서 방 한 칸이라도 더 있는 집을 찾아, 지금 살고 있는 하가리 집으로 옮겨왔다. 그러면서 감자네가 살던 그 집에는 필순 누이의 아주 가까운 분이 들어가 살게 된.
우리한테 쌀을 보낼 사람이 누가 있을까, 꼽아지는 몇몇 얼굴들이야 이미 새로 이사한 집 주소를 알아, 보낸다 해도 이리로 보내었을 텐데, 짐작이 잘 되질 않았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소길리 옛집에 들렀더니, 이번 것도 철수 큰아빠네 집에서 보내주신 거.
혹시 철수 아저씬가, 하고 잠시 생각이야 했지만, 올 봄만 해도 하가리 집으로 보내어주었으니, 철수 아저씨는 아닐 텐데,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아마 그때도 소길 주소로 보내었던 걸, 당시에는 이 고장 집배원이 감자네를 알아, 이사한 거를 알고서 이쪽으로 가져다 주었을 거. 그 사이에 담당 집배원이 바뀌면서 옛 주소가 적힌 우편물들은 소길 집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던 거.
저 논에서 거둔 나락들. 지난 해 봄, 감자를 안고 인사를 가면서 보고온 논. 품자가 태어나던 봄에도 두 포대를 보내면서, 식구가 늘었으니 쌀을 보내는 거라며. 그 쌀이 다 떨어지기도 전에, 또다시 쌀 한 자루를 보내어 온 거. 아마도 이번 것은 올 해 가을걷이를 하고 거둔 햅쌀이겠구나.
작년 오월이었으니, 감자가 꼭 지금 품자만할 때였을 거야. 조탑 할아버지를 만나러 간 길에 제천으로 올라가 나무판을 깎는 농사꾼 큰아빠큰엄마네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던 게. 올 봄에는 육지엘 올라가질 못하고, 파란 하늘만을 올려다 보며, 내년 할아버지 떠난 십 년이 되는 해에는 품자도 안고 다시 올라갈 거란 기약만을 둔 채로.
오랜만에 큰아빠의 나뭇잎편지 홈페이지엘 들어가보았더니, 마침 큰아빠큰엄마도 어제 조탑엘 다녀온 모양이야. 그 일주일 앞서 감자랑 함께 오두막엘 가서 피네 아저씨를 만나 마당에서 놀고, 그 담날엔 품자도 안고서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왔던.
소길리로 배달되어온 쌀자루를 감자 앞에 내려놓으며 (물론 감자 생일날 쌀자루가 온 거는 우연이었지만) "감자야 생일 선물이야! 평동 큰아빠큰엄마가 감자 쑥쑥 크라고 쌀을 보내주셨네 ㅎ" 했더니, 으랏차 쌀자루를 들어보이려 하네 ^ ^
끄응끙, 해도 들어지지가 않으니 쌀자루를 만져보다가 매듭 묶은 끈을 찾았어 ㅎ
으하하하하, 매듭 고리를 만지면서 무언가 비밀이라도 알아냈다는 듯이 ㅎㅎ 품자도 그 뒤에서 형아를 보고 있네. 이야아, 형아는 좋겠다. 저렇게나 커다란 생일 선물을 받았어.
그리운 것들이 많다.
그리운 삶들이 있다.
어쩌면 감자품자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그 삶들을 가까이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