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생

냉이로그 2010. 9. 23. 02:48

그리하여요 녀석도 추석 날새벽 기차를 타고 내려왔다.이그, 겁 많은 녀석 두리번두리번.


이 아이도 어느덧 열여섯 살 할머니. 그만하면 할머니 중에서도 상할머니라 할만한데,솔직히 작년까지만 해도얘가 그리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생각은 잘 하지 못했더랬다.늙은 개를 말하기에는 언제나 얘보다는 얘네 엄마인기미에게 눈길이 갔기 때문이다.

이천구년팔월이일 기미가 죽었다. 죽기 전에는 사흘 넘게 아무 것도 먹지를 않다가, 아니, 안 먹은 게아니라 먹지를 못한 거였을 것이다. 이미 소화기관도 다 망가져 있었다 했으니. 갈 때가 됐나보다, 갈 때가 됐나보다 하던 엄마는 더는 어떻게 해주지를 못하고 안아주고 쓸어주기만 하다가 그 아이를 보냈다. 평소 늘 그러던 모습처럼 얘는 엄마 옆자리 방석에 엎드려 있었고, 엄마는 한 손으론 얘의 등을 쓸어주며 지장경 독경을 하다가 그렇게 숨을 놓았다. 숨을 놓기 전, 꼭 한 번'깡' 하고 아프다 소리를 내며 꿈틀거렸다던가.방년 열여덟, 늙은 개의 죽음이었다.

명을 다한 개의 자연사라니. 석고개에서, 죽변에서 개울 건너로, 뒷편 언덕으로 사나운 개에 물려죽고, 자동차에 다쳐 죽고, 또 죽고, 죽은 아이들을 많이도 묻어보았지만 그처럼 생을 다하고 죽은 개는 처음이었다. 그게 벌써 언제야, 한 육칠 년 전 쯤 너구리가 번역한 <<개를 기르다>>라는 일본 만화를 보면서 그 마지막 시간들에 대해 첫 감정 경험을 하면서 정말 대단한 작품이구나 싶기도 했는데, 최근 삼사 년 동안 보아온 기미의 모습은 그 이상이었다. 이가 다 빠졌고, 귀가 멀었고, 요도가 막혀 오줌을 눌 수 없는 지경에도 다달았더랬다.처음에는 사료를 왜 먹지 않는지 알지 못했더랬다. 이가 몇 개 남아 있을 무렵, 그 흔들리는 이로 사료를 깨물어 씹으려면잇몸에는핏물이 배이곤 했다. 먹으려면 그 고통을 참아 억지로라도 씹어 삼켜야 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뱃속이 탈이 나든 어떻든 그대로씹지 않고 삼켜버려. 문만 살짝 열리면 어디로든 내빼곤 하던 말썽장이 강아지가 이제는 계단 한 칸도내려서지를 못해 바깥 구경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계단은커녕 다리에 힘이 빠져 몇 걸음 걷다가도 턱주가리를 바닥에 찧기가 일쑤.

그렇게 기미가 가고 나서 얘가 보였다. 그 전까지 보이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얘도 얼마 남지 않아 갈 때가 되었다는게 비로소 보였다는 얘기다. 기미가 세 살 되어 낳은 새끼 가운데 하나였으니, 얘도 이제 열여섯. 개로 치자면이미 팔순, 구순을 넘긴 나이겠다. 그러나기미가 있을 때는 늘 얘는 애 같기만 했어. 실제로도 기미가 가기 전에는 팔짝 뛰기도 잘하며 까부는 짓이 여전했더랬다. 그런데제 에미가 그렇게 가고 나자, 얘는급속도로 지에미 모습을 그대로 닮아갔다. 하루종일 시무룩, 그래 물론 얘도 이미 계단 같은 곳을 오르내리는 걸 못한지는 오래였다.앞니가 둘 밖에 남지 않은 것도 꽤 한참 전의 일. 언젠가부터는 얘도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같더니, 가만히 있다가도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 어쩔 줄을몰라 했다. 그러니까 그게 사람으로 치면 고관절인가, 그 어디쯤이 어긋낫더라는 얘기. 말하자면 나이가 너무 들어 뼈에 칼슘인지 뭔지가 다 빠져나가는 바람에 생긴 거라던가. 수술을 해주려 해도 이미 살아버린 생이 너무 길고, 그렇다고 그 아프다는 걸 그대로 두려니 그것도 못할 일이라진통제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이 아이의 이름은 어진이다.내가 세상에서 쓴 첫 작품의 제목.빨리 벗어달라고 그렇게 쫓아다니더니 이제는 내 양말도 좋아하지를 않아. 엄마는 돋보기를 쓰고 지장경을 읽고, 이 애는눈을 감고 곁에 앉아 있다.아마 이 아이 또한 세상에서가장 익숙한 소리는 엄마의 독경 소리이겠지.

돌이키면 정말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이 애도 이 애의 어미도,그렇게 온전히 한 생을 함께 살았고, 또다시 그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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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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