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 해도 어딘지, 휴우, 정말 다행이다. 닷새가 넘도록 삽십구도를 오르락내리락 열이 떨어지질 않았고, 일주일 가까이는 기침에 가래를 뱉어내느라 잠시도 누울 수가 없어. 감기가 본디 이런 거 아닌가, 한참 심할 때는 못견딜 것 같다가도 보름 정도 지나면 누그러지며 떨어지고마는. 그럴 줄로만 생각하면서, 어 이상하다, 이상하다, 이번 껀 꽤나 기네,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그게 아니. 나중엔 자꾸만 마음이 약해져. 겁이 나는 불안한 생각들.
지난 금요일, 안되겠다 싶어 제주대 병원을 찾았더니, 아니나다를까 바로 입원하라는. 아니, 그럴 사정이 되지 못하니, 매일이라도 외래 진료를 받더라도 통원치료를 받겠다고. 하지만 의사는 지금도 39도를 웃도는데, 이 상태가 벌써 닷새 넘었다면, 그건 무리다. 몸 안의 산소 수치도 모자란다. 외래 진료와 약처방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 당장 수속을 밟아라. 하지만 아무런 준비가 되질 않은 터라, 시키는대로 따를 수가 없어. 당장 내가 병원에 주저앉아 버리고나면 달래 혼자 감자품자를 보아야할 거고, 이제껏 장을 봐서 들어가는 일부터 이것저것 챙겨야 할 모든 일들을 달래 혼자 해야할 걸 생각하면 그 또한 막막. 그건 그렇고, 착공에 들어간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는 한라산 공사는 또 어떻게 하나. 머리가 복잡했다. 복잡한 마음이나 이제는 예전같지 못한 몸에 대한 자신감.
주말 이틀을 그대로 누워서 보낸 뒤, 환자복을 입어. 품자 이 녀석은 모가 좋은지, 아빠 병실에 들어와서도 마냥 신이나기만 해. 환자복으로 갈아입자마자 얼마나 바늘들을 찔러대던지. 이 방 저 방을 다니며 방사선과 초음파에 가슴을 내밀었고, 방사선 조형물을 머금고는 통돌이 안으로 들어가기도 해. 다행히도 막연하게나마 겁을 먹던 그건 아니라 하니, 보름 가까이 그랬던 것처럼 아주 무거운 마음은 아니.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 입원 상태는 얼마나 가게 될지, 이번에는 폐 관련 질환을 깨끗이 떨어뜨릴 수는 있겠는지. 어차피 입원을 하기로 한 거, 얼마가 걸리더라도, 이번만큼은 병원에 맡겨보기로 했다. 내 몸에 대해 자신이 없으니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 설마 하면서 떠오르는 어떤 상상들에 겁이 나 그런 걸까. 달래는 한 수를 더 떠, 옆집에 도인처럼 살고 계신, 그 선생님께 생식과 효소 만드는 법을 배우며 공부를 시작했다.
병원에서 첫날 밤. 결핵 검사를 하자며 가래를 받아오라고 필름통 같은 것들을 주었는데, 참 이상하기도 하지. 집에서는 시퍼렇고 싯누런 가래를 하룻밤 사이에도 몇 그릇씩은 뱉어내는 것 같았는데, 항생제를 봉다리로 매달라 몸 속에 떨어뜨리고 있어 그런가, 이상하게도 가래가 나오질 않아. 집에서는 기침이 너무 괴로워 숨을 쉬는 것도 최대한 가늘게 했건만, 지난 밤엔 뱃가죽에 알이 잡히도록 일부러 기침을 해대어도 나오는 가래가 없어. 얼마만이었을까, 간밤에 두 번 정도 기침으로 깬 것말고는, 어떤 방해도 없이 잠을 잘 자.
다행이다. 회진을 돌던 교수는 숨소리를 들어보고, 몇 가지를 더 체크해보더니 내일 아침도 이렇게 좋아지면은 일단 퇴원을 준비하고 외래로 돌릴 수 있겠다는 거. 적어도 일주일은 있게 되지 않을까, 길면 두 주를 넘길 수도 있을 거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건만, 사흘만에 퇴원을 할 수 있겠다니. 다행이다, 정말.
최소 육개월은 치료를 해야 한다던가. 다 나은 것 같다고 치료를 끊으면, 다 잡지 못한 균이 내성을 키운 채 몸에 그대로 남아, 다음 번에는 치료가 더 어려울 거라는. 지금은 '폐렴에 의한 천식 악화'라는 진단에, 결핵균에 대한 개연성이 충분히 있으니, 추이를 보면서 계속 검사를 해보자 하니, 이제는 어떻게든 몸에 겸손해야 할 일이다. 나 혼자 몸이라면야, 이런 저런 걱정, 불안, 겁 같은 게 이렇지는 않았을 거. 밤새 가슴에 멍이 들도록 기침을 해대다가 눈을 들어 감자, 품자 이 아가들을 보고 있노라면, 왜 그리도 고약한 생각들이 휘감아 겁을 내게 하던지.
감사하게 생각할 일이지 뭐야. 우선은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는 거에도, 입원 상태가 길어지지 않는다는 거에도, 증상 호전만이라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거에도. 그 감사한만큼 몸에는 더 겸손할 것. 이참에 정말 호되게 혼이 나며 공부라도 한 것 같아.
이제까지 하지 못하던 반성이며 다짐. 감자와 품자가 있어, 이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것들. 감자야, 품자야! 아빠가 잘 할게, 잘 이겨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