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질, 끌질 /4월 25일
운공 위 소로와 장여 얹을 곳
어제 전기톱으로 모양을 낸 운공에 소로와 장여가 얹힐 부분 깎는 일을 했다. 그 둘은 각재이니 크기에 맞게 네모진 홈을 내 주는 것이고, 아랫부분은 둥글게 깎아낸다. 둥근 부재로는 기둥과 도리 두 가지가 있으니 아마 도리와 만나는 부분일 것이다. 오전 교육이 시작하자마자 손톱을 가지고 먹선을 따라 톱질을 했고, 그 가운데 파낼 부분은 깎아내기 쉽게 전기톱으로 흠을 내었다. 그리고는 망치와 끌을 가지고 땅, 땅, 땅! 생각해 보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아니, 엄청난 일이랄까, 아니면 대단한 일? 정말로 나는 끌이라는 걸 태어나 한 번도 만져보기는커녕 구경도 못해봤는데 집을 짓는 일에 그 중요한 곳을 깎고 있다니. 어쩌다 부재 하나 망친 게 나오면 교수님 어쩔 줄 몰라 속상해하시곤 하는데, 이걸 나 같은 쌩초짜가 함부로 만져도 되는 건지. 물론 배우는 과정이니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겠지만 어쩌다 문득 생각하면 참 기분이 이상하다. 어디 못 쓰는 나무, 버리는 나무에 대고 연습 같은 걸 해 본 것도 아니고 그냥 바로 진짜 집을 짓는 부재를 깎아 나가다니.
비뚠 톱질
톱질, 하는 거에는 나름 자신이 있는데 이상했다. 반먹을 살려가며 정확히 곧게 톱질을 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반대편에서 보니 먹선에서 손톱만큼 빗겨 있는 거였다. 이상하다, 거참. 나무를 돌려놓고 반대편에서 톱질을 하니 또 그 만큼으로 먼저 하던 쪽이 먹선에서 손톱만큼 빗겨 잘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먹선이 잘못 그어진 모양. 그저께를 하루 빠지고 어제부터는 바쁜 마음에 다른 누군가 먹선을 내 놓은 것을 가져다 그것에 맞춰 열심히 깎고만 있었는데 그 먹선이 제대로 된 것인지 확인을 하지 않은 게 실수였다. 우이 씨! 톱질만큼은 깨끗하게 잘 한다 싶었는데 영 엉망이 될 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양쪽에서 톱질을 달리하면서 가운데에서 만나게끔 잘라나갔다. 나중에 끌로 다듬어 면을 고르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러다 보니 톱질한 면이 곱지 못하다. 날 들어간 자리도 얇지 않고 두꺼워질 수밖에. 게다가 양쪽에서 잘라 들어가는 것을 어떻게든 자연스레 매끈한 면으로 이어지게 하려니 반먹을 살리는 것에서 먹선을 아주 죽이는 것으로, 어떤 때는 먹선 바깥까지 나가기까지 했다.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다른 곳이야 조금씩 치수가 흔들린다 하더라도 부재들을 끼워 맞추는 곳은 암과 수가 꼭 맞물려야 하니 아주 정확해야 한다. 자칫하면 헐겁게 끼워지거나 아니면 들어가지가 않아 애를 먹어야 하겠지.
아아, 끌질
최대한 먹선 반먹을 살리는 쪽으로 하며 톱질을 하고(그래봐야 이미 그르쳤지만) 망치로 끌을 때려 어느 정도 파낸 뒤에는 미는 끌을 가지고 면을 다듬어 나갔다. “끌을 밀 때는 팔 힘으로 하는 게 아니야, 이렇게 가슴에 밀착시키고 몸으로 미는 거지. 그리고 끌로 밀 때는 한 번에 끝까지 밀어야 해. 깨작깨작 밀면 그대로 날 자국이 남게 되거든. 이렇게 가슴에 대고 몸을 밀어 한 번에.” 아아, 정말. 깨끗하게 나간다. 이렇게 하는 거구나. 때릴 때는 먹선 안으로 밀리지 않게끔 그 바깥에서 한 번 쳐준 뒤 먹선에 정확히, 밀 때는 결을 살려 한 번에 끝까지.
주추를 놓았다는데.
오전 내내 해야 장여와 소로를 얹는 부분 다듬기를 겨우 마치고 아랫부분 도리와 만나는 부분 끌질을 시작했다. 점심을 먹었고, 산에는 나무마다 연둣빛 이파리들이 푸릇푸릇하고, 오후 교육을 받으러 나서니 일간이 아니라 교실로 모이라 한다. 교장 선생님이 앞에 서서 강의를 시작했는데, ‘기준틀’이라는 것, 도면에 있는 것을 실제 집 지을 땅에다 옮겨 그 기준을 표시하는 것을 ‘기준틀을 낸다’라고 한다는 것, 그 기준틀 내는 법에 대해 가르쳐주었는데 그만 나는 꾸벅, 졸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들었다 하는 것도 힘들어 더 버티지 못하고 턱에 팔을 받치고 잠에 들어버렸다. 책걸상 끄는 소리, 안전화 발자국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강의를 마치고 다들 교실 밖으로 나가고 있네. 아, 졸려라. 일어나기 싫어. 심지어는 ‘차라리 강의가 더 길었으면 조금 더 잘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나가고도 한 오 분은 더 책상에 엎드려 있다가 억지로 몸을 일으켰네. 바깥에 나오니 벌써 정문 쪽에서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어. 사람 손으로 치울만한 것들은 사람들이 하고, 사람 손으로 되지 않는 무거운 것들은 포클레인에 크레인까지 나와 들어 날랐다.
