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땐 칠월로 접어들고 며칠 안 되던 때였네. 근이가 내려오고 나흘째되던 날이었나. 아직 현장 일들이 빡빡하게 돌아가진 않던 때, 어느 하루 일을 마치고 나갔던 용담동 바닷가 놀이터. 물론 그동안에도 품자랑 놀이터엘 안 가본 건 아니었지만, 그 전까지는 감자 형아만 미끄럼으로 그네로 시소로, 맘껏 돌아다니고, 품자는 아빠거나 엄마 품에 안겨서 구경할 뿐이었는데,
드디어 품자도 제 발로 기어서 미끄럼에 올라!
아래에서 지켜보는 우리는 그저 빈 손을 움켜질 뿐이었다. 옳지, 옳지 오올치. 한 걸음 더, 한 걸음만 더. 혹여나 힘이 빠져 뒤로 벌렁 자빠지지나 않을까 싶어 조심을 하면서도, 한 발 한 발을 떼는 그 걸음에 흥분과 설렘의 긴장이.
유야용품을 빌려주는 데가 있어서, 집 안에 빌려다 놓은 미끄럼틀이야, 이미 벌써 기어오르고 있었지만, 놀이터에 있는, 형아들이 노는 미끄럼을 기어오르기는, 처음이었다. 품자가 태어난지 열여섯 달이 되던 때.
참 신기한 건, 이 갓난 아가들도 표정에 다 드러난다는 거. 자기가 무언가 잘했다 싶을 땐, 뿌듯해하는,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얼굴을 짓는단 말이지.
이제는 감자 형아랑 나란히 미끄럼에 앉을 수도 있어.
이제 두어달 가까이 지났으니, 저게 무어 그리 대단했을까, 겨우 미끄럼을 기어올랐을 뿐인데, 싶지만, 저 순간, 그 당시에는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한 목숨이 커간다는 건, 순간순간이 감격이고 감동이라는 것을.
그 다음부터는 모자도 벗어놓고선 몇 번이고 다시 기어올랐다 미끄러지기를 하고 또.
감자 형아는 이리저리 미끄럼 길을 뛰어다니며 품자를 불러. 저쪽 계단으로 올라 곱창 같은 통로를 지나 품자에게 깍꿍을 하기도 하고, 이쪽 미끄럼으로, 저쪽 굴처럼 생긴 미끄럼으로 신나게 뛰어다니며 품자 얼굴에 대고 깍꿍을 했다간 저쪽으로 달아나고, 달아났다 다시 쫓아오기를.
겁이 나지도 않는가봐. 확실히 조심성이 많아 한 걸음 내딛기를 주저하던 감자하고는 달리, 품자는 거침이 없어. 미끄럼 오르기에 성공한 품자는 이제 어디라도 갈 수 있을 것처럼.
곱창 속으로 품자가 들어오니, 감자 형아가 더 신이 나. 여기는 이렇게 가는 거라고 가르쳐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리로 따라와 보라고 하는 것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동 발을 굴러대면서.
곱창 굴을 다 빠져나오니 또 이런 놀잇감을 만져볼 수가 있어. 지금 품자는 손에 닿는 것 하나하나가 새롭고 재미있어.
한 번 통과한 그 곱창 굴을 몇 번이고 다시 기어들어.
그러다 반대편으로 가보니, 감자 형아는 곱창 굴처럼 생긴 미끄럼 속에서 쭈우우우욱.
형아가 하는 거라며 뭐든 따라하고 싶은 품자는, 그 곱창 미끄럼틀을 거꾸로 기어오르는 데에도 성공을 ㅎ
그렇게 형아랑 둘이서 곱창 미끄럼틀 안에서 놀 수 있게 되었다.
이날 근이는 왜 인지 힘이 없이 축 처져 있었는데, 알고보니 배탈이 시작되고 있었던 ㅠㅠ 그래도 근이는 품자가 미끄럼에 기어오르는 걸 해내니, 품자 곁에서 함께 미끄럼을 타고, 함께 곱창 안으로 기어들어가 ㅎ
이렇게 형아랑 같이 슈웅 미끄럼을 타기도,
형아가 돌봐주어 혼자서도 슈우웅.
근이 형아가 뒤에 있으니 어디에서건 든든하고 안심이 되던.
한참을 놀던 감자는, 엄마를 졸라 물이 먹고 싶다고, 요구르트가 먹고 싶다고, 뭐라도 마시고 싶다고 하여 건너편 편의점에 가서 뽀로로 쥬스 하나를 득템. 다른 때 같으면 품자도, 형아가 먹는 걸 보면 나도 먹겠다고, 나도 먹고 싶다고, 내 손에도 쥐어달라고 안쓰럽고 간절한 얼굴을 했겠지만, 이날만큼은 형아가 뽀로로쥬스를 마시거나말거나. 놀이터 미끄럼틀에 올라서게 된 품자에게는 뽀로로쥬스 따위야 안중에도 들어오지 않던.
품자가 놀이터 미끄럼에 올라서던 첫 순간이었다. 더는 엄마나 아빠 품에만 매달려, 형아가 노는 걸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맨 무릎이 시뻘개지도록 어디라도 기어오르고, 어디라도 쫓아다닐 수가 있게 된. 여름의 시작과 함께 품자도 그렇게 자라고 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