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자 돌을 맞아 외가 식구들이 내려왔다. 감자 형아 땐 서울에 올라간 길에 회기동에서, 광명시에서, 그리고 울진에서 올라온 외가식구들이 모인 잠실에서, 이박삼일 동안 세 탕을 뛰어야 했지만, 이번엔 외가식구들이 제주로 내려오기로 하였으니, 서울에서도 조금이나마 여유로울 수는 있었어.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 울진에 사는 큰이모, 큰이모부, 작은이모에 서울 사는 넷째이모, 그리고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들어온지 얼마 안 된 외삼촌까지 모두 일곱 분. 감자와 품자를 얼마나들 보고 싶어하는지, 외갓집 단톡방은 감자품자 사진 올리는 방이 되다시피 해.
3월 9일부터 12일까지, 한 달 전 쯤 외갓집 식구들이 이 날짜에 내려오기로 계획으 하고 비행기표를 끊을 때까지만 해도 예상하진 못했더랬다. 이 즈음,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 선고가 있을 거라는 건. 그러나 날짜가 가까워지다 보니, 이걸 어쩌나, 아무래도 딱 그 즈음에 선고가 있을 것만 같더니, 아니나다를까 선고 예정일은 다름 아닌 품자가 돌을 맞는 그날.
그동안 15주 넘게 제주시청으로, 광화문으로 촛불을 들었던 감자품자를 생각하면, 품자의 돌 선물로 그보다 더한 거야 없었지만, 살짝 부담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헌재에서 선고 결과가 나온다면, 그날은 그야말로 온나라가 촛불의 감동이자 잔치일 텐데, 그 광장에는 함께 하기가 어렵겠구나 싶은. 식구들이 다 같이 광장으로 나가 그 촛불 속에서 품자의 돌을 기뻐하면야 그보다 좋을 수 없겠지만, 외할아버지는 태극기 집회까지 찾아다니시고 하는 분이니, 그럴 수 없는 노릇. 마음으로야 품자가 돌을 맞는 날, 헌재의 선고가 예정되고 있다는 게 더없이 뜻깊었지만, 기쁜 마음을 맘껏 드러낼 수가 없을 거란 아쉬울 수밖에 없을 ㅠㅠ
첫날 0309
감자품자를 보며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울진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비행기로 제주까지, 먼 길을 내려오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엄마의 엄마, 그리고 엄마의 아빠.
둘쨋날 0310
아빠는 전날에도 밤에 다시 나가 일을 하고 들어왔고, 아침엔 달래와 감자, 품자 다같이 어린이집으로. 감자가 이제 겨우 어린이집 적응을 시작하고 있었으니, 오전만이라도 어린이집엘 가는 게 좋겠다 싶었던 거. 어렵게 휴가까지 내어 제주섬에 내려오신 외갓집 식구들은, 이날 낮동안엔 어디라도 구경을 다니며 바람이라도 쏘일 수 있게. 하여 감자네 집에선 아주 반대편에 있는 섭지코지엘 나갔다 오셨다던가.
운전석이었다. 어디 텔레비전 화면이 있는 데라도 찾아들어가, 직접 장면을 보고 싶었지만, 그렇게까진 하질 못하고, 차 안에 켜놓은 씨비에스 라디오를 통해, 이정미 권한대행이 읽어가는 판결문에 귀를 기울여. 처음엔 노형소방서 쪽에 있었고, 그 뒤로는 노형초등학교 앞에 있는 문구점으로, 그 뒤로는 노형 오거리쪽 주유소.
거스를 수 없는 순리일 거란 생각. 그랬으니 그닥 긴장이 되거나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정미 대행의 차분하나 단호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뛰는 박동이 느껴지는 것 같아. 숨을 죽였고, 침을 삼켜가며 판결문을 들었다. 성실치 못한 것은 인정되나 탄핵 사유로 보기는 어렵다, 정황 증거만으로는 탄핵 시유로 삼기는 어렵다……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수긍이 되는 말들이었다. 냉정하고 엄정해야 한다. 법을 적용하는 건 법에 근거해야만 하는 것. 문구점에 들어서선 라디오를 연결시킨 스마트폰을 귀에 딱 붙이고 물건들을 골랐다. 국가기밀과 관련한 국정농단 부분에 대한 심리 결과를 발표해줄 때야 그나마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아. 국민의 신뢰를 잃은 대통령이라, 또박또박 읽어가던 그말, 그래, 적어도 기각은 아니겠구나. 그러곤, 미처 마음의 준비를 끝내지 못했을 때, 권한대행은 마지막 문장을 읽어내렸다. 피고인 박근혜 대툥령을 파, 면, 한, 다.
