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일기] 집을 짓는 꿈
일주일
어제, 일요일에 중짬까지 다 맞춰 올리고, 추녀목에 귀산방까지 다 올려 맞춘 다음 상량식을 했다. 3월 1일 일을 시작했으니 꼭 일주일만이었다. 얼마나 빠른지 정신없이 돌아갔다. 일을 하는 목수들 뿐 아니라 집 주인이신 맹공, 노미 선생님들도 어떻게 이리 빠르게 되냐 하며 혀를 내두른다. 하긴 맹공 엉아는 출근 때문에 공일이나 되어야 같이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일요일에 시작해한 주 지난일요일에 상량식이니 이틀 밖에 그 일을 같이 해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침에 일하는 거 보러 나와서는 출근하기 싫어 어디 끌려가는 사람처럼 좀처럼 발길을 떼지 못하는 엉아 얼굴이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니었다. 엉아네 식구들이 살 집, 조금이라도 더 엉아 손길로 함께 해 집을 짓고 싶을 테니, 집이 올라가는 걸 보며 기뻐하면서도 또한 뭔가 안타까워하는 맹공 엉아의 마음이야 말하지 않아도 알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니 심지어는 집주인인맹공 엉아가 일 좀 천천히, 쉬엄쉬엄 하라고 주문을 하기까지 하는데, 어이구야 품을 팔아 일하는 목수들이 어디 그럴 수가 있나. 게다가 담배 쉴 참도 없이 바쁘게 먹을 놓고 톱을 넣는 어르신 목수들이 쉼 없이 몸을 움직이는 걸.
금/토/일
금요일,기둥 열개 밑둥들을 주춧돌에 맞춰 그랭이질을 해 다 세워 놓았다. 바람이 미친듯이 불어톱밥, 대팻밥이 날려 눈을 뜰 수가 없어.기둥을 세워야 하는데다림줄을 늘어뜨리면추는 흔들리지요, 눈은 뜰 수가 없지요,어르신 목수들과 함께어휴, 으휴 하면서겨우 해 놓았다. 에이, 뭐 어휴, 으휴 정도였을까. 그보다 더 멋진 쌍시옷의 감탄사들을 바람에 날려대면서.
토요일,아침부터 크레인을 불러 보와 도리를 기둥의 사괘에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기둥 사이사이마다 겹도리를 두르고, 집 안을 가로 질러 붙잡아주는 대들보를 끼워 넣어. 언제라도 기둥 꼭대기에서 도리를타고 다니며 함마질을 하는 일은화통하다. 겹도리와 대보, 떡보까지 다 끼워맞추는 일 또한 오전 안으로 다 마치고 말았다. 하루 품을 생각하고 빌린 크레인은 오전 반 품으로만 일을 하고 돌려보낸 뒤 나중에 추녀를 걸 때 다시 한 번 부르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는천장 덴조 면을 잡아줄 곳들에 지네대를 끼우는 일. 일단 기둥을 일으켜 세운 뒤 도리를 돌리고 나면그 때부터 집 모양은 하나 둘 드러나게 된다. 지네대까지 다 걸고 나니 가로지른촘촘히 가로지르고 있는 나무들이 참 예쁘다. 지네대까지 다 걸어놓은 뒤에는샌드위치 판넬을 재단해 그 위로 얹어.
일요일, 그 전 날올리다 만 곳부터 샌드위치 판넬을 올리기 시작해동자주를 하나씩 끼워 박으면서중짬을 맞추어 나갔다.점점 집 지붕 모양새가 드러난다. 도리와 보 위에서 또 한 번 기둥과 중도리를 세울 때 또한처음 기둥이 설 때만큼이나 수직수평에 신경을 기울여야 해. 중짬까지 다 걸어놓고 그 위종도리 셋 가운데가운데 상량 하나만을 남겨 놓은 채 다시 크레인을 불렀다.가운뎃 종도리인 상량은 상량식을 하면서 맨 마지막에 끼워 넣을 것.이 때부터 지붕 아래에서는 상량식 준비가 한참이었다.떡과 돼지머리, 음식들을맞춰 주문하고, 국수를 삶고,종도리를 잡아 올릴 광목을 끊어다 준비하고,먹과 붓을 들고 상량 아랫면에 상량문을 쓰고…….벌써부터 가깝고 먼 곳에서 많은 분들이 찾아와일을 돕고, 상량식 준비를 함께 했다.이제 추녀만 걸고 도리높임 나무를 두르고 나면이 집에서 살 이들, 이 집을 찾아 드나들 이들, 그리고 이 집을 지을 터를 내준 만물 자연에게복을 빌고 고마움을 전하는 상량식을 하게 된다.추녀 올리는 일은 만만치가 않아. 처마 끝선을 잡아야 하고, 팔작 지붕의 가장 특징이 되는 처마의 휘어들어가는 곡을 잡아가며 빈틈없이 걸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추녀 끝에 실을 띄우면서 이 쪽 귀와 저 쪽 귀의 높이와 거리를 맞추면서 지붕 모서리를 단단하게 물 수 있게 해야 한다. 추녀를 다 걸었어. 그리고 귀산방까지……. 휴우, 이젠 상량식. 정성껏 차린 상 앞에 여원이네 집 짓는 일을 함께 축하하며 기뻐하는 이들이 막걸리를 올리고 절을 했을 것이다. 모두들 환하고 행복한 얼굴들이었을 거야. '그러했다'가 아니라 '그랬을 것이다'라고 쓴 건 상량을 잡아 올려 끼워 넣을 목수 둘은 지붕에 남아 지붕 뒷편에서 몸을 감추고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상량 제사를 올리는 동안 친구와 나는 함마 한 자루씩을 들고 중짬 너머 지붕에 앉아 기다렸고, 이 집의 식구와 동무들, 이웃들이 절을 모두 올린 뒤 광목 천에 걸어준 상량을 끌어올렸다. 그러고는 대공 사이 가운데 종도리인 상량을 얹어놓고 메질을 힘껏!
