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1, 2, 3차 추모대회를 다녀올때부터 이 혼란은 계속되고 있었다.스스로에게해명은 못할지언정 그 혼란의 정체라도들여다보고 싶어. 몇 번을 끄적여봤지만 갈피가 잡히지를 않아 날려버리기만 했을 뿐.모르겠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끝까지 붙잡아 그 정체나마확인해볼 수는 있겠는지. 눈이 감겨들고 있어 일단 이 정도에서 남겨둔다. 명동성당 정리집회 뒤에도열한 시 넘어 비택이 한 번 더 있어 뒤풀이 술을 시켰다가도 허겁지겁 다시 나가. 아,그리고 4차 대회에 다녀온 오늘은 정말놀라울 정도였어.믿을 수 없을만큼.)
용산참사범국민추모대회를 다니면서 (1)
- 비폭력직접행동은 가능한 것일까
때리지마!
요즈음 용산참사범국민추모대회에 가면 가장 많이 말하게 되는 말이 이것이다. 정권퇴진 혹은 경찰청장구속,연행자 석방 같은 범대위 핵심구호를대열 속에서 외치는 것보다 목이 쉬어라 더 많이 떠들게 되는 말. 요즘 집회는 지난 해 광우병 정국으로 시작한 드넓은 광장의 촛불을 떠올려서는 안 된다. 열 달도 지나지 않은 그 때의 기억이 21세기 형 새로운 집회 문화, 시민들의 열어낸 광장이었다면 작금의 집회는 예전으로 돌아갔다 말하기에도 한참 모자란 군사독재 시절 이상의 숨막힘과 긴장을 요구한다.지도부를 앞세운 대오의 행진 같은 것도 떠올리면 오산이다. 공지된 집회 장소는 원천봉쇄가 예사이고, 급박히 다른 장소로 옮긴다 해도 이미 그 둘레는 경찰버스로 차벽을 둘러 막아세웠다. 광화문의 명박산성은 하나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꼼짝할 수도 없이 독안으로 가두어 버린다. 집회와 행진 신고 따위는애초부터 없던 것인 양 되어 버렸으니 집회시위에 관란 법률 같은 것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터이니 집회를 마친 뒤 행진이란 기대할 수 없다. 차도를 점거키는커녕 인도를 따라 걷을 수조차 없어 꽉 막혀버리고 만다. 그건 집회에 참가치 않은 시민이라 해도 예외가 아니다. 누구도 통행할 수 없다. 꽁꽁 틀어막은 채 경찰 측이 열어주는 어느 지하도 계단이나 어느 골목 하나 정도만 열려 있을 뿐이다. 아기를 안고 나온 나들이 가족이어도 예외가 없고, 먼 곳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와 역에 닿은 노인 분들라 해도 다르지 않다. 그러니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서로 비밀스런 연락을 주고받으며, 역시 비밀스럽게 다음 장소로 이동, 또 다시 비밀스러운 이동을 몇 차례 되풀이하면서 그나마 경찰을 따돌려 모일만 한 공간을 찾아 움직인다. 하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언제나 집회 참가자보다 경찰버스가 그곳에 먼저 닿아 방패벽을 치고 있어. 그나마 틈이 날 때야 한 번씩 모여 구호라도 외쳐보지만 여지없이 경찰 방패가 밀어 조여든다. 흥분할 수 밖에 없는 시민들, 아니 경찰들은 부러 시민들의 흥분과 거친 항의를 유도하기도 하는데 그래놓고는 그것을 근거로 마구잡이로 연행을 시도하면서 겁을 주거나 언론플레이에 이용을 한다. 집회 자체가 이러하니 자연 곳곳 경찰들의 방패와 가슴을 맞대야 하는 순간들이 많다. 그리고 너무나도 원통하고 분한 집회 참가자들과 거친 진압을 강요당하는 경찰들 사이에는 욕설이 오가기도 하고, 서로 손을 뻗는 공방이 오간다. 경찰 쪽에서는 흥분해 항의하며 방패를 밀어대는 시민들의 안경이나 모자 따위를 잡아채려 하고, 그에 자극받는 시민들은 경찰의 헬맷을 나꿔채려거나 방패를 빼앗으려 들며 말이다. 그러다 보면 경찰의 발길질에 방패 찍기로 이어지고, 시민들 또한 방패를 발로 차거나 그나마 손이 닿는 헬맷 따위에 손을 대는 모습.물론 아무 것도 없는 비무장의 시민들이 더 많이 얻어맞고끌려간다는 거야 굳이말이 따로 필요없다. 때리지마, 때리지마!