어떤 문학보다 감동스럽던 판결문이었어. 그 어떤 미사여구나 문학적 수사 따위는 없는, 사실관계만을 따지는 건조한 문장이 간결하게 이어졌을 뿐이지만, 그 안에는 롤러코스터를 태우는 듯한 기승전결이 있었고, 사실 그 자체만으로 드러내어주는 감동과 진실이 있었다. 보름이 넘게 지난 지금에도, 판결문의 그 마지막 문장, 파면한다, 는 아직도 귀에 울리는 것 같아.
그럴 줄은 몰랐는데, 눈물 한 줄기가 주욱 흘러내렸다. 긴장은커녕 별 감동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탄핵이 된다고 하여 진정 우리의 봄이 되는 걸까, 비판의 거리를 계속 두고 있었고, 과연 우리의 봄이겠는가, 기껏해야 문재인의 봄이 되는 것 아닌가 싶어, 내내 삐딱한 마음이었으니, 그리 감동스러울 것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 눈물이 흘러내리다니, 앉아있던 운전석이 바닥을 깊숙이 내려앉는 것만 같은, 그 이상하던 기분, 도대체 무어였을까.
스무살 때부터라 치면 이십오년을 외쳐왔더랬다. 노태우정권 타도를, 김영삼정권 타도를, 김대중, 노무현 정권 퇴진을, 그리고 이명박을, 박근혜를. 스물다섯 해 동안 던져온 짱돌과 염병이, 그 스물다섯 해 동안 외쳐온 구호와 들었던 피켓들이, 그 스물다섯 해 동안 머리를 깎고 밥을 굶고 스크럼을 짜고 길바닥에 나앉고 눈물을 흘리고 절망에 무너지고, 하던 그 모든 기억들이 한꺼번에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기어이 해내긴 해내는구나. 저 꿈쩍치 않을 것만 같은 거대한 괴물, 그 권력을 우리 힘으로 쓰러뜨리고야 말다니, 아무 힘없는 우리가 끝내 해내다니. 그에 대한 감격과 회한이었을까.
그것으로 세상이 단 번에 바뀌지야 않겠지만, 그것으로 우리 삶이 단숨에 달라지지야 않겠지만, 최악의 경우, 죽쑤어 개를 주는, 또다른 정치세력이 열매를 가로채 가는 걸 눈뜨고 보게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이 경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것.
이겼다, 우리가.
햇살이 좋았어. 감자에게 달려가는 길. 그날따라 감자가 어린이집에 가자마자 울기를 시작해, 내내 울음이 그치지를 않더라고, 아무래도 오늘은 점심먹기 전에 일찍 데리고 집에 가는 게 낫겠다는, 달래의 연락을 받고, 감자와 달래, 품자를 만나러, 그 울렁이는 가슴,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감자를 꼭 끌어안고 소리라도 치고 싶은 마음. 지난 넉 달, 그 찬바람, 눈비를 맞으며 촛불을 밝혀온 감자와 품자. 하지만 감자는 아직 적응하지 못한 어린이집 안에서 얼마나 울었던지 눈가가 부어있었고, 달래의 얼굴에도 걱정이 한 짐.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란 어쩌면 순간순간이, 견디어내거나 이겨내어야 할 싸움인 것을. 저 나뭇가지의 새순들이 딱딱한 껍질을 벗고 나오듯, 겨우내 단단하게 얼어붙은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싹이 그러하듯, 우리가 살아내는 모든 일들이.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감자품자와 함께 시청으로 달려나가고만 싶었다. 다들 얼마나 기뻐할까, 그 오랜 세월 동안 맺혀온 가슴들, 희망을 놓지 않고 촛불을 살려온 손길들, 대동의 축제이자 잔치가 될 그 자리. 감자품자와 그 안에서 그 기쁨을 함께 느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게다가 마침 오늘은 품자가 세상에 온지 첫돌이 되는 날. 떡이라도 잔뜩 찧어 그 광장의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이 기쁜 날이 우리 아가 돌이라며, 세상에 나와 열두 달 동안 넉 달 주말을 이 광장에서 함께 해온, 돌떡을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그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 돌잔치가 있을까 싶은.
