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리에는 목수들이 산다 / 4월 26일

아침에 일어나 출근 카드를 찍으면서 정문 앞 어제 일해 놓은 것을 보면서 오늘도 이어 기둥 세우는 일을 하려나 했다. 어제 그 과정을 잘 배운 사람들에게 물으며 어디까지 일이 된 것인지 물으니 아직 기둥에 그랭이질을 하지는 않았고, 기준틀을 낸 뒤 주춧돌을 놓은 것까지만 한 거라 했다. 기준틀을 낸다는 것, 그건 말 그대로 세울 집의 기준이 되는 바깥틀을 두는 거였다. 기둥이 들어갈 네 모서리의 자리를 잡고 그것들이 서로 틀어지지 않도록 직각되게 하는 모서리 각을 나무 판을 꽂아 표시하는 일. 여기에 기둥 들어설 자리 주툿돌을 놓기 위해 땅을 파고, 그 위에 주툿돌의 높이를 계산해 물수평기로 높이를 일정하게 맞추고, 기준틀 사이를 매 놓은 실과 주춧돌에 그린 십반먹이 꼭 맞도록 놓는 일까지 한 것이다. 그런데 어제는 주춧돌의 십반먹과 기준틀 사이에 맨 실이 정확히 맞지 않아 그 부분부터 다시 하기로 하고 일을 마쳤다는 것이다. 집을 세울 때 이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하는데, 이렇게 해 주춧돌 십반먹과 기준틀에 맨 실의 각과 정확히 맞추고, 그 위에 올릴 기둥 단면의 십자먹까지 그 셋을 모두 꼭 맞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랭이질이라는 과정이 하나 더 있는데 이것은 주춧돌의 윗면이 수평일리 없으니 돌의 굴곡에 맞춰 기둥 밑면을 깎아내는 걸 말한다 했다. 하긴 그렇지 않으면 기둥이 어디 제대로 서 있을 수나 있겠나. 이러한 설명을 들으며 살짝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중요한 과정을 하나도 못 배우고 지나갈 뻔 했으니 말이다.

그래 오전 교육에는 바로 주춧돌을 다시 놓는 일부터 해 기둥을 세우려나 했더니 그건 아니었다. 작업장에 모였고, 운공 조각을 계속해 나갔다. 운공 깎기를 하려면 낮은 모탕이 있어 그 위에 올려 놓고, 또 내 몸도 그 위에 걸터 앉아 해야 하는데 낮은 모탕이 모자랐다. 어제까지는 대충 받칠만한 나무를 찾아 바닥에 주저 않은 채 깎았는데 그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아예 운공을 들고 작업장 바깥으로 나갔다. 나가보니 예전 기수들이 깎가 놓은 건지, 못쓰고 쌓아놓은 선자 서까래들이 보여 그것을 겹쳐놓고 그것을 모탕으로 삼았다. 바깥에 나가 자리를 잡으니 더 좋아. 무엇보다 햇볕 받으며 일을 하니 좋았고, 산이 보여 좋았다. 산에 나무들이 바람에 연두 이파리들을 팔랑거렸다. 그렇게 우리 풋내나는 목수들은 끌을 쥐고 운공을 깎았다. (아, 저는 기이입니다.냉이라 해도 좋고요.)