얼굴을 맞대고
오늘도 나는 명동 밀레오레 들머리에서 경찰의 방패와 어깨를 맞대고 서야 했다. 밀고 밀리는 힘겨루기는 이어진다. 곳곳에서 몸싸움이 벌어진다. 경찰이 한 여성의 머리채를 잡아 당기고, 그에참지 못한시위대들이 그 앞의 방패를 잡아 끈다. 집회 참가자의 모자가 벗겨지고, 안경이 뒹구른다. 경찰 방패를 잡아당기고, 손에 닿는 헬맷을 치거나 벗기려 든다. 그리고 오가는 욕설의 공방. 흥분하기는 어느 쪽이나 다르지 않다. 잠시 소강 상태가 되면 거의 한 뼘이나 떨어진 채일까, 서로 입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경찰들과 얼굴을 맞대고 몸을 기댄다. 서로 잡아먹을 듯한 눈빛들. 이쯤되면 방패 저 편과 이 편은 마치 적이라도 되는 듯 서로를 으르렁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들이 너무나도 힘들다. 그리고 안타깝다. 나를 쏘아보며 입 모양을 지어 욕을 내뱉는 나이 어린 그 경찰들. 이해가 아주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쪽 집회 참가자들 또한 계속해서 그이들을 자극하는 욕설이나 비아냥을 해대고 있기 때문이다. 무식한 놈들이라는 둥 싸가지 없는 놈이라는 둥 욕지거리로 분을 풀려 하거나 얼굴 생김새를 들먹이는 인신공격으로 약을 올린다.그러면 저쪽이라고 가만히 있겠나. 마찬가지로 그네들도 집회 참가자들에게 적의를내뿜거나약을 올려 깔보는 언사를해대기 마련이다.말하자면 막 싸움이 되는 것. 일단 방패 저 편과 이 편 사이에는 무조건의 적대와 적의만이 남는 것이다.싫다.내 코 앞의 경찰이독기 품은 눈으로 나를쏘아보는 것도 싫고, 그 눈빛에 지지 않으려 나 또한 눈에 힘을 주는 것이 너무나도 싫다. 잠깐의 틈이라도 나면너무나도 말이 하고 싶었고,이제는 그틈이조금이라도 있으면 말을 한다. 바로 내 앞의 그 경찰에게,얼굴 가득 적의를 품고 나를이기려드는 그 청년에게."아저씨, 그렇게 적대하면서보지 마요. 아저씨나 우리나 다 똑같은피해자고 희생자잖아.세들어 살던 서민 다섯 명이 죽고, 경찰도 한 사람이 죽었어요. 우리가 왜 이렇게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대야 해. 어차피 그 쪽도 옷 벗고 나오면 다 같이 서민으로 살아갈 거잖아. 서민은 돈이 없어 죽고, 경찰은 시키는대로 하다가 죽었어……." 이 같은 말을 처음 한 것이 지난 1차 추모대회에서 경찰들과 몸을 꼭 붙여 지리한 대치를 할 때였다. 정말로 너무 답답해울먹이다시피얘기를 했을 뿐 솔직히 그 어떤 반응이 있을 거라 기대하진 못했는데그게 아니었다. 내 앞의 경찰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빛에 힘이 풀어졌다. 그 옆에 선 경찰도, 그 뒤에 겹으로 서 있던 경찰들도그 눈빛과 얼굴빛으로 무언의 대답들을 보내주었다. 착각이 아니었다.그 뒤로 해서 둘레의 경찰들은 어쩌지 못할 명령에 밀고 들어오면서방패를 거칠게 흔들거나 우악스레밀어젖히려 들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만 뒤로 물러나주세요.', '반발짝씩만 뒤로 가주세요.', '우리도줄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되서 그래요. 저 쪽 밀고 간 만큼만 물러나 주세요'…….물론 그렇다 해서 못이기는 척 밀려주거나하지는 않아, '이건 경찰 분들 개개인하고 싸우고 싶어서 안 밀리려는 게 아니라 공권력 앞에서시민의 공간을 지켜야하는 거니 밀리지 않으려는 거에요.' 하지만 그 순간 적어도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는 되고 있었다. 다시 지리한 대치가 이어지고,이제 나는 더 용기를 내어 앞의 경찰에게나는OO에 사는데, 고향은 어디냐고, 나이는 어떻게 되느냐고…… 짧은 이야기를 잇기도 했다.하지만 인력 배치가 바뀌고, 내가 선 자리도 이리저리로밀리면서 계속해 보게 되는 것은 비아냥과 욕설, 적의를 뿜어내는 눈빛들, 그 숨막히는 적대들이었다.물론 우리가 '폭력경찰 물러나라' 외친다거나 그들을 향해 '살인정권의 주구'라 분노를 터뜨리는 것조차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경찰 집단에 대한, 공권력에 대한 정당한 항의이고, 분노의 상징적 표현으로 해도해도 넘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방패잡이 사병들을 자극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아. 아무리 저쪽에서 먼저 독기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거친 방패질을 한다 해도 그럴수록 더욱 우리는 적이 아니라는, 똑같은 피해자일 뿐이라는, 최소한의 소통이라도 해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백과 혼란