하지만 그러지 못할 거라는 게 못내 아쉬워. 광화문에서, 제주시청에서, 그리고 곳곳에서 전화가 걸려오고 문자가 들어오고, 감격과 기쁨, 흥분의 목소리들이 전해져왔지만, 정작 집에서는 탄핵과 관련한 그 어떤 얘기도 하지 못할 분위기.
아쉬운 마음에, '아, 지금 시청 앞은 어떨까, 감자도 거기에 가면 정말 좋아할 텐데' 하는 말을 달래 앞에서만 한 번쯤 흘리기도 하였는데, 달래에게는 그말마저도 서운했던가봐. 감자품자를 낳고 키우는 동안, 마치 감옥처럼 집안에만 갇혀 육아를 하느라, 친정 한 번 가볼 수 없는 처지에, 그 멀리에서 엄마와 아빠, 언니들이 찾아오고, 십 년 넘게 미국생활을 하다 정리하고 돌아온 동생까지 집에 찾아주었는데, 곁에 있는 서방은 촛불광장에 나가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고 있다는 게, 달래 마음에는 못내 서운한 ㅠㅠ
굳이 달래에게 변명을 하자면, 그건 처가 식구들이어서가 아니라 시댁 식구였다 하더라도, 그 어떤 손님이 와 있다 하더라도 그랬을 거라는 거. 오히려 시댁 식구들이 와 있었더라면, 저녁 밥 먹는 자리도 시청 앞으로 옮기고, 식구들이랑 다 같이 시청 앞으로 나가자고, 시청 앞으로 떡을 해 가서 품자 돌떡을 돌리자고, 그랬을 거. 식구들이 싫다고 하면, 집에 있으라 하고 우린 나갔다 올 거라, 하면서 ㅠㅠ
아쉬웁지만, 아기 촛불이 되어 그 광장을 지켜오던 감자와 품자는, 그 기쁜 감격의 순간엔 가보질 못했네. 하지만 두고두고 얘기해주고 싶은 이야기로 남아. 감자야, 품자야, 그때 두돌박이 아가와 일곱달 된 아가가 함께 촛불을 들었단다…… 천만 개나 되는 그 작은 촛불들이 모여 끝내 지독한 어둠을 물리쳤단다…….
한지로 상을 덮어 떡과 과일을 올리고, 그 앞에 한복을 차려 입는, 돌상 차리는 건 토요일인 다음 날 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0310 품자의 첫 생일 저녁을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워 조그만 케잌에 불을 밝혀.
오래된 사진을 보면 더 그렇지만, 얼마 되지 않은 사진을 보면서도 나는 왜 그리도 자꾸만 마음이 짠해지는지. 품자보다도 달래의 얼굴이 더 눈에 들어와, 감자와 품자, 둘을 보면서 그동안 달래는 얼마나 많은 속울음을 울었을까. 어쩌면 아기의 첫돌은, 아기보다도 아기엄마를 축하해야 할 날인지도 몰라.
고마워, 달래야.
밥이며 빨래며,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내가 다 한다며, 나름 자랑삼아 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얘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러나 모르질 않는다. 아무리 장을 보아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출퇴근에 안팎살림을 다 본다 하지만, 달래가 애쓰고 고생해온 거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걸. 지난 두 해 반 동안 밤잠 한 번을 제대로 자 본 적이 있었을까, 아무리 나가기 싫은 일터라지만 그래도 나야 사람들을 만나고 치고박고 돌아다니지만, 그야말로 창살없는 감옥 안에 묶여 지내야 했을 시간들.
달래가 고맙고, 감자가 고마워. 그리고 품자야, 이렇게 한 해를 잘 살아주어 정말로 고맙단다.
