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감자네는 카페 땡땡이를 치고 섬의 남쪽엘 다녀왔다. 처음엔 서귀포 뮤직페스티벌에 가서 일박이일로 실컷 공연을 보고 오려고 땡땡이 계획이었는데, 토요일엔 강정에서 <강정낭독회>라는 조그만 행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곤, 그럼 땡땡이 첫날은 강정에 가는 걸로.
강정낭독회에도 가고, 강정평화센터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 이튿날 해군기지 공사장 앞 미사까지 드린 뒤에 뮤직페스티벌은 일요일 저녁 하루만 가서 보기로 ^ ^
강정 해군기지 공사장 앞 평화미사에도.
마침 제주에 내려와 강정에서 함께 머문 유민아빠 김영오 아저씨하고도.
감자는 할아버지 모자가 좋아. 신부님 품에 안겨 한참을 놀아.
1. 강정낭독회
제법 사람들이 많았다. 강정 평화책방이 그리 넓은 공간은 되질 못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앉을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아. 강정에 들어가 살고 있는 지킴이들이며, 마을 주민들, 그리고 강정을 아파하며 지지와 연대를 놓지 않고 일부러 찾아준 사람들.
누군가는 슬라이드에 그림을 비춰주며 그림책을 읽었고, 누군가는 노래를, 누군가는 피아노 연주를, 또 누군가는 현장 미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별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을 글로 써서 들려주었다. 제주의 아픔이며 이 땅의 아픔인 제주 여성들의 삶.
세 시간 가까이 행사가 이어졌고, 좁게 붙어 앉은 그 공간에서 감자는 그 세 시간을 다소 힘겨워하면서도 잘 있어 주었다. 어김없이 '무슨 아기가 이렇게 순할까?' 하는 감탄을 자아내었으니, 이 날도 또 한 번 순둥이의 진가를 ㅎ
감자야, 반디 이모야 기억나지? 지난 번 난장이공 카페에서 선경 이모야 공연할 때 다녀간 이모.
더는 못참아, 상 위로 올라 앉은 감자는, 선경 이모야 노래가 시작하자마자 엉덩이 어깨로 박자를 타며 춤을 춰.
아, 여긴 민과 경이 참여해 함께 가꾸고 있는 <공간>이라는 공간 ^ ^ 마침 전날 이 자리에서 벼룩시장이 열렸다면서 감자네 식구에게도 남은 물건들을 보여줘. 여기에서 감자는 나무기차 장난감에 수영 팬티 하나, 모자에 샌들까지 득템 ㅋ
2. 강정 평화센터에서.
그날 밤, 감자네는 평화센터 4층에 마련된 순례자들을 위한 방에 잠자리를 폈어. 와아아, 우리 집보다 훨씬 크고 좋다 ^ ^ 원래는 숙박하는 값을 받아 운영하는 곳일 텐데, 신부님의 친구한텐 그냥 재워준다면서 방을 미리 따뜻하게 덥혀주셨어. 감자야, 아무래도 네가 신부님이랑 친구인가봐. 아기 같은 신부님, 그리고 아기 감자.
이튿날 아침 식당엘 나가보니 감자네말고도 평화센터에서 잠자리를 둔 분들이 더 있었어. 지난 저녁 강정낭독회에 신부님의 아코디언 공연이 왜 없었나 했더니, 같은 시간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민중대회엘 다녀오신 거. 그리고 그 민중대회에 함께 하기 위해 416연대 활동가들과 세월호 유가족인 유민아빠 김영오 님도 제주에 내려와 있었다. 아침 밥상에 나가서야 유민 아빠도, 김혜진 위원도 평화센터에서 함께 밤을 보냈다는 걸 알았네.
김혜진 위원은 416연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다가 래군 형과 함께 재판을 받고 계신 분. 두 해 전 더작가에서 어린이책 작가들이 비정규직을 주제로 <비정규씨 출근하세요?> 라는 동화집을 내던 때, 동화작가들하고 그 일을 함께 하던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 만나게 될 사람들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나 보다. 유민 아빠를, 김혜진 위원을 강정에서 이렇게 만났네.
아하하, 신부님은 감자엄마가 선물한 조끼가 마음에 안 드시나봐 ㅠㅠ 그러길래 좀 더 밝은 색으로 고르라니까 말이지 ㅎㅎ
신부님 건강도 걱정이지만, 두희 이모야도 좋아보이질 않아. 청춘을 모두 싸움터에서 보낸 삶, 두희 이모야를 보는 데도 자꾸만 쓸쓸한 마음이 들어. 제주에서 두 해를 보내고 있었으면서 왜 진작 자주 찾지를 못했을까.
3. 강정 해군기지 공사장 앞 평화미사.
일요일 오전, 11시터 시작한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 미사. 2011년 10월 10일, 이 미사가 시작해 날마다 이어지고 있으니 꼬박 4년을 지나고 스무날이 더 되던 날이었다. 이 괴물같은 공사장 앞 평화미사에 감자는 이제야 함께 해. 감자에게는 지구별에 와서 처음으로 드리는 미사.
쌍욕을 해대며 미사를 방해하는 공사장 관계자들이 있었다. 이날 보던 모습이야 약과겠지. 가만히 수첩을 꺼내어 메모를 하시던 신부님의 모습은 외롭고도 쓸쓸해 보여. 어느덧 막바지로 가고 있는 전쟁기지 공사장, 드문드문 비어있는 저 걸상들.
신부님과 감자네와 김혜진 위원과 유민아빠 김영오 님.
미사를 마무리할 즈음, 유민아빠는 감자를 보며 이 아기가 희망이라며, 오늘 미사에는 희망이 함께 하고 있다며 웃으며 감자 얼굴을 만지며 눈을 맞췄다. 나는 어쩔 줄을 몰라 그저 웃기만.
평화센터 식당에서 만나던 아침에도, 밥상에 함께 앉아있던 자매님들이 감자를 보며 예뻐할 때, 나는 고개가 자꾸만 숙여졌어. 유민아빠에게도 이렇게 사랑받는 아기였겠지. 그러다 어느 날 수학여행을 가서 돌아오지 않는 딸. 그 아비 앞에서 감자를 예뻐해주는 눈길이며 손길들에 어떤 얼굴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
사십오일 동안 단식을 하며 말라버린 얼굴을 하던 그이를 기억한다. 문득, 십 년 전 사십사일 단식을 이어가던 때가 떠올라. 그럼에도 그 심정이 어떠했을지를 짐작할 수 있다 말하기는 어려워.
유민아빠는 감자를 보며 웃었고, 감자아빠는 이젠 만날 수 없는 유민이를 생각해.
4. 할아버지가 사준 국수
미사를 마치고 나서는 신부님이 맛있는 걸 사주신다며 서귀포 칠십리로 데려가 주었어. 감자네는 미사를 마치고 나서는 자구리 공원에서 열리는 뮤직페스티벌에 갈 예정이었지만, 왠지 공연장에 갈 거라는 말을 하기가 민망해서 그냥 어디 좀 들러서 올라갈 거라 얼버무리고 있었는데, 마침 신부님이 데려가 주신 곳은 페스티벌이 열리는 공연장 바로 앞이었어. 강정에도 자주 찾곤 하는 사장님이 한다는 <자구리 국수>에서 국수 한 그릇씩에 맥주까지 나누어 마셨는데, 우와아아 국수가 얼마나 맛나던지. 그동안에도 맛있다 하는 국숫집을 몇 곳 다녀보긴 했지만, 젤로 맛있게 먹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