그러나 나도 흥분을 참지 못한 때가 있다. 지난 3차 대회 때, 청계광장은 모두 빙 둘러 막혀 있었고 그날부터 본격적인 비택(비밀 택, 다음 장소에 대한 비밀스런 약속)을 받아 움직이기 시작했다.동을 뜰 거라는탑골공원 앞에 도착하니 이미 경찰은 그 앞을 꽉메워 인도 통행조차 막고 있었다. 집회에 상관없이 길을 오가는 시민들조차 발이 묶여 곳곳의항의가 있었고, 보다못한 장애인이동권연대 회원들이 전동휠체어를 탄 채로 차도로 나가려 했다.그렇게 인도를 못 다니게 해 놓았으니 차도로라도 가야하지 않겠느냐며. 아다시피전동휠체어에 몸을 기대 장애인이동권연대활동을 벌인 분들은 대부분뇌성마비 장애인 분들.그런데 그 몸 불편한 분들이 누구보다 앞서 찻길로 나가겠다며 휠체어를 움직였다. 솔직히 그 분들 앞에서 부끄러운 마음이 일었어.그런데 그 모습을 보자마자 경찰들은 장애인 분들의 휠체어를 막아서며억지로 밀어내려 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발버둥치는 장애인 분들의 몸에 손을 대기까지 했다.그 장면에서는 참을 수가 없어,휠체어를 막아서는 경찰들 사이로 달려 들었고, 그나마 아직까지는 비폭력이어야 한다는 마음까지는 잃지 않아.휠체어를 잡아 미는 경찰의 손을 잡아 떼며 소리쳤다. "밀지 마,휠체어에서 손 떼, 사람이 다친단 말야!" 어, 그런데 어느 경찰 하나가 뇌성마비 장애인 형의 다리까지 잡아 끌려 해. 그걸 본순간 돌지 않을 수가 없어. 나도 닿는대로 손을뻗어 그들의 방패를 흔들어대고 발로 차며 방패 너머 그들의헬맷을 잡아 끌었다. 물론 입에서도 욕설이 끊이지 않아. 이런 씨발놈들, 개 같은 새끼들…….몰라, 솔직히 그날은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흥분이 가라앉고 난 뒤 나는 내 행동을 스스로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답답했던 것이다. 아니, 그날 마음이 더 그랬던 것은 하나의 장면이 더 있었어. 탑골 비택이 깨진 뒤 종로 5가로, 동대문 광장 시장 쪽으로 움직여가다가 경찰이 없는 틈을 봐 차도를 점거해 행진을 하고 있었는데, 집회 참가자 몇 사람이 누군가 하나를 쓰러뜨렸고, 발로 밟다 시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사복 경찰로 집회 참가자 틈에 끼어 무전기를 들고 프락션을 하다가 걸린 거였다. 그이의 얼굴을 몇 차례 가격, 쓰러진 뒤 퍼부어진 발길질을 나는 눈 앞에서 보았고, 흥분한 집회 참가자들이 풀어주면서 썩 꺼지라 할 때까지 그이의 곁에 있었다. 입술이 터져 피가 난 그 사람을 보면서 순간 연민이 잃어.겁에 질린 그 사람은 얼굴의 피를 닦으며 둘러선 사람들에게 '제발 무전기만은 돌려주세요, 제발요.'하고 빌어 말을했다. 이미 무전기는 어디론가 없어진 상태였고, 시위대는 그 사람을 더 어떻게 하려 하지는 않고 호통을 치며 돌려 보냈다. 경찰에게 달려들어 발길질을 하고 주먹질을 하던 나의 행동, 그리고 행진 중간에 본 그 사복 경찰이 얻어맞던 모습……. 바로 그 전 집회까지만 해도 나는 경찰들과 서로 자극을 주고받고, 도발하는 모습에 못내 갑갑해하면서 어떤 상황이어도 비폭력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장면들은 나 스스로 어떻게 해명,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솔직히 그 전까지만 해도 어쩌다 시위대가 경찰을 잡아 끌어 에워싸는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폭력을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사복경찰이 지닌 무전기를 본 순간집회 참가자들은 참사 당시의 그 무전 연락을 떠올리지않았겠는지.