셋쨋날 0311
어쩐지 지난 밤부터 몸살기가 찾아왔지만, 새벽부터 일찍 서둘렀다. 품자의 돌상을 차리려 하는데 아무 것도 준비해 둔 것이 없었어. 그랬으니 새벽 일찍부터 전날 사다놓은 종이를 펴고, 색연필을 꺼내 그림을 그려.
품자의 돌상 뒤에 붙여놓을 종이. 마음 같아서는 0310, 그 특별한 날, 품자의 첫돌과 촛불의 감격을 그대로 담고 싪었으나, 그대로 직설하를 못한 채, 나름 돌리고 돌려가며 종이에 써넣어. 그래서 공삼일공, 이 날짜를 굳이 써넣었던 거였는데, 그것만으로도 아쉬워 점점이 촛불들을 찍어넣으며.
오늘은 품자의 날.
울진 큰이모야가 그렇게나 품자를 예뻐해주었고,
이번에 만났을 땐 울진 둘째이모야가 품에서 너무나도 행복해보여.
외할머니가 떼어주는 떡을 얌얌 받아먹기도 ㅎ
하얀 종이를 깨끗이 덮고, 품자의 사진들을 붙이며 돌상을 준비하고 있는 사이
목욕을 하고 나온 감자가, 그 상 앞엘 먼저 털푸덕 ㅎㅎ
아빠가 떡이랑 과일, 음식들을 찾으러 나갔다 오는 동안, 품자는 감자에게 물려받은 그 한 복을 또다시 차려입었고,
감자는 품자의 <생일 축하합니다 ♪> 가 시작하기를 기다려 ^ ^
와아아, 이제 다 되었다. 떡이랑 과일에 명주실을 올리고, 일주도로 변에서 한 움큼 꺾어온 유채꽃도 한 켠에 꽂아두어.
다 차려놓은 상 앞에서도 리허설은 역시 감자 형아가 먼저 ㅎㅎ
품자는 정말로 아기장수 우뚜리와 닮은 그 무엇이 있기는 한 거니. 품자가 세상에 나오고 일 년이 되는 그날, 세상의 봄을 여는 것만 같은 감격스러운 일이 함께 하였으니. 우량우량에 무럭무럭한 몸집을 보며 아기장수 우뚜리라 우스갯 말을 하곤 했는데, 그냥 몸집만이 아니라 아기장수 신화 속 이야기가 다시금 떠올라. 어쩜 우슬이는 정말 우뚜리를 닮았나봐 ㅎ
그러나 엄마아빠가 바라는 건, 아주 평범하게 사는 걸로 행복한 사람. 조그만 것으로 행복하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행복한, 도움을 주는 걸로 행복해하고 도움받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아무래도 이번엔 감자와 품자의 투샷에는 자꾸만 실패지 모야. 무언가 갖춰진 자리인 게 느껴져 감자가 긴장하게 되어 그랬는지 ㅎ
노래부를 때까지만 해도 감자 형아는 몬가 얼어있는 것 같은 얼굴이더니,
촛불 끌 차례가 되자마자 얼굴이 환해지며 달려나와.
ㅎㅎ 감자 형아는 촛불끄는 거 언제하나, 그것만 기다리고 있던 거였구나 ㅋ
품자가 지구별에 온지 일 년 되던 날, 감자네 네 식구입니다 ㅎ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품에서도,
이모야들 품에서도,
그리고 이모부와 외삼촌 품에서도.
저녁엔 외갓집 식구들이랑 다같이 아빠 일터가 있는 오리폽포 구경을.
그렇게 외갓집 식구와 함께 한 삼박사일.
넷쨋날 0312
외갓집 식구들이 돌아가고 그날 저녁.
감자는 엄마 품에 있는 품자를 꼭 끌어 안아.
엄마아빠에겐 그 무엇보다 행복한 장면. 부디, 품자에게는 감자 형아가, 감자에게는 품자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감사한 선물이 되기를. 그렇게 꼭 끌어안고 기대며 살아갈 수 있기를.
그렇게 품자의 지구별 한 바퀴, 돌을 기념하는 시간들을 보내었다. 마침 품자의 첫돌이던 그날, 촛불의 감격이 함께 하기도 하여 더없이 가슴이 뛰던. 세상의 봄, 그리고 품자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