고백, 하자면 기준틀 잡는 일을 보지 못했다. 포크레인이 오고, 크레인이 와서 덩치 크고 무거운 것들 들어 나를 때쯤 나는 잠을 못 이기고 한 쪽으로 가 눈을 감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도 못 봤다. 물수평을 재면서 주추 놓을 자리를 보는 거며 잔돌을 깔고 그 위에 주추를 놓는 거며 그 주추 위에 올라설 기둥에 그랭이질을 하는 거며……. 에이, 몰라. 어쩌면 좋지?
10조 만세!
다 마친 뒤에는 조 회식이 있어 바깥엘 다녀왔다. 글쎄, 이래저래 얘기를 듣기도 하고 곁에서 보다 보면 열 개 작업조 가운데에서 우리 조만큼 분위기 좋은 조는 없는 것 같다.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각 조마다 이런 저런 갈등이나 오해, 성격이나 스타일에서 어긋나 어려워하는 문제들이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 같은데 적어도 우리 조에서는 그런 불편함으로 문제된 일은 없었다. 불편하기는커녕 나 같은 경우는 우리 조에서 일을 배우는 게 좋기만 할 뿐.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조원들 사이에 차츰 말하고 싶지만 못한 채 마음에만 품는 얘기들이 하나 둘 재워진 것 같고, 그러던 것이 이번 기회에 한 번 같이 저녁이라도 먹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누자고 한 것이다. 나물 반찬이 아주 맛있게 나오는 밥집엘 갔네. 맛나게 밥을 먹고 나 이야기 물꼬를 트기 시작하니 이 얘기 저 얘기가 많아. 조장님은 조장님 나름으로의 어려움, 큰 형님은 큰 형님으로서 느끼던 부분, 그리고 또 누구는 어떤 거, 누구는 어떤 거……. 좋았다. 그렇게 얘기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서로들 얘기 나누다 보니 역시 어떤 부분은 오해였고, 또 어떤 부분은 말을 하면서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는 것들이었다. 다른 사람들 얘기는 다 빼고, 나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불만으로 나온 얘기는 일을 할 때 지나치게 꼼꼼히 하려 한다는 거, 그러지 않아도 될 부분에서까지 너무 살피며 한다는 거 하나와 또 하나는 담배 피우러 자꾸만 없어진다는 거, 좀 더 부지런히 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에구, 이 느려터진 화상이여. 그런 얘기들까지도 좋았다. 서로 하고픈 말을 하면서 마음을 푸니 얼마나 좋은지. 그래, 우리 조라고 해서 조원 다섯 사람이 너무너무 잘 맞거나 다들 허물이 없어 지금껏 잘 해온 것은 아니었을 거다. 여느 조에서 안고 있는 것처럼 우리 조에도 문제야 없지 않겠지. 하지만 그러한 문제들로 해서 서로에 대해 포기를 하게 되거나 등 돌리는 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잘 맞춰 올 수 있었다는 게 너무나도 고마운 것이다. 사람들 사이 문제 되는 것들이야 그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다 있기 마련일 텐데, 정작 중요한 건 그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는가에 있다는 것을 다시금 배우는 것 같았다. 필요한 것은 아픔과 고통을 없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그 아픔과 고통을 이겨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달라는 기도일 것이고, 사람들 사이의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들을 잘 풀어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순이 우주로 / 크라잉넛
별빛
밥을 먹고 일어나 당구 한 게임을 쳤다. 이게 얼마만인지, 한 칠팔 년 만에 처음인 것 같네. 고등학교 다니면서 교실보다 더 자주 드나들던 때 기분이 그대로드는 것 같았다. 쓰레빠부터 찾아 갈아 신고, 담배를 꼬나물어, 큐대를 골라, 쵸크칠. 잠깐 그 때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헤헤. 어울려 함께 하니 좋았다. 몸을 좀 쉬게 해줘야겠다 싶어 다른 조원들보다 먼저 학교로 돌아왔다. 삼척의료원 앞에서 밤 버스를 타고 활기리에 내려, 걸어들어오는데 검정 하늘에 반짝이는 것들 몇 개가 멀리 보였다. 다 좋다, 오늘 하루 잘 보냈다. (오후 교육시간 잠자느라 주추 놓는 거 못 본 건 빼고.OT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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