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아저씬 어느 하늘 위를 날아가고 있을까. 세 시간 전 비행기가 인천 활주로에서 떴으니 제법 멀리 가고 있겠지. 전처럼 불안하거나 아득한 마음이 덜한 것은 사실이다. 벌써 몇 해 째 아저씨를 만나, 인천에 나가 아저씰 배웅하면서, 혹여나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 되는 것은 아닐까, 늘 마음을 졸이곤 했지만, 적어도 이젠 점령과 내전의 소용돌이가 있던 그 때만큼은 아니라 했으니.
이라크로 돌아갈 아저씨를 떠올리던 참에 메일함을 열었더니 마침 바람이가 보내준 사진 한 뭉치가 있다. 그날 기차길에 함께 다녀오는 길에 바람이도 짬짬이 사진기를 꺼내곤 했는데 그것들이었다. 평소 사진찍기를 취미로 삼아 어느만큼은 전문가 포쓰를 보이곤 하더니역시나 내가 찍은 흔들리고 초점 흐린 사진들이랑은 또다르다. 통역을 하는 사이 짬짬이 찍느라 몇 컷 없기는 하지만 다시금 그날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 같아. 공부방 2층에 앉아 동훈 삼촌이랑 사진책을 보던 때며 1층에 내려가 아이들을 다 같이 만나고 난 자리에서 기차길의 '엔, 돌, 핀'이라는 세 아이가 선물을 건네던 장면, 그리고 공부방을 나와 창밖에서 들여다 본 따뜻한 그림까지.
돌아오는 길 동인천역은 거의 종착역이나 다름이 없어 넓게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건너편에 앉은 바람이가 찍어준 사진들이 여러 장이다. 다시 만석동 그 마을과 공부방을 담은 사진책을 꺼내 아저씨와 함께 보던, 이모삼촌이 따로 챙겨준 아이들 사진들을 하나하나 다시 보던. 비슷한 사진들이지만 고르지 않고 주루륵 그냥 다.
아, 이거는 손전화기로찍었던 것 가운데 건진 것 하나. 아저씨를 숙소 앞까지 데려다주면서, 한참 작별 인사를 하다가 뭐가 또 아쉬운지 전화기로 찍었던 거.고물딱지 전화기로 찍은 거지만이거 하나는 그래도 예쁘게 나왔네. 잘 가요, 아저씨. 내년에 만나자고 했는데 벌써 내년이 되었네. 곧 다시 만나겠지. 마쌀라마, 씨유순.
아하하. 바람이가 보내준 사진뭉치 끄트머리에 요런 것도 끼어 있다. 그러니까 그날 밤 아저씨와 헤어지고 나서 영월로 돌아올 차편도 끊겼고, 바람이네 집으로 갔던 거. 미리 가 있던 바람이와 해원이, 그리고 나중에 온 혜숙이, 정숙이 두 누이까지 해서 계획에 없던 송년의 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 날 밤 내가 제일 일찍 뻗었다나 뭐라나. 그러곤 다음 날 아침 젤 먼저 일어나서는 막 깨우고 그랬다지, 아마.띨띨하니 부시시꺼벙해보이는 게딱 마음에 드는 모습이다. 나 이런 사람이야, 알아서 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