끌질은 내게는 여전히 서툴기만 했다. 오늘 하루 종일 매달린 것은 운공의 옆면 모서리각을 세우는 일이었는데 그것을 꼭 같은 간격과 높이, 기울기로 깎는다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그냥 끌을 밀어 매끈한 결을 내는 것도 어려운데 거기에 그러한 치수와 기울기까지 맞춰야 하니 그럴 수 밖에. 꾸역꾸역 끌을 밀었다. 한 번에 미는 걸 잘 못하고 그러니 중간중간 보풀이 일어나는 것처럼 지저분해지기도 하고, 그러면 또 그걸 다듬는다고 끌을 대면결이 또 갈라지기 일쑤. 그렇게 쥐파먹은 듯, 누더기 끌질을 해나가다 보니 어쨌든 중요한 건 끌질은 단 한 번이어야 한다는 걸 알 것 같았다. 글쎄, 내가 많이 헤매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지여러 사람들이 내곁으로 와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일하는 방법이나자세를 가르쳐 주곤 했다. 벌써운공 조각을 다 마친 1조 동생이와서각을 잡는 법을 알려주었고, 4조에 있는 형들이 지나가다 보고는 둥근끌을 써야 할 곳을 일러주며 빌려다 주었다. 8조 밀양 아저씨가 와 보고는 끌날이 덜 갈려 면이 잘 안 나온다며 깨끗이 미는 법에 대해 일러주었고, 9조 조장 아저씨가 마무리 하는 법을 일러주었다. 그리고 또, 또……. 깎고 깎다 보니 다른 분들이 한 것처럼 아주 깨끗하게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모양이 나기 시작했다. 오후 교육이 마칠 때까지 그렇게 내내 운공을 붙들고 씨름. 교수님은 내일까지 운공 깎기를 마치자고 하는데 어휴, 나는 아직도 먼 것 같아. 모서리 내는 것만 해도 지금이야 대충 되었달 뿐 그무개를 대고 중심선을 다시 그으니 다시 손 볼 곳이 많아, 게다가 아직 도리와 만날 부분 둥글게 깎아낼 곳은 손도 대지 못했는 걸. 아마 교육생들 가운데 반 넘게는 운공 조각을 다 마친 것 같다. 그래서 몇 사람은 착고판을 깎는 작업에 들어갔고, 또 어느 쪽에서는 반쪽 짜리 운공을 깎는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는 일을 마친 사람들끼리 작업장 뒤쪽 창고처럼 두고 있던 건물 하나를 아주 헐어 치우는 일을 하기도 했다.

오늘처럼 하루 일이 일찍 끝난 날이 없는 것 같다. 다른 때 같으면 한 번씩 시계를 보면서 언제밥 시간이 되나, 언제 끝나나하곤 했는데 오늘은공구 정리하라는 말이 아쉽게 들릴 정도였다.에이 참, 조금 더 하면 좋겠는데, 왜 이리 시간이 빨리 가나……. 글쎄, 그 전까지는 일하는 데 힘들어하고 조금지겨워했다면 오늘은 재미를 느껴 그런 걸까? 정말로 재미있었다. 끌질이라는 것, 모양을 깎는다는 것.

교육을 마치고 난 뒤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부지런히 뭔가를 하는 분들이 많다. 얼마 전부터 얘기가 나오더니 옆 방 사람들은 오늘부터 모형 만들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일주문을 십분의 일로 줄인 모형을 만든다는 거였다. 와, 어쩜 그런 생각을 다 했을까? 그렇게 만들어보면 지금껏 우리가 깎은 서른 가지 정도 되는 부재들에 대해 하나하나 다시 공부가 되겠다. 그 뿐 아니라 그 부재들의 모양이나 치수가 왜 그리 되는지, 부재와 부재를 서로 어떻게 끼워맞추는지 하는 원리에 대한 이해까지도. 그래서 옆 방 사람들은 그것을 만들기 위한 나무까지 사 오더니 오늘 그것을 시작했다. 그 방 사람들 뿐 아니라 교육이 끝난 뒤에도 여기 저기에서 끌이나 망치, 톱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남는 나무 조각으로 방에 필요한 탁자나 옷걸이 같은 걸 만들기도 하고, 아니면 먹통을 손수 깎아 만들기도 하고, 공구함 같은 걸 만들기도 하고. 또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수돗가에 앉아 숫돌을 놓고 끌날을 간다, 대팻날을 간다. 날 가는 거는 교육 시간에 하지 않고 남는 시간에 미리 해 놓으려는 거겠지. 얼마나들 열심이고 부지런인지 모른다. 나는 오전 오후 교육만 마치면 바로 일옷 벗고, 장갑 벗고, 손을 털어버리는데.

활기리에는 목수들이 산다, 무심코적은 말인데 되뇌일수록 왠지가슴이 뛴다. 함께 배우는 사람들 얼굴도 떠오르고, 그이들이 얼마 뒤 목수가 되고 훗날 도편수가 되어 집을 짓는 모습들, 집 짓는 현장에서 만날 모습들이 그려지면서 가슴이 벅차.아, 거기에 가슴 뛰게 하는 또하나는 나도 활기리에 살고 있다는 거,더디지만 이렇게 목수가 되어간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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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일기랑은 상관없지만 ^ ^ 여기에서도 서명 같은 건 할 수 있으니까!


* 섬진강변도로 확장에 반대하는 서명 (마감 35일전)

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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