경찰과 용역 사이 작전을 주고받던, 그 끔찍한 참사를 지휘 조종하던 이들이 들고 있던……. 그래, 나는 그 뒤로도 곳곳 경찰과대치,공방이 있을 때마다경찰에게욕설과 비아냥으로 자극하는 학생들에게 그러지 말라고,공권력과싸워야할 일을 공연히말단의 사병들에게 풀지 말라고말을 하곤 하지만, 솔직히 철거민 분들이 그러할 때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경찰들의 무자비한 작전에 화염 속에서 몸에 불이 붙어 죽었다. 그 앞에서 어떻게 흥분을 가라앉히라고, 자극하지 말라고 하는 말 따위를 할 수 있겠는가. 그 찢어지는 마음 앞에서 어찌 감히……. 무전기를 들고 시위대 사이에 끼어 있던 사복 경찰에 대한 마음도 그런 것이었다. 입술이 터져 피를 흘리는 그이 얼굴을 보는 것은괴로웠지만, 저 무전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데, 그것을 보고 눈이 돌지 않을 수 있겠는지. 혼란, 혼란.
경찰복을 입은 또다른 나
정권의 파렴치함, 경찰 작전의 무자비함은 둘째치고, 추모집회에서 내가 느낀 가장 큰 안타까움은 그것이었다. 집회에서 뿌리는 유인물 어디에도, 단상에 올라 발언하는 분 가운데 누구도 다섯 분의 철거민 희생자에 대해서만 언급할 뿐 그 참사로 함께 죽은 경찰기동대의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 분향소에도 다섯 분 철거민의 영정만이 있고, 의식을 시작하기 전 희생자에 대한 애도 묵념을 할 때도 다섯 분의 희생만을 이야기한다. 허나 더 말하지 않아도 그 작전 속에서 죽은 경찰기동대 또한 이 미친 정권 아래의 희생자가 아닌가. 안타깝지만 한 사건으로 함께 죽은 슬픈 목숨들이다. 그래서 집회에 가거나 할 때면 만나는 이들 앞에서 그러한 속내를 털어놓곤 했다. 집회 단상의 영정에 죽은 경찰의 영정 하나 함께 올리는 것이 그리 어려운지, 사이버 분향소든 참사 현장의 분향소든 그 어디에도 죽은 경찰도 함께 애도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단상의 발언을들을 때면 철거민 희생자 다섯 분의 이름을 목놓아 울부짖는 목소리에 가슴이 뭉클하지만 죽은 경찰에 대한 언급은 왜 들을 수 없는 것인지…….우리는 이라크에서 죽어간민간인들의 목숨에 아파하면서 동시에 어쩔 수 없이 몸을 팔아 용병으로 갔다가 죽어 돌아가는 미군 병사도 함께 안타까워했다.아프가니스탄에 파병군으로 갔다 시신으로 돌아온 윤장호 병사의 죽음을 우리의 아픔으로 여기던 것처럼 말이다.결국 힘없는 우리와 또다른 우리를 대립시켜 놓고, 우리와 또다른 우리의 죽음을 담보로 배를 채우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물론 인간인 이상 현장에서 일어나는 공방과 마찰로어느만큼 몸싸움을 벌이고, 서로를 향해 분을 터뜨리기는 하지만 적어도 우리의 큰 줄기 안에는 또 다른 우리이자 형제인 경찰의죽음을 함께애도하고추모하며 막아서는 그들 앞에 섰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앞서 말했듯 현장에서의밀고 밀리는 힘겨루기 상황에서발생하는몸싸움이나 격한 감정의 대립은순간 이성을 잃게 하는 면이 없지 않다.심지어 유치한비아냥과 욕설로 말싸움이 이어지고,서로에 대한 적의로 발전한다. "야, 이 씨발놈들아, 니들은 살인마들이야!" 하고 욕을 해댈수록방패 건너편에서는우리도 죽었다며 함께 감정이 격해질 뿐이다.그저 맹목으로 편을 가르게 되고적의를 사르게 된다. 마치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익명의 시민을 향해 저지르는 테러를 빌미삼아 공격을 더 강화하게 되듯이 '우리 쪽의 죽음'만을 내세운다면 어디에도 타협점은 없다. 그저 익명의 저들과 익명의 우리로 갈린 채 우리의 분노로 저들을 무릎 꿇리겠다는 것으로서는 결국 진짜 범죄자들은 뒷짐을 지고 있는 채 우리와 또다른 우리만이 치고받으며 죽어가게 될 뿐이다. 경찰의 방패벽을 만나면 그들 개개인을 향해 '살인자 집단'이라며 말의 죽창을 들이밀지 말기를. '더러운 정권의 개새끼'라며 어린 병사들을 찔러대지 말기를. 그보다는 그들의 방패 앞에희생된철거민 다섯 분의 영정과 함께 김남훈 경장의 영정을 함께 들자. 