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터

냉이로그 2010. 9. 30. 02:30

1.

으이구, 라이터는 꼭 가방 주머니에 여분으로 넣고 다닐 것.벌써 몇 번째냐구. 도서관에 다닿아 한 대 피우고 가야지 하는데 그게 없어. 이 도서관에는 매점 같은 것도 없단 말이지. 게다가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곳이라 구멍가게를 찾으려 해도 한참이나 읍내로 다시 들어가야 된다는 거.시민운동장이랑 석정여중고, 그리고사진박물관 사이에 끼어서 상점이라고는암 것도 없는대로변에 있단 말이다.아차차, 싶지만 어쩔 수 있나, 갔던 길도로내려와 다시 집에 갔다 와야지.도서관이라도 조금 커서 사람이 많기라도 하면 하루정도 저기요, 불 좀 빌려하면서 어찌어찌 때우겠지만,여긴 그럴 사람도 없다. 기껏해야 너댓 사람, 많아야예닐곱이니 잠깐씩 자리를 뜨는시간도 다 제각각이며,여튼간에 담배 피우는 사람찾기가 어렵다.

그런데 한 가지 참 곤란한 건, 아이들 학교 마치기 전까지야 그냥저냥괜찮기는 한데, 하교 시간을 지나 교문에서 아이들이 떼로 쏟아져나오고 할 때면담배 피울 곳이 참 마땅찮다.재털이를 갖다 놓고 피우라고만들어놓은 고 자리가 딱 아이들 쏟아져 지나가는 그 자리.그것도 남자 아이들 없이여학생들만 다니는 정문 앞에서, 그것도 하루이틀이 아니고 거의 날마다그러려니, 이건 뭐 시선처리라도 잘못했다간 바바리맨 같은걸로보일수도 있겠다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뒤돌아 등을 보이고 담배를 피우자니 비좁은 그곳엔 높다란 석축을 마주봐야 해, 이건 뭐 막사 뒤에서 이등병 열중쉬엇 자세로 담배 피우는 것도 아니고, 그럴 땐 정말담배라는 게니 맛도 내 맛도 아니다.

2.

아마 아이들 학교에서는 중간고사 시즌인가 보다. 일층이 학생 열람실이고, 이층이 일반인실인데, 아랫층엔 자리가 다 되어서인지 요사이에는 이층에도 아이들이 많이들 올라와 자리를 꽉꽉 채운다.요 전만 해도저녁밥 먹고 다시 가면 텅텅 비어있곤 하던열람실이 이제는 자리가 없어 돌아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이층 열람실에서도 아이들을 보곤 하는데, 정말 그 나이 때 아이들에게선 풋내음이라는 게 나는구나 싶더라. 그냥 걸어다닐 때도 풋, 풋, 풋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어느 구석에선가 키득거리며 쪽지 찢어서 돌리고 하는 뭐 그런 작은 소란함에도 풋, 풋 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아. 열람실에서는 살금살금 걸어나가다문만 열고 나서면쿵쾅쾅하고 울리는 소리들도 다 풋, 풋 한다.아아, 그래서 풋풋하다 하는 말이 나왔을 수도 있겠구나. 글쎄, 나야 한 번도그 나이 때 공부라는 걸 즐겁게 해 본 일이 없어 그 재미를 모르겠다만참 즐거워 보이고 재미나 보인다. 청소년기 하면 이제껏 내가 가진 관념은 공부니시험이니경쟁이니억압이니 구속 따위의 숨막히는 것들을 지배적으로 떠올리곤 했는데 그 또한관념에지나지 않는것이겠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시대가 아무리 숨을 조여들게 하더라도 아이들은 그 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들 줄 알고, 순간의 재미와 활력을 찾는다. 그것을 아이들이 가진 본능이라 말을 하든, 그 어떤 생명력 같은 것이라 말을 하든 그 어떤 말을 갖다 붙여도 좋다. 그마저 없다면 이 시대 아이들이 그 숨막히는 세월을 어찌 견뎌낼 수 있겠나.

그러고보면 여태 나는 동심이라는것을 아주 모르고만 있었다는 것이 맞을 거다.아이들이 가진 힘, 생명력이라는 거. 너무도자주 들어온말이었고, 너무도쉽게 쓰이고 있는 것이지만, 그게 뭐냐고 내게묻는다면 그저 어디에선가 읽거나 들었을 법한 것들로나 얼버무리는 게 다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나 스스로도 감동하지 못하는 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내 안에서조차 만족스럽지 못한, 확신하지못하는 그런 말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안다.지옥 불구덩이에서도순간을 환하게 비출 수 있게 하는 그런 거, 순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당연히도 또다른 공간이며 시간이 되어버리고 마는. 생명력이라쓰려다 보니어느덧 너무나 진부해 느낌 없는 말이 되어버린 것도 같지만, 그러나 지금 나는그 말들에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아 흥분이 일기도 한다. 혁명이라는건 결국 전혀 다른 공간을 열어낸다는 것일진대, 그리하여 전혀 다른 삶,그들이만들어놓은 틀을 전혀 다르게 살아내는 일일진대, 그러나아이들은이미 그 자체로 순간을살아내도록 되어 있는 존재이질 않은가. 그렇담 혁명이라는 말은 이 굳어버린 머리통에서부터 충분히 재구성되어야할 일이겠다. 순간이라는 말 또한 우주를 품어해석되어야 할 일.

3.

놀겸 쉴겸 그저 잠깐 푸념이나 끄적일까 하다가 '라이타는 하나 더 꼭 챙길 것'이라고 쓰기 시작한 것이 그렇게 흘러갔네. 그러고 보면 무언가를 끄적인다는 일은 참 신기한 일이구나.짐짓 개똥의 철학을 흉내내려해서가 아니다. 버리고 싶은 것이 있으면서도 그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몰라 그러지를 못하던 것을, 이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의 떨림 같은 것. 그저 그 떨림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좋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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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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