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선

냉이로그 2013. 10. 10. 19:58




 신선을 맞이한다는 뜻의 이름, 을 가진 바위들과 정자. 적멸보궁이 있는 법흥사로 가다 보면 조금 못미처 있다는 요선암과 요선정. 아직 영월에 살면서도 영월 곳곳을 다녀보지는 못해. 가까이 어디라도 가보자 하여 달래와 나섰다. 오랜만에 둘이 걷는 길. 하늘은 더없이 파랬고, 햇살이 좋았다.



 주천강 흐르는 물살에 항아리 구멍을 동그랗게 내고 있는 화강암 바위들. 강물을 타고 오던 자갈 같은 것들이 기반암의 오목한 곳들에 들어가, 물살의 소용돌와 함께 오랜 침식과 마모로 만들어내었다는 돌개구멍.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는 이 요선암의 바위들과 돌개구멍이 올 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더니, 정말 그럴만도 하였다.     




 저 강가를 내려다 보는 절벽 위에는 요선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섰고, 그 정자 곁에는 고려시대 석공의 손길로 새긴 마애여래좌상이 있어. 일찌기 신경림 선생은 이곳에 와 보고는, 밤마다 저 마애여래가 바위를 빠져나가 중생들 몰래 강에서 놀다 돌아온다고 노래를 했다지. 이 능청스런 여래보살 같으니, 그러고 보니 생긴 모습도 꼭 그러하단 말이지.

           주천강가의 마애불
            - 주천에서
                                     신경림

          다들 잠이 든 한밤중이면
          몸 비틀어 바위에서 빠져나와
          차디찬 강물에
          손을 담가보기도 하고
          뻘겋게 머리가 까뭉개져
          앓는 소리를 내는 앞산을 보며
          천년 긴 세월을 되씹기도 한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논틀밭틀에
          깊드리에 흘린 이들의 피는 아직 선명한데
          성큼성큼 주천 장터로 들어서서 보면
          짓눌리고 밟히는 삶 속에도
          사람들은 숨가쁘게 사랑을 하고
          들뜬 기쁨에 소리 지르고
          뒤엉켜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참으려도 절로 웃음이 나와 
          애들처럼 병신 걸음 곰배팔이 걸음으로 돌아오는 새벽
          별들은 점잖치 못하다
          하늘에 들어가 숨고
          숨 헐떡이며 바위에 서둘러 들어가 끼어앉은
          내 얼굴에서는
          장난스러운 웃음이 사라지지 않고있다.




 요선정은 두 칸 두 칸 평면으로 팔작지붕을 얹은 조그만 건물. 평면이 두 칸씩이니 팔작 지붕틀을 구성하기 위한 충량은, 가운데 들보 하나에 모두 얹어놓고 있어.  




 어디에 나가는 걸 좋아하질 않아, 집에 있기만을 좋아하는 달래를 꼬시고 꼬셔 (개천절에는 실패, 한글날에야 겨우 성공하여) 함께 나선 길이었는데, 달래도 아주 좋아하였다. 파란 하늘아, 맑은 물살아, 반짝이는 햇살아, 모두모두 고맙다. 늬들이 도와주어 즐거운 소풍이 되었어. 슈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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