우리가 진정 싸워야 할 것은 경찰복을 입은 또 다른 우리가 아니라 그들의 방패 뒤에 숨은 권력이고 그것의 배후에 있는 자본이 아니던가. 죽은 경찰 김남훈 경장의 영정 사진과 국화꽃을 들고 그들의 방패와 맞서자. 그래도 우악스럽게 방패로 내리찍으며 자신의 동료 영정 액자를 깨뜨리고 들어오겠는가. 그래, 맛이 가버린 경찰 지도부는 그러한 지시를 내리기에 충분하다. 일선의 전경과 의경은 어쩌지 못하고 동료의 영정을 찢으며 밀고 들어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야이, 개새끼 살인마들 어디 한 번 붙어보자!" 하고 맞불을 놓을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당신들 동료의 죽음 또한 안타까워 슬퍼하는 것'이라는 것으로 그네들 방패에 맞서야 한다. 맞서더라도 그렇게 맞서야 한다. 어차피 우리는 똑같은 희생자들이고우리를맞붙게 해 놓고 뒷자리에서배불리고 있는 자들이 누구인가를 폭로해야 하는 것이다. 저들은 끊임없이 여론을 조작하려 들고, 어떻게든 시위대를 자극해 조금이라도 흥분하거나 도발하는 장면을 유도해 그것만을 부각해 시민들의 눈과 귀를 흐리려 하고 있다. 그럴수록 더 본질에 닿게 가야 하고, 그럴수록 더 우리의 진정에 닿아 이야기해야 한다. 그깟 방패 발로 몇 번 찬다고, 방패 몇 개에 헬맷 몇 개 빼앗는다고 돌아올 것은 없다.
비폭력 직접행동
어린시절 아주 잠깐이기는 했지만한때 나는 가투주의자였다. 집회 대오가 있고 무리를 지어 행진할 때가 있으면 본대에 있기보다는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사수조나 선봉대에 가 있으려고만 했다. 마치 그것이 좀 더 강한 의지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무언가 좀 더 결연한 행동의 표현이기라도 하듯 쇠파이프를 잡았고, 화염병을 던졌다.내가 한 단위를 책임지는 활동가가 되고, 이른바싸움의내용과 방식을결정짓는 자리에 가 있으면서는 비폭력 평화시위를주장하는 쪽에 대해 개량으로 몰아부치며시너와 휘발유를 따로 준비하기도 했다.아니, 그렇다 하여 그때를 단순히 어린시절의 어떤 공명심이나객기 같은 거였다고만 치부하려는 것은 아니다.그 평가를 온당히 내리려면 당시 정치적 환경과 그 시대 속에서의 요구, 운동 주체의역량이나시민 의식의 조건이라는주객관정세를살펴 논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어쨌건 그러했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지금 내가 생각하는 '비폭력 평화주의'라는 것이 그저 맹목적이고 감상적인 어떤 것이라는 오해를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야말로 '대항 폭력의 정당성'에 열변을 토하기도 했고, 강고한 투쟁을 통한 돌파를 강변하곤 했다. 그러하던 내게 가장 큰 충격이었던 것은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기 전, 미국의 애국시민들 대다수가 그들의 안전을 위해 전쟁을 지지하고 나설 때 누구보다 먼저 전쟁을 반대하고 나선 이들이 '911 테러 희생자 가족들'이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테러에 대한 복수를 말한다면, 그래서 그 테러에 대한 전쟁을 벌이는 것이라면 누구보다앞장설 거라는 상식을 아주 뒤짚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들에게 가족을 잃은 이들이 빨갱이 하면 치를 떠는 것처럼,좌익이라 하여 희생된 이들이 공권력에 대해 치를 떨게 되는 것처럼 그런 것이 인지상정자연스런 인간의 감정일 거라 생각하며 말이다. 하지만폭격이 시작될 거라던 그전장의 땅으로 누구보다맨몸으로 찾아간 이들이 바로 테러 희생자의 가족들이었다니……. 그것은 커다란 울림이었다. 진정 평화의 방식으로 평화를 말해주는,평화라는 것이 그 알량한 '정의'의 실현에 있지 않다는 것을말해주는 커다란 울림이었다. 비록 그 일로 해서 가장 큰 슬픔을 겪게 되었지만, 자신들의 슬픔을 치유하는 것은 또다른 희생자를 낳는 것이 아니라 더이상 그러한 슬픔이 없게 해야 한다고 온몸으로 말해주는. 오히려 많은 미국민들이 아랍권에 대한 증오를 품고 있을 때그것을 반대, 맹목적 복수가 아닌 끌어안음을 보여준 것이 그 희생자들이었던 것이다.
