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고 있다 보면 마리아 선생님이 틈틈이 다녀가며사진을 찍으시곤 한다.지난 며칠 찍은 사진들을 볼 수 있게 해 주셨는데, 그 며칠 사이 골라 올려주신 사진만 해도 꽤나 많다. 게다가 상량식이 있던 일요일에 고마리 선생님이 찍어 올려준 것들까지 하면 꽤나 많아. 그렇게 올려주시는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하루하루 아득하게 지나버린 것 같은 일할 때의 장면들이 다시금 떠올라. 집짓는 일을 하던 시간의 기록으로 간직하고 싶기도 하지만,그냥 추억의 기록으로만이 아니라사진 속 장면들을 되짚으며복습하는 기분으로 일의 과정들을 떠올린다.오늘은 일단 기둥을 세우던 날 사진들 가운데에서 몇 장만.
기둥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춧돌의 십반이 정확해야 하고, 각 주춧돌마다 그것과 그 위에 들어설 기둥의 십반먹이 꼭 일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닥 기초를 하면서 주춧돌을 놓을 때부터 그 모든 주추들이 직각을 이룰 수 있게끔 실을 띄우고, 그 실과 일치하는 동서남북의 십반을 주춧돌에 그려놓아야 한다. 그런 뒤에는 각재 기둥을 쓰건 원재 기둥을 쓰건 기둥의 십반 먹이 정확히 놓여야 해. 그래야만 기둥 꼭대기 사괘를 땄을 때 도리와 장혀, 보 따위 부재들이 서로 수직으로 맞물리며 꼭 끼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아직 기둥 밑둥의 그랭이질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추 위에 올라설 기둥을 그 주추와 꼭 물리게 그랭이질을 할 수 있게끔아직 그랭이를 뜨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 둘의 십반을정확히맞추고 수직을 잡아야한다.그런 뒤 임시로 세워 본 상태의 기둥이 앞뒤로 기울지나 않았는지, 옆 어딘가로 쓰러지진 않았는지 다림추를 내려 한 푼의 틈도 없이 맞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둥 밑둥 사이의 거리와 기둥 꼭대기 사괘와 사괘 사이의 거리가 그대로 일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을 맞추는 것, 이것이야 말로 장부 맞춤만으로 집을짓는 한옥의 가장 기본이자 핵심이라 할 것이다.
그렇게 주추 십반과 기둥 십반을 맞추고, 다림추를 세워 평면의 각과 수직각이 모두 맞는 자리를 찾으면 그대로 그랭이를 그릴 수 있도록 그 상태를 고정, 유지해야 한다. 결국 주춧돌 위에 기둥이 설 수 있게 하는 것은 울퉁불퉁 제멋대로인 주춧돌의 모양에 맞춰 기둥 밑둥을 그대로 오리내듯 파내어 서로가 꽉물도록 하는것이니, 이 그랭이를 뜨는일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기둥은 저 홀로 설 수 없는 것이다.
그랭이를 뜨기 전 중요한 것 하나. 예를 들어 열 개의 주춧돌이 놓인다 할 때 가장 높이 올라 있는 주춧돌을 기준 삼아 물반을 잡아가며 그 높이를 재 놓아야한다. 그랭이를 뜨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하나의 주춧돌 안에서 높고 낮은울퉁불퉁함을 그리는 것이지만 열 개의 주춧돌은저마다 그 깊이랄까 높이가 다르니 하나의 주춧돌을 기준으로 놓고 나머지 주춧돌과 높낮이에 얼마 정도의차이가 있는지를 재 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 때 그 하나의 주춧돌에도 나름의 기준점이 있어야 할 텐데, 그 기준점은 십반 가운데 한 점을 잡아 '새발'을 그려놓고 그것에서 재는 것이다. 이래야각각의 주춧돌마다 그랭이를 뜰 때 새발로 찍은 그 기준점을중심으로 울퉁불퉁 높낮이 선을 그려내야 하기 때문.(하아, 이거말로 하기는 정말 복잡하다. 그런데 말로 쓰느라 복잡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둥을 세우는 일은 그만큼이나 복잡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곳들이 많아.)
