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감자네 집 우편물이 소길리로 갈 때가 이따금 있어. 제주에 내려와서 지낸 첫 집, 감자가 태어나던 십사년부터 십오년까지 두 해를 살던, 귤나무 마당이 있던 조그맣고 예쁜 집. 하지만 품자를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할머니까지 내려와 지내시려 하니 그 집에서 다섯이 지내기는 무리였다. 그렇게 해서 십육년부터는 하가리에 있는 집으로 옮겨와.

 감자네 식구가 떠나고 그 집에는 익이 형님의 누님이 들어가 사시게 되었고, 그랬으니 더러 감자네 집으로 오는 우편물이 있어도 수니 언니를 통해 전해받곤 하였다. 그런데 십칠년 들면서 더는 세를 놓질 않게 되면서, 그 집으로 우편물이 들어오는지 하는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출판사에서 <빼떼기> 책들을 소길리 감자네 주소로 보냈다 하여, 그 행방을 찾느라 '소길리 감자네 집'엘 찾았다. 혹시 우편함에 묵혀 있는 편지봉투들이 있지나 않은지, 아님, 집배원 아저씨가 볼 수 있게 우편함에다 무슨 메모같은 걸 적어놓아야 할는지.

 

 

 어머나, 그런데 이게 웬일이래! 녹슬어 낡았던 우편함도 예쁘고 깨끗하게 바뀌어 있었고, 그 우편함 아래에는 과하게 멋을 부리지도 않았으면서, 소박하고 정감이 가는 글씨로 <여관 도도>라는 조그만 푯말이 기대어 있었다. 와아, 그랬구나. 집을 싹 단장해 그야말로 게스트하우스로 꾸며놓았나봐.

 

 

 달래와 함께 문을 열고 계세요, 하고 사람을 불렀을 때, 집 안에 있던 이와 달래는 동시에 "어!" 하며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러니까 지금 감자네가 살았던 그 집을 이렇게나 예쁘게 꾸며, <도도여관>이란 이름으로 운영을 하는 분은, 집 주인 삼춘네의 따님이신 분. 감자네가 그 집에 살고 있을 때 언젠가 한 번 다녀간 일이 있었는데, 달래도 그쪽도 딱 알아보던 거. 우리가 이 집에 살적에도 주인 삼춘은 귤나무에 검질을 매러 이따금 다녀가시곤 했는데, 삼춘네 딸도 딱 그맘 즈음 아기를 낳았다 했고, 얘기얘기를 하다보니 삼춘네 딸이랑 달래랑 나이가 같기도 했다. 암튼, 그랬던 그 주인 삼춘네의 딸이 운영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제주 생활의 첫 보금자리였고, 감자를 맞이해, 그 신비로운 날들을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야말로 특별하고도 소중한 기억의 공간. 그래서일까, 이렇게나 단아하고, 우아하고,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정갈하게도 예쁜. 그런 멋진 공간으로 되살아나 있는데, 마음 한 켠에는 아쉬움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해. 아주 달라지지야 않았지만, 그래도 그때 그, 감자네가 살고 있을 때 그 모습은 이젠 다시 볼 수 없는 거구나 싶은. 그 모습 그대로를 고집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고, 또 가능하지도 않다는 걸 모르진 않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가 없는.  그래도 얼마나 고마운가. 그 옛 건물을 싹 헐어버리고 몇층짜리 건물을 마구잡이로 지어 올리는 거에 대면,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상태로 이처럼 곱게 단장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그런 바람을 갖게 된다. 이 여관이 오래오래 사랑받아, 지금 그 모습으로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그래서 감자품자네 식구가 제주를 떠나 육지로 돌아간 뒤에도, 어쩌다 한 번씩 이 섬에 다녀가거나 할 때면, 우리가 살았던 그 집, 거기를 숙소 삼아 묵을 수 있게 되기를. 감자가 소년이 되고, 감자가 청년이 된 뒤에도, 이 집 마당에 앉아, 감자야, 기억나니? 우리 집 문 앞으로는 새끼를 밴 어미 고양이가 날마다 찾아오곤 했단다. 그러면 엄마랑 아빠는 배고픈 어미 고양이를 위해 먹을 것을 남겨두었다 주곤 했고, 그러다가는 그 어미의 아기고양이들까지 날마다 그렇게 마당에서 기다려. 감자에게는 이 세상 첫 집이 바로 여기란다. 여기에서 첫 울음과 첫 웃음을, 이 집에서 첫 목욕물과 첫 뒤집기를. 그리고 품자도 엄마 뱃속에 들어 이 집에서 알이 굵어졌단다.

 그런 날이 올까, 우리가 이 섬을 떠나, 다시 이 섬으로 여행을 올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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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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