상량식을 마친 뒤에야 지붕 아래로 내려와 보니 추녀까지 걸어놓은 집 모양새가 예쁘게도 드러났다. 그리고 그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이 있는 막걸리. 몰라, 집 모양새가예뻐 뿌듯한 마음이 들고, 상량까지 올렸으니반은 다 지은 것 같아 기쁘고 좋기도 했지만왠지 허전한 마음이 컸다. 글쎄 생각보다집이 빨리 올라가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인지, 아님 갑작스레 상량식을 하게 되어 그랬는지, 아님 내내 어떤빈 자리를 느끼고 있어 그런 것인지……. 아무튼 상량식을 일요일에 하게 된 것도 전혀 계획에 없다가 토요일 저녁 목수 어르신을 모시고 저녁을 먹다가 그 자리에서 결정된 거였다. 토요일 저녁은 지난 봄 석교리에 지은 집이 '아름다운 집'으로 뽑히면서 마리아 선생님이 그 감사의 뜻으로 잔치를 연 거였는데, 그날 얘기 끝에 다음 날로 상량식을 하자고 얘기가 된 것. 물론 아직 나무 일이 다 아니지만 지금 짓는 집에는 기둥 아래와 가운데를 잡아주는 하인방, 중인방 따위 인방들이 들어가질 않아 흙벽을 쌓아올린 뒤 서까래를 걸게 되니 흙벽 일을 하기 전 상량을 하자니 이 또한 날짜가 생각보다 한참이나 당겨진 거였다. 하여간 모르겠어,뿌듯하면서도 마음 한 켠으로 남는 허전함이 무엇인지를.정말 정신이 없이 일주일이 지났고, 그 사이 상량과 추녀까지 머리에 인 골조가 다 되었다.
쉬는 날
오늘은할아버지 목수 어르신들이 하루 쉬자 해서 일을 놓고 있다. 그래도 아침에는 홍천에 있는 흙벽돌 공장에 주문해 들어오는흙벽돌을 25톤 트럭 두 차를 받아내렸다. 흙벽돌과 황토몰타르,황토진흙들을 부려놓으니아주엄청나다.앞으로는 저것들을다 손으로쌓을 일이 남았어. 한 동안은 이제온몸이 톱밥, 대팻밥투성이가 아니라 흙투성이가 되어 일을 하게 되겠지.지금 시간, 조용한 현장에는 문과 창을 하는 곳 사람이 와서 창틀 일을 하고 있다.벽을 쌓으려면 미리틀이 되어 있어야 그 자리를 남겨가며 쌓을 수 있을 테니.
이번에는 일을 하면서 술은 조금씩만 마셔야지 했는데 이거 영 방어율이 빵이다. 날마다 일을 마치고 나면 들이부었으니. 기둥 세우고 난 날도 다음 날은 기둥 꼭대기에서 함마질을 해야 하니 그 위에서 술이 덜 깨 흔들거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술이 다 떨어지고도 술 있는 집을 찾아내 그것까지 다 받아다 먹었고, 그 이튿 날은 정말 몸이 견디질 못할 것 같아'아름다운 집'에 뽑힌 잔치 자리에서도 술 대신 사이다로만 버티다고 들어와서는 결국 참지 못하고 새벽까지 마셨다. 그리고 어제 상량식에서야 말할 것도 없고.오늘만큼은 일도 쉬니 술도 하루는 쉬어야겠다. 일 시작할 때부터 서울서 들어온 감기가 떨어지질 않아 나을 새 없이일을 하고 술을 붓고 했으니 그 놈의 감기란 것은 목으로 왔다 코로 갔다으실으실 몸살로 돌아다니며 떨어질 줄은 모른다. 코를 얼마나 풀어댔는지 이제는아주 헐어버렸어. 이런 코찔찔이 같으니라구!
