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감자로그 2017. 5. 16. 12:17

 

 

 빌뱅 언덕, 그 파란 하늘. 할아버지가 떠난지 열 바퀴. 감자랑 품자랑 조탑엘. 십 년 전 그날처럼 하늘은 파랬고, 할아버지 오두막은 조금 어색한 단정함으로 그 자리에 서 있어.

 잘 놀고 왔다. 감자는 할아버지 수돗가에서 물장난을 하였고, 오두막으로 단체 손님들이 인사를 다녀갈 때는 잠시 오두막 뒤편으로 자리를 살짝 피해, 빌뱅 언덕 아래 풀밭에서, 오두막 아래로 흐르는 냇가 둑에서, 꽃을 찾으며 뛰어다니며, 내내 밝은 얼굴이었어. 연신 감자는 "할아버지 집", "권정생 할아버지 집"을 말하며, 세상 문창 안으로 할아버지 사진이 보인다며 들여다보기도 하였고, 나중엔 석현 아저씨가 오두막 문을 열어주었을 땐,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가, 사진 앞에서 엎드려 절을 하기도 해. 할아버지 사진 아래에서 <<황소 아저씨>> 그림책을 펼치며 감자랑 품자랑, 새앙쥐 그림을 찾으며, 시퍼런 색감의 음머어 황소 아저씨를 더듬으며, 어느 학교에서 형아 언니들이 단체로 왔다가 <강아지똥> 노래를 부를 땐,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좋아하면서.

 실컷 신나게 놀던 감자는, 잠투정으로 하는 짜증 하나 없이 사르르 잠이 들어.

 감자랑 품자랑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다녀왔다. 할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감자야, 하고 부르는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니가 품자구나 하고 받아안다가, 아우 무거워라 하시며 휘청 하였을, 그 모습도 그려져.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그 뒤로 십 년 시간이 점점이 떠올라. 할아버지 눈감아 가시기 두어 주 전이었나, 달래를 보며 우스갯소리를 하시던 그 모습도. 그랬는데 어느 새 이렇게 넷이 되었어요. 감자랑 품자랑 아기 둘이 나왔고, 할아버지 마당에서 이렇게 뛰어놀아요.

 

 

 

 전탑 마당에 내려서니, 오두막으로 오르는 고샅 모퉁이집, 부녀회장 할머니가 마당에서 나물을 씻고 계셔. 얼마나 반갑던지. 잠에 덜깬 품자를 조심스레 안으며 인사갈 채비를 하니, 할머니가 먼저 뛰어나오시네. 아기가 둘이냐며, 그래도 이렇게 정생 씨를 잊지 않고 보러 왔냐며, 추모식 할 때마다 얼굴을 찾아보곤 했다며, 반가워해주셔. 그러게, 감자를 낳고도 해마다 다녀가고 있었지만, 추모식 날짜에 맞춰 행사에 가지는 않았으니, 마을 분들을 뵌지도 꽤나 오래되었지 모야.

 그래도 이렇게 할아버지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이들이 아니라 정생 씨라 하는 마을 할머니를 만나니, 그게 얼마나 반가운지. 이렇게 마주칠 줄 알았으면, 시장에 들러 떡이든 사탕이든 사들고 올 것을.  

 

 

 할아버지 오두막으로 들어서는 고샅을 걸어.

 

 

 할아버지 집에 다 왔다, 하니까 감자는 할아버지는 어디에 있느냐며, 할아버지를 찾아. 으응, 할아버지는 하늘나라에 있어. 이 안으로 할아버지 얼굴이 보이는데, 감자도 할아버지 보이니.

 

 

 저기, 할아버지 저기에.

 

 

 감자 손이 하도 더러워, 할아버지 수돗가에서 손부터 씻자, 했더니, 졸졸졸 수돗가에서 물장난에 빠져들어 ㅎ

 

 

 

 

 

 벌써 버스가 두 대째.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러 초등학교 언니형아들이 오두막 마당에 가득. 함께 온 선생님들은 언니형아들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오두막 구석구석에 얽힌 사연 이야기. 평상에서 도시락을 펴고 먹던 감자네는 잠시 자리를 피하고, 감자는 다시 수돗가로 돌아와 물놀이 삼매경에 ㅎ   

 

 

 언니형아들이 오두막을 둘러보는 동안, 살짝 자리를 피해 오두막 뒤편 빌뱅언덕 아래로.

 

 

 달래가 감자에게 얘기를 해주어. "저 언덕 위에 할아버지가 있어." 그러게, 저 언덕 위, 하얗게 가루로 남은 할아버지를 저 위에 뿌렸으니, 그렇기도 하지 모야. 왠지 지금도 저 언덕 위에 쪼그리고 숨어앉아 웬 손님들이 이리도 왔너, 내려다보실 것만 같고.  

