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0 그날

품자로그 2017. 3. 26. 06:00

 

 품자 돌을 맞아 외가 식구들이 내려왔다. 감자 형아 땐 서울에 올라간 길에 회기동에서, 광명시에서, 그리고 울진에서 올라온 외가식구들이 모인 잠실에서, 이박삼일 동안 세 탕을 뛰어야 했지만, 이번엔 외가식구들이 제주로 내려오기로 하였으니, 서울에서도 조금이나마 여유로울 수는 있었어.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 울진에 사는 큰이모, 큰이모부, 작은이모에 서울 사는 넷째이모, 그리고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들어온지 얼마 안 된 외삼촌까지 모두 일곱 분. 감자와 품자를 얼마나들 보고 싶어하는지, 외갓집 단톡방은 감자품자 사진 올리는 방이 되다시피 해. 

 3월 9일부터 12일까지, 한 달 전 쯤 외갓집 식구들이 이 날짜에 내려오기로 계획으 하고 비행기표를 끊을 때까지만 해도 예상하진 못했더랬다. 이 즈음,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탄핵 선고가 있을 거라는 건. 그러나 날짜가 가까워지다 보니, 이걸 어쩌나, 아무래도 딱 그 즈음에 선고가 있을 것만 같더니, 아니나다를까 선고 예정일은 다름 아닌 품자가 돌을 맞는 그날. 

 그동안 15주 넘게 제주시청으로, 광화문으로 촛불을 들었던 감자품자를 생각하면, 품자의 돌 선물로 그보다 더한 거야 없었지만, 살짝 부담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헌재에서 선고 결과가 나온다면, 그날은 그야말로 온나라가 촛불의 감동이자 잔치일 텐데, 그 광장에는 함께 하기가 어렵겠구나 싶은. 식구들이 다 같이 광장으로 나가 그 촛불 속에서 품자의 돌을 기뻐하면야 그보다 좋을 수 없겠지만, 외할아버지는 태극기 집회까지 찾아다니시고 하는 분이니, 그럴 수 없는 노릇. 마음으로야 품자가 돌을 맞는 날, 헌재의 선고가 예정되고 있다는 게 더없이 뜻깊었지만, 기쁜 마음을 맘껏 드러낼 수가 없을 거란 아쉬울 수밖에 없을 ㅠㅠ 

 

 

 

 첫날 0309

 

 

  감자품자를 보며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울진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비행기로 제주까지, 먼 길을 내려오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엄마의 엄마, 그리고 엄마의 아빠.

 

 

 

 둘쨋날 0310 

 

 아빠는 전날에도 밤에 다시 나가 일을 하고 들어왔고, 아침엔 달래와 감자, 품자 다같이 어린이집으로. 감자가 이제 겨우 어린이집 적응을 시작하고 있었으니, 오전만이라도 어린이집엘 가는 게 좋겠다 싶었던 거. 어렵게 휴가까지 내어 제주섬에 내려오신 외갓집 식구들은, 이날 낮동안엔 어디라도 구경을 다니며 바람이라도 쏘일 수 있게. 하여 감자네 집에선 아주 반대편에 있는 섭지코지엘 나갔다 오셨다던가.  

 

 

 

 

 한지로 상을 덮어 떡과 과일을 올리고, 그 앞에 한복을 차려 입는, 돌상 차리는 건 토요일인 다음 날 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0310 품자의 첫 생일 저녁을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워 조그만 케잌에 불을 밝혀.

 

 오래된 사진을 보면 더 그렇지만, 얼마 되지 않은 사진을 보면서도 나는 왜 그리도 자꾸만 마음이 짠해지는지. 품자보다도 달래의 얼굴이 더 눈에 들어와, 감자와 품자, 둘을 보면서 그동안 달래는 얼마나 많은 속울음을 울었을까. 어쩌면 아기의 첫돌은, 아기보다도 아기엄마를 축하해야 할 날인지도 몰라.

 

 고마워, 달래야.

 

 밥이며 빨래며,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내가 다 한다며, 나름 자랑삼아 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얘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러나 모르질 않는다. 아무리 장을 보아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출퇴근에 안팎살림을 다 본다 하지만, 달래가 애쓰고 고생해온 거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걸. 지난 두 해 반 동안 밤잠 한 번을 제대로 자 본 적이 있었을까, 아무리 나가기 싫은 일터라지만 그래도 나야 사람들을 만나고 치고박고 돌아다니지만, 그야말로 창살없는 감옥 안에 묶여 지내야 했을 시간들.

 

 달래가 고맙고, 감자가 고마워. 그리고 품자야, 이렇게 한 해를 잘 살아주어 정말로 고맙단다.

 

 

 

 셋쨋날 0311

 

 어쩐지 지난 밤부터 몸살기가 찾아왔지만, 새벽부터 일찍 서둘렀다. 품자의 돌상을 차리려 하는데 아무 것도 준비해 둔 것이 없었어. 그랬으니 새벽 일찍부터 전날 사다놓은 종이를 펴고, 색연필을 꺼내 그림을 그려.

 

 품자의 돌상 뒤에 붙여놓을 종이. 마음 같아서는 0310, 그 특별한 날, 품자의 첫돌과 촛불의 감격을 그대로 담고 싪었으나, 그대로 직설하를 못한 채, 나름 돌리고 돌려가며 종이에 써넣어. 그래서 공삼일공, 이 날짜를 굳이 써넣었던 거였는데, 그것만으로도 아쉬워 점점이 촛불들을 찍어넣으며.

 

 

   

 

 품자는 정말로 아기장수 우뚜리와 닮은 그 무엇이 있기는 한 거니. 품자가 세상에 나오고 일 년이 되는 그날, 세상의 봄을 여는 것만 같은 감격스러운 일이 함께 하였으니. 우량우량에 무럭무럭한 몸집을 보며 아기장수 우뚜리라 우스갯 말을 하곤 했는데, 그냥 몸집만이 아니라 아기장수 신화 속 이야기가 다시금 떠올라. 어쩜 우슬이는 정말 우뚜리를 닮았나봐 ㅎ

 

 그러나 엄마아빠가 바라는 건, 아주 평범하게 사는 걸로 행복한 사람. 조그만 것으로 행복하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행복한, 도움을 주는 걸로 행복해하고 도움받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넷쨋날 0312

 

 외갓집 식구들이 돌아가고 그날 저녁.

 

 

 감자는 엄마 품에 있는 품자를 꼭 끌어 안아.

 

 엄마아빠에겐 그 무엇보다 행복한 장면. 부디, 품자에게는 감자 형아가, 감자에게는 품자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감사한 선물이 되기를. 그렇게 꼭 끌어안고 기대며 살아갈 수 있기를.

 

 그렇게 품자의 지구별 한 바퀴, 돌을 기념하는 시간들을 보내었다. 마침 품자의 첫돌이던 그날, 촛불의 감격이 함께 하기도 하여 더없이 가슴이 뛰던. 세상의 봄, 그리고 품자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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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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