집을 짓는 꿈
본격으로 살림집을 짓는 건 이번이 두 번째. 한 번 지을 때와 두 번 지을 때는 정말 달라도 한참 다르다. 아직 멀었다 싶으면서도 좀 더 또렷이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 봄을 나고 나면 오두막을헐게 될 테니 아무래도 내게도 네가 살 집을 지어라 하는때가 온것만 같다. 생각이야전혀 없지 않았지만 아직은막연한 감이 더했는데이제는 그 때가되었나 보다.명이라 해도 좋고 운이라 해도 좋고 뭐 그 비슷한 기분으로. 그래서 간간이 집 지을 터를 알아보러 다니기도 하고, 마음으로 점을 찍어두고 있기도 해. 워낙 큰 일이라 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더는 미룰 수도 없는 일. 나 살 집을 짓게 된다면 어떻게 지어야지 하고 마음으로 그려온 그림들을 하나하나 구체로 떠올린다. 이렇게 집을 짓는 것처럼 여러 사람이 함께, 그리고 기계를 부리면서 몇 달 안으로 짓는 거 말고 나무 다듬는 것부터 흙벽돌을 찍는 것까지 더디 걸리더라도 다 해보고만 싶어. 몇 년이 걸리더라도, 제재소 나무나 공장에서 찍어내는 흙벽돌보다는 못생기거나 좀 터지는 데가 생기더라도 그냥 다 내 손으로. 그렇게 정말 조그만 집을 지어야지. 조그만 집을 여러 동으로.지낼 방은 어떻게 짓고, 손님 방은 또 어떻게 짓고, 작업실은 어떻게, 식당이 될지 주막이 될지 음식을 하고 둘러앉아 먹고 마시는 공간은 따로 어떻게, 그리고 헛간은 또 어떻게……. 그렇게 소꿉집 같은 조그만 집들을 따로따로 여러 채. 나무도 아주 얇은 나무를 쓸 수 있을 거야, 동마다 지붕 모양이나 구조도 달리 할 수 있을 거야, 바닥에 불기를 넣을 곳은 지낼 방이랑 손님방 하나면 족하겠지, 나머지는 바닥공사 없이 나무 난로만으로도 온기는 충분할 테니. 헛간이라면 아주 그런 것도 필요치 않을 테고. 그러면 방 하나는 구들을 깔아 아궁이를 두고 또다른 방 하나에는 나무 보일러 같은 것을 두면 어떨까. 태양광을 얹을만한 지붕 공간이 되는 데가 있을지는 모르겠네……. 꿈을 꾼다, 이렇게. 그러니 요즘 일을 하면서도 십반을 놓고 기둥을 세우는 것부터 장부 맞춤 하나하나, 추녀와 처마 선을 맞추는 것까지 도편수 어르신 먹놓는 것을 더욱 눈여겨 보게 된다. 안 그랬으면 그 전처럼 그저 자르라는 데 자르고, 다듬으라는 곳 다듬고, 치라는 곳에 못을 치고 그런 데에만 절절 맸을지 몰라. 어쩌면 한 해 걸려 헛간 한 동, 또 한 해 걸려 작업실 하나, 또 한 해 걸려 구들방 하나, 한 해 더 지나야 식당 하나 겨우 짓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떠랴 싶다. 처음부터 집을 짓게 되면 이삼 년은 걸려 짓겠다는 마음이었으니. 가장 간단한 헛간부터 하나하나 지어가야지. 나무를 짜 벽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흙벽을 찍어 쌓아보기도 하고, 구운 기와를 올려보기도 하고, 피죽이나 너와 같은 것으로 지붕을 덮기도 하고……. 오늘 이렇게일을 쉬는 날, 멍하니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그러한 꿈에 빠져들어 집을 짓고 있는 것이다.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래, 먹통 엉아가 그랬다던가. 살 집을 다 짓고 나니까 희망이 없어진 것 같더라고. 그래서 엉아는 목수학교에 들어가고 직접 집짓는 목수가 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그렇게 해서 동무들 집을 손수 지어주고 싶어서……. 그러니바쁠거야 없다. 몇 해가 걸려 더디게 가더라도 좋아.집을 짓는 동안에는 내내 행복할 테니. 분명한 건 이젠 막연하기만 한 꿈이 아니라 그 시작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슴이 뛰고 설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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