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을 때 까똑 소리가 울려. 그 시간에 또 누가 술을 먹다 연락을 보내오는 건가 싶었는데, 놀랍게도 래군이 형 프로필이 뜨는. 혹시! 나오게 된 걸까, 순간 와락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메시지를 열었더니, 래군 형 카톡 계정으로 형수가 보내온 거.
형수는 아직 투지폰 전화기를 쓰고 있어서 카톡이나 텔레그램으로 파일을 주고받을 수 없어. 그래서 사진 파일 같은 게 있어도 메일로 주고받곤 해야 했는데, 이번엔 형의 카톡 아이디로 사진들을.
며칠 전 형수가 전화를 걸어왔거든. 검찰 쪽 증인을 변호인단이 쩔쩔매게 만들었다는 두 번째 공판 소식을 전하면서, 요즈음 지난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다는. 누이는 아직도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있으니, 사진을 찍어도 디카로 찍는 거여서 바로바로 전할 수가 없고, 일일이 컴퓨터로 옮겨 정리를 해야 한다고. 그러면서 디카 나오기 이전 필름 사진기로 찍은 사진들도 하나하나 스캔을 받아 정리를 하고 있는데, 그게 벌써 삼천 장이 넘었다던가. 그렇게 옮긴 사진들을 한 사람 한 사람 폴더를 만들어 챙겨 담고 있다고까지. 일단 정리한만큼만이라도 먼저 보내줄게, 하며 전화를 끊었는데, 그 사진들을 보내온 거였다.
간밤에 래군 형 이름으로 카톡이 떠서 깜짝 놀랐어.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엔 나올 수 있을까.
겨울이 오기 전에.
이천일 년이라고 사진에 적혀 있으니, 벌써 십오 년이 지난 사진이겠다. 그럼 나는 사진 속 래군 형보다 지금 나이를 더 먹은 게 되겠구나. 마석 모란공원이었다. 래전 형이 누워있는 곳을 찾아, 래군 형과 함께.
이 꼬맹이 아가씨들이 벌써 대학 졸업을 앞두거나 대학생이 되어 있어. 두 녀석 다, 어쩜 아빠랑 그렇게 똑 닮았는지, 첫째 붕어빵, 둘째 붕어빵 하고 부르곤 했는데.
아참, 누나가 전해준 우스운 공판 에피소드 한 가지는, 검찰 측에서 얼마나 준비를 허술하게 하고, 아무렇게나 끼워맞춰 엮으려고만 했던지, 형의 통화목록을 뒤지면서 박수빈라는 인물과 통화기록이 많다는 걸 추궁했다던가. 하하, 그 인물은 바로 저 사진 속 타이타닉 자세를 하고 있는 둘째 붕어빵 아이 ^ ^
어차피 정치적 판결일 거고, 저들 입맛대로 끼워맞추고 엮어가고 하겠지만, 그건 너무 심하잖아. 빵 터져 웃으면서도 듣는 내가 다 부끄러워 ㅜㅜ
그러니까 이 때는 내가 외방리 석고개에 살고 있을 때였다. 저기는 석고개 아래로 흐르는 개천가. 래군 형네 식구랑 돌돌이 누이가 함께 다녀가던.
그 당시 나랑 함께 살던 개 깜비랑 같이. 내가 세들어 살던 집 아래, 가을걷이를 마친 논에서.
그리고 요긴 이발소하던 자리를 방으로 꾸며 살던 석고개 우리 집 ^ ^ 하아, 나도 정말 오랜만에 보는구나. 그래, 맞아. 그때 한 쪽 벽에다는 그 시절 내가 만나던 신망애 아이들 사진을 가득 붙여놓고 있더랬어.
여기는 외방리 석고개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나오는 비금리의 몽골문화촌 ^ ^
그러고나서 우리는 다같이 마석 모란공원으로 갔구나. 내가 살던 수동면 외방리 석고개는 마석과 아주 가까웁던. 요 꼬맹이들에게는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친삼촌. 그러나 해마다 이곳을 찾아 만나오고 있는.
문득 사진 속 날짜를 다시 보니, 저 때도 시월 말, 십오년 전 꼭 이맘 때였네.
성아야, 수빈아. 어서 아빠 나오게 해서, 제주도에 꼭 다녀가렴.
이땐 그보다 일 년 더 전이었네. 개펄이 있는 걸 보니, 형들의 고향집엘 아버지어머니를 만나러 갔다가, 집에서 가까운 궁평유원지엘 나가서 놀 때였나봐 ^ ^
서신의 고향집엘 가본지도 오래되었다.지난겨울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인사를 드리러 가질 못했어. 감자를 낳고 얼마 되질 않아, 여기 제주에서는 어떻게도 움직일 수가 없었으니. 그 시절, 눈앞이며 마음이며 새까맣기만 할 때 무작정 아버님을 찾아가 먹여주고 재워달라고, 아무 말씀도 없이 거둬주시던.
여긴 울진 바다가 뒤에 있으니 아마 이천오년 쯤인가 보다. 내가 죽변에 살던 세 해 째, 형네 식구가 다녀갔으니 이 때만 해도 십 년도 더 되었을 때구나.
그런 시절들이 있었다.
다시 모란공원. 유월 육일이라 써 있으니, 래전 형의 추모식이 있던 날이구나. 사진 속 숫자가 잘 보이진 않는데, 아마 이천년이었을까.
아하하, 이런 사진도 보내주었네. 어느 모임을 마치고 뒤풀이를 하다가 노래방이라도 들어간 거였을까. 평소 입지 않는 저런 옷을 다 입었으니, 누구 결혼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암튼 이 사진은 빼고 올릴까 하다가 그냥 이것도 올려 ㅋ 아래 사진을 보니 날자가 동석해 있는 걸 보니 아마도 바끼통 모임이 생기고 난 뒤이긴 한 것 같은데, 언젠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아.
요즘은 스마트폰이 있어 아무 때곤, 누구라도 사진을 찍어대곤 하지만,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엔 그러지도 않았는데, 형수는 언제나 조그만 디카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한 컷씩 찍었던 거 같아 ㅎ
언젯적인지는 여전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머릿가 슬슬 빠지고 있는 걸 보니 저 앞에 있는 사진들보단 시간이 지나서인 것 같아. 그래도 지금에 대면 아직 씽씽한 청춘이네. 돌돌이 누이도 흰머리 하나 없이 환하게 예쁘다!
지난 10월 23일로 래군 형은 수감된지 백일을 맞아. '박래군 석방촉구' 싸이트에서는 100자로 쓰는 석방촉구 메시지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엊그제인 29일부터는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와 인권재단 '사람'을 중심으로 <<노란연필 : 변화를 쓰다> 캠페인이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