비폭력이란 끌어안는 것
그제서야 나는 비폭력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비폭력 직접행동의전형 하나를눈으로 확인하는 것만 같았다.불의에 대한 저항을그 대상에 대한 적대와 적의로서가 아니라나를 버리는 끌어안음으로보여주는 것. 주장하고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장을 울려 말해내는 것. 그래서는 결국 그것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해 주고, 문제의 본질을 환기,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는 것. 눈 앞의 공방이나 온갖 미디어나 조작된 정보를 통한 여론으로 흐리게 되었던 눈을 맑게 씻어주는 것. 그것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커다란 힘이었다. 주장과 설득을 강요해 우리 편에 서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마음에 물이 고여 강물로 흐르게 하는 것. 그래, 내가 이번 범국민대회들에 철거민 희생자들만의 영정이 아니라 죽은 경찰의 영정도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 추모 묵념 때라도 죽은 경찰을 함께 애도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 전경의 방패 앞에 섰을 때 살인정권의 하수인이라 욕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경찰의 영정에 국화 꽃을 꽂아 우리는 다 같은 희생자요 피해자라 말하는 모습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을 때 누군가 그러한 말을 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유가족 분들이 계시고, 그 마음이 너무 힘들지 않겠느냐는. 물론 희생자 유가족 분들의 찢어지는 가슴을 감히 내가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유가족 분들에게까지 그 어떤 모습을바라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참사 이후 유가족 분들의 눈물겨운 편지나 증언들을 들어보면 가족 분들이 얼마나 따스한 인간의 마음, 진솔하고 소박한 분들일지 너무도 잘 느껴진다. 오히려 유가족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생각하여 경찰 추모를 함께 하기 어려울 거라는 말이 유가족을 핑계삼는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정권과의 첨예한 대립각을 통한 전선 강화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구 운동권의 관성같은 것. 작금의 정국에서 전선을 더 확대 강화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못지 않게 그리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무엇이겠는지. 더 센 구호, 더거친 투쟁 그리고 그것을 통한 더 많은 분노를 설득……. 아니, 더 드넓은 전선을 만들어가는 일은 아직 외면하고 있는 시민들이 함께 촛불을 들고 싶은 마음을 느끼게 하는 일일 것이다.또는 외면하지는 않지만 아직 그 자리에끼기 어색해하는 시민들마음에 물이고여들어 강물로 흐르게 하는 일일 것이다.주장과 설득을 넘어울림과 공감을 일으키는 일. 많은 시민들은 아직도 "경찰이 무슨 죄가 있냐, 쟤들도 불쌍하지……." 하는말로집회 참가자 곁을 지나치곤 한다.집회 참가자와 경찰이 드잡이를 하는 공방은 그렇게본질을 감춰 양비론을 자아내게 하며심지어는 냉소 쪽으로 기울게 한다. 하지만 끌어안음은 문제의 본질을 드러나게 한다.철거민 희생자와죽은 경찰을함께 추모, 우리 모두 똑같은 희생자가 되고 있음을 말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대리 싸움 뒤에 가려진 문제의 진짜 본질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우리끼리 싸우고 말면 본질이 감춰지지만 우리부터 또다른 우리를 끌어안아갈 때 감추어진본질을 드러나게 할 수 있는.
[이어지는 글] 용산참사범국민추모대회를 다니면서 (2)- 거꾸로 가는 시대, 얼어붙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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