 

 

 오두막 마당에서 언니형아들이 해설사 선생님 얘기를 듣는동안, 감자는 엄마랑 빌뱅언덕 아래에서 민들레를 찾으며.

 

 

 언니형아들이 돌아가려 할 즈음, 어구 배고파라, 다시 평상으로 돌아가 도시락을 폈네 ㅎ

 

 

 하하, 아빤 막걸리도 한 잔.

 

 

 밥 한 술을 먹고 마당을 돌아다니고, 또 한 숟갈을 먹곤 오두막 저편 새장 구경을 하고 오고, 그렇게 한 입 물고는 돌아다니고, 한 입 물고는 돌아다니던 감자는, 다시 할아버지 방 안이 궁금했나봐.

 

 

 

 

 

 품자는 이번이 두 번째 찾아온 거지만, 지난 해 찾아왔을 땐 엄마품에서 내내 잠을 잤으니, 품자에겐 처음이나 다름없는지 몰라. 산수유, 앵두 나무 아래 그늘로 들어서니, 나뭇잎들을 보며 얼마나 좋아하던지.

 

 

 좋지, 품자야? 할아버지가 아끼던 나무들. 저 나뭇잎들이 할아버지야. 아, 싱그럽고 시원하다.

 

 

 

 

 

 

 다시 또 버스 한 대가 들어오고 오두막 마당엔 언니형아들이 가득. 이번엔 감자랑 오두막 아래 냇가둑으로.  

 

 

 할아버지가 남겨놓은 글을 보면, 이 냇가에도 온갖 물고기들이 살았다지. 그것들 하나하나 다시 못 보게 되면서 참 많이도 가슴아파 하시던, 그.

 

 

 마당에 있던 언니형아들이 오두막 앞에서 노래를 부르려 해.

 

 

 품자도 같이 언니형아들 보자 ㅎ

 

 

 언니형아들이 <강아지똥> 노래를 부르는 동안 품자는 모가 그리 좋은지.

 

 

 

 

 

 할아버지 방, 오두막 안으로 들어서니, 감자는 여느 때보다 더 조심스러워했다. 집에서 하던 것처럼 아무렇게나 해선 안 될 거라는 걸 감자도 알아 그런 건지. 할아버지 얼굴 앞에 선 감자가 맨 먼저 손에 댄 건 향로 안에 타다 만 향 조각들이었어.

 

 

 

 

 할아버지 앞에서 그림책 한 권을 보았네. 오두막을 이렇게 정리해놓은 뒤로는 아빠도 여기엘 처음 들어와 보는 건데, 생각보다 책꽂이엔 할아버지 책들이 많지를 않아. 그 가운데 하나 고른 건, 아빠가 아주 좋아하던 <<황소 아저씨>>. 이 그림책은 제주 집에는 가져오지를 않은 터라 감자품자에게는 처음 보여주게 된.

 

 

 

 

 할아버지 방에 들어갔을 때, 미처 쓰지 못한 편지를 쓰고 있던 엄마 등에, 감자는 올라타.  감자는 졸렸거든. 그럴 만한 것도 한 게, 비행기를 타고 그 먼 길 차를 타고 와서도, 한껏 신이 나서 놀다가는, 아침엔 그렇게나 일찍 깨어나. 그러고는 할아버지 오두막으로, 언니형아들 버스가 석 대나 들고날 동안 오두막 마당에서, 수돗가에서, 뒤안에서, 냇가둑에서, 그리고 할아버지 방 안에서 내내 즐겁게 놀았으니.

 

 

 으응, 감자야, 이제 가자, 할아버지 안녕! 하고 이젠 그만 가자. 할아버지 또 만나요.

 

 

 여기, 할아버지 고무신이 놓여 있던 자리에.

 

 

 

 할아버지가 세상을 내다 보시던 자리.

 

 

 감자도, 품자도 오두막에 있는 시간이 좋았다. 그 여느 소풍보다도 즐거워하던 맑은 얼굴. 감자는 제주에 돌아와서도 "할아버지 집에", "권정생 할아버지" 하는 말을 문득문득 꺼내곤 했다. 그 순간 어떤 기억이 나는 얼굴을 하면서 할아버지 집을 떠올려.

 감자도 그럴 거나. 경북이 어느 산골, 바위 언덕 아래 오두막에 살던 어느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에게 순간순간을 물어보며, 흔들리는 마음을 비추어 보며. 그러나 따르지 못할 그것을 거울 삼으며 스스로를 괴롭히진 말기를. 그 아름다운 삶과 사랑이, 더 밝고 행복하게 해주는 등불이 되기를.

 품자야, 여기에 한 못난 할아버지가 살았단다. 누구보다 아프고 외롭고 슬픈, 그러나 누구보다 용감했고 정직했던, 아주 예쁜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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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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