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이라거나 작가와 만남 같은 자리, 더는 하지 않고 있었건만 지난 주말 양동엘 다녀왔다. 양동마을 안에 있는 양동초등학교, 거기에 달래가 대학시절 기숙사 룸메로 지내던 친구가 선생님으로 있어. 벌써 지난 해부터 학교에 한 번 다녀가 줄 수 있으냐는 부탁을 받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는 그런 거 못한다고 잘라 말하고, 이 핑계에 저 핑계로 미루고 있던 것을, 올 봄 약속을 하고 말았다. 양동에 오시면, 고택에서 하룻밤 재워줄 거라는 말에, 홀라당 넘어가 버리고 말았던 거. 그러니 나는 사실 양동초등학교에 가는 일보다 양동마을에 더 끌리고 있었고, 아이들을 만나는 일보다 마을에 있는 고택에서 잠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거에 더 설레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전에도 이미 양동마을로는 건축 답사를 하러 이미 수 차례를 다녀왔고, 그 때마다 마을 초입에 있는 학교를 지나치곤 했어.
저 위에 층단을 둔 담장이 길게 이어진 곳이 향단. 그 오른 편에 초가 하나와 팔작 안채, 맞배 사랑채가 디귿자로 앉은 집이, 그날 밤 우리가 묵은 숙소.
학교든 도서관이든, 또는 그 비슷한 어떤 자리건 강연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언제나 곤혹스러운 일이다. 나는 할 말이 없어, 하고 싶은 말이 없어.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자리를 준비한 이들이거나 그 자리에 찾아온 이들이 듣고 싶은 얘기를 나는 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날 양동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일은 아주 오랜만에 즐겁고 행복했다. 나는 아이들과 눈을 맞췄고, 아이들과 나는 무릎을 대고 앉았다. 나보다 아이들이 더 많은 말들을 해댔고, 내가 어물거리며 하는 얘기를 아이들은 답답해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그저 아이들 뒤를 따르기만 해도 좋았다. 아이들이 몇 주 전부터 준비했다는 그림을 보며, 글을 읽으며 즐거웁고 따뜻했던 시간.
물론 달래의 룸메였던 그 선생님이 얼마나 애썼는지를 모르지 않는다. 어떤 짜임새를 갖춘 행사이거나 바깥으로 보여주기에 좋은 자리를 만드는 것은 차라리 쉽다. 그런 것 아무 것도 없이, 아이들이 마음을 내려놓고 다 열린 채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도록 준비를 한다는 것, 그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게다가 까칠할대로 까칠한데다가 덜떨어지까지한 애를 불러놓았으니 오죽이나 했을까. 아이들과 만난 시간도 그러했지만, 그날 밤 술자리까지 나는 걱정없이 좋고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