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

난장이공 2015. 8. 7. 01:35

 

 

 

1. 신기한 일

 

 

 흔히 말하는 휴가철이어서 그런 걸까. 생각보다 손님이 많아. 아니, 한 며칠은 잠시도 숨돌릴 새 없이 돌아서면 주문이 들어오고, 주문받은 걸 내어가고 나면 다시 또 주문. 개수대에 설거지는 쌓여가는데, 음식 해야하는 것들이 잔뜩 밀리고 있어, 쌓여만 가는 설거지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얼음을 부수거나 칼질을 해야 했다. 신기한 일이다. 처음 난장이공을 맡아 하기로 했을 때만 해도, '손님이 별로 들지 않는' 다는 얘기에, 그렇담 해볼만 하겠구나 싶어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인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그게 아니네. 어쩐 일일까. 


 아홉 시에 문을 닫는다고는 하지만, 시간되었다고 자리에 있는 사람을 쫓을 수는 없고, 그러다 보면 열 시이거나 그보다 더 오래. 손님들이 다 가고 나서도 그 뒷정리에 다음 날 해야 할 것들 준비까지 하다 나면 밤 열한 시나 되어야 녹초가 되어 나오곤 해. 그리고 그 시간에 집에 돌아와서는 그때부터 감자 기저귀 빨래.

 

 아, 내일 아침에는 일찌감치 나가 장을 한 번 더 봐야해. 가게가 쉬는 지난 월요일, 그날 장을 보고 돌아오면서, 이 정도면 일주일 장사는 충분하겠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 화수목 고작 사흘 밖에 지나질 않았는데 벌써 떨어진 재료들이 적지 않아. 일주일 장사를 생각한 재료였는데, 사흘만에 동이 나고 있으니, 되기는 뭐가 되는 모양이지 ^ ^a

 

 그러나 좋다. 몸이야 고단하고 피곤하지만 그래도 좋아.

 

 

 

 

 

2. 삼달에서 온 소녀들

 

 

 카페에 다녀가는 이들 가운데에는 반가운 이들, 고마운 이들도 많았고, 생각지 못한 깜짝 방문들도 많았지만, 오늘 다녀간 이 두 소녀들은 가장 기분이 좋았어. 테이블이 모두 비어 있던 오후, 언덕 아래에서부터 걸어올라오더니 카페로 들어오던 아이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며 한참을 고르더니 카운터 앞으로 와서 주문을 넣어. 그러면서 아주 쑥스러워하는 목소리로, 저희 여기 누구 소개로 왔어요, 하는 거라.

 

 

 

 

 삼달리에서 묵고 있다가 오늘 하루 판포리에서 하룻밤을 보내려고 서쪽으로 넘어온 길이었다지. 삼달리 하니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어. 지난 오월, 제천 철수 아저씨 집에 갔을 때 만난 정신 씨. 아, 그때 정신 씨가 삼달리에 산다고 했던 것 같은데. 누구 소개로 왔냐고 하니까 들나무 소개로 온 거래. 들나무? 혹시 그분 이름이 정신 씨 아니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그때 철수 아저씨는 대장경을 목판으로 작업하느라 몹시도 바빴고, 그래서 후배 작가 둘이 그 일을 돕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제주에 지내는 이라 했는데, 그래서 인사하게 된 이가 정신 씨. 6월 말이면 작업을 모두 마칠 거라고, 그러면 다시 제주로 내려갈 거라고, 김영갑 갤러리가 있는 삼달리에 살고 있으니, 제주에서 다시 만나자고, 그렇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러고는 따로 만나거나 하진 못하고 석 달이 지나고 있었어.

 

 오늘 카페에 온 이 소녀들은 정신 씨에게 그림을 배웠다지. 그래서 대학생 쯤 되었겠거니 했는데, 고등학생들이라네. 아, 맞다! 그리고 그 둘은 쌍둥이였어. 한 눈에 알아보고 쌍둥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끄덕끄덕. 삼달리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제주 시내로 들어와, 시내에서 장전리까지 버스로, 그리고 장전에서 소길까지 다시 버스, 소길 리사무소에 버스를 내려서도 초행길이라면 꽤나 멀었을 난장이공까지 걸어서……. 누가 이 카페엘 그렇게 찾아줄까. 자주 있지도 않은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면서, 그것도 이 여름 땡볕에 스마트폰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그 언덕을 걸어올라.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라니, 그것만으로도 더욱 예뻤다. 도시락을 시켜먹고, 스무디 하나씩을 시켜먹고, 스케치 노트를 꺼내어 그림을 그리다가, 내가 건네어준 동화책을 읽어보다가, 그렇게 있다가는 다시 버스 시간이 되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판포까지 가려면 버스를 또 세 번은 타야 할 텐데. 하지만 그 걸음이 하나도 무거워 보이지가 않아. 달래 감자와 함께 카페 문 밖으로 배웅을 나가,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두 소녀를 한참도록 바라보았네. 달래도, 나도 와아아, 참 예쁜 아이들이다! 하면서.

 

 

 

 

 다음에 제주에 오면 또 올 거라는 말, 적지 않은 손님들이 카페 문을 나서면서 건네는 인사이지만, 두 아이가 수줍게 웃으며 건네는 그 말에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응답했다. 꼭 그런 일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하지만, 아마도 그땐 감자네가 이미 카페를 떠난 뒤일 거란 것도 알고는 있어.

 

 카페를 하면서, 손님을 맞으며 기쁜 순간들이 있어. 또는 반갑고, 고맙고, 특별한 어떤 순간들.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 카페를 하면서 만나게 되는 저마다 다른 손님들,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되는 이들. 그런 사람들 이야기만을 날마다 짝막하게나마 일기를 써볼까. '목수 일기'니 '육아 일기'니 하는 것처럼 굳이 이름을 달자면 그럼 그건 '손님 일기'가 되려나.

 

 팔월 육일 - 참 예쁜 소녀들이 다녀갔다.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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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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