이렇게 주추와 기둥의 십반을 맞추고,주추마다 그 기준점의 높이가 다른 것 또한 재어 놓은 뒤, 주춧돌마다 서게 될 기둥의 수직수평을 맞춰 그랭이를 뜬 다음에는 기둥 밑둥을 주춧돌 모양에 맡게 파내야 한다. 이 때 엔진톱이나 전기톱으로 바로 그려나가듯 파내어도 되겠지만좀 더 정교히 할 때는 미리 그랭이를 떠서 그려낸 선을 따라 면이 좁은 끌을 가지고 미리 따낸다. 이리 하면 톱을 넣기에도 쉽고, 톱을 넣었다가끝이 터지는 일도 예방할 수 있으니 좋아.
십반 먹부터 물반을 잡는 일, 사개부리로 수직을보는 일을 빈틈 없이 해내 마치 콤파스 같은 그랭이로 주춧돌과 닿는 면을 그려내고, 그것을 잘라 따낸 뒤에는 그야말로 주추 위로 기둥을 세우는 것이다. 돌의 거죽 모양에 따라 기둥 밑둥을 파냈으니 그 둘은 꼭 맞기 마련. 혹이라도잘 맞지가 않아 끄떡대거나 기우뚱 흔들린다면 그랭이질이 잘못된 것이요, 어느 하나의 기둥 꼭대가기 다른 기둥 꼭대기보다 높이 올라 있으면 그것은 물반을 잘못 잡은 것이다.
이제 아래 사진들은 이 과정들을 다 지나고 그랭이질로 주추를 꽉 물 수 있게 기둥 밑둥까지 따낸 뒤부터 기둥을 세우는 모습을 담은 것들이다.
그랭이질로 밑둥을 따낸 기둥을 다시 주추 위로 세운다. 이 때는 기둥 밑둥과 주추의 굴곡이 꼭 맞게 물리게 된다. 이렇게 해서 기둥을 세울 때는 주추 위의 새발 표시와 기둥 밑둥의 새발 표시가 맞도록 방향을 해야지 그랭이질을 한 모양대로 주추 위에 얹을 수 있다.
기둥이 주추 위에 서면 다림줄(사개부리)를 꽂아 수직으로 잘 섰는지를 동서와 북남 방향에서 확인한 뒤, 제대로 섰다 하면 그 상태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지지대(기리바리)를 삼면에서 대어준다. 물론 그것들 없이도 이미 기둥은 주추를 꽉 물고 서 있기는 하나 그건 약간의 충격에도 쓰러질 수 있으니 그 상태를 고정,움직일 수 없도록 지지대를 삼면으로 뻗쳐 두는 것이다.
땅에 닿는 지지대는 움직이지 않도록 그 앞에 말을 깊이 박아주어야 해. 아무리 지지대를 걸어놓는다 해도 충격에 따라 그것들은 땅을 밀고 나갈 수 있기 때문.
기둥 열 개를 모두 세우고, 맨 왼쪽 앞으로 보이는 기둥에 지지대 세우는 일만 남기고 있을 때쯤 나온 오후 새참. 목수 일을 할 때면 하루 세 끼에 오전오후로 참까지 먹으니 먹는 것 하나만큼은 여느 때보다 잘 먹는다. 그게 아니라면 아침 거르고, 점심이야 대충 때워, 저녁이면 술 자리에서 공기밥 하나 먹는 게 다일 테니 이 얼마나 잘 먹는 날들인지 모른다.
기둥을 다 세우고 난 오후에는 틈이 날 때마다 짬짬이 이다 대패질을 했다. 지붕 위로 이다를 올리는 건 서까래부터 다 걸어놓은 다음의 일일 텐데, 일을 워낙 빨리 하다 보니 기둥만 세워놓고 벌써부터 이다 판을 대패로 밀었다. 그것도 이 날 하루면 다 끝나가고 있어.
이다를 쌓아놓을 때는 사진처럼 삼각형 모양으로 서로를 엇갈리게 해 서로가 붙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야 바람이 잘 통해 빨리 마를 수 있거든. 이다 쌓아놓은 뒤로 오두막이 보인다. 지금도 불을 켜고앉아있는 이 오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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