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답사 3

굴 속의 시간 2010. 3. 11. 21:20

경복궁에서 나와 창경궁으로 갔다. 아쉽게도 창덕궁과 덕수궁은 쉬는 요일, 가장 가 보고 싶은 곳이 창덕궁이었지만 거긴 다음 기회에 가야 했다. 그러고는 서울에 있는 궁궐 문화재 지도들을 보다가 다음 코스로 창경궁을 잡았다. 걸어서도 살살 잠깐이겠으나 함께 간 길목수 분이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어 택시를 타고 움직였다. 길목수 형님은 이번 겨울 모탕에서 떨어진 기둥에 발등이 찧어 철심을 박아넣는 수술을 하고는 일을 못하게 되면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했다. 낙산사에서, 통도사에서 복원 공사를 해오고 있었다는……. 게다가 길목수 형님이 있어궁궐에 들어갈 때마다 입장권을 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증을 이미 따고 있었기에 그것을 보여주며 말을하면표를 받는 분들이 그냥 들어가게끔 해주곤 했으니 말이다.

홍화문, 창경궁의 정문이다. 혹시 길을 건너가면 사진기에 다 못담을까 싶어 신호등을 건너는 중간에찍어봤다. 그러니 바깥에서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 경복궁이 조선의 법궁이라면 창경궁은 대비들을 위해 지은 이궁이다. 그렇기에 창경궁은 경복궁을 비롯한 다른 궁들에 비해위계가 조금 떨어지게 지었다고 배웠다. 문의 형식도 삼문삼조 체계가 아니라 이문체계라 했고, 다른 궁의 정전들은 모두 중층 건물인데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만 단층 건물이라고. 그리고 또 한 가지 차이라면 창경궁은 유교원리와 원칙에 입각해서 지었다기 보다는 자연지세와 풍수지리에 따라 지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건물의 정문과 정전 자체는이례적으로 동향을 하고 있다.그러면서도 창경궁의 정문 양쪽에는 창덕궁에도 없는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을 배치했다거나초각과 장식들을 화려하게 하여 조금 낮은 위계의 궁이면서도 그렇게허술하게 지은 것은 아니라며 말이다.


정문으로 들어서기 전 바깥에 안내판으로 있는 창경궁의 배치도와 창경궁에 대한 설명이다. 고려의 남경 터에 지었다는 것, 처음 지을 때 이름은 수강궁이었다는 것, 임란 때 불에 탔다가 광해 8년(1616년)에 재건되었다는 것, 다시 불이나고 난 뒤순조 34년(1834년)에 재건하여 대부분의 내전들은 이 때 지어진 것이며 그 가운데 명정전만은 광해8년(1616년) 때 지어진 그대로라는 것 들은 이 설명을 보고 알게 되었다.


홍화문 역시 중층의 문루 건물. 그러니 이 건물 또한 귀잡이보를 넣어 상층의 외진귓기둥을 올렸을 것이다. 정면 세 칸에 측면 두 칸이며 상층으로 올라갈 때는 반칸물림을 하여 역시 세 칸, 두 칸으로 올라가 있다. 공포부를 보면 제공들이 밑으로 강직하게 내리 뻗은 쇠서들이다. 경복궁 흥례문에서는 위로 솟구친 앙서로 초각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여기에 보이는 초공은 초기의 나비안초공 모양이다. 경복궁 문루건물과 근정전에서는 기둥부터 창방과 평방, 주두까지 다 잡아주는 커다란 초공이었으나, 창경궁 홍화문에 쓰인 초공은 주두까지는 닿지도 않고 기둥 머리에서 평방까지만 살짝 물고 있다.

홍화문을 지나면 옥천교를 지나고 명정문이 나온다. 경복궁에서는 광화문과 흥례문을 지나면 영제교를 지나 근정문이 나왔다. 창덕궁에서는 금천교를 지나게 되고…. 아무튼 이렇게 궁궐들은옥천교든 영제교든 금천교든 다리 하나씩을 건너서 정전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 모습도 당시 궁궐을 조성하는 하나의 양식이다. 이것은 뭐라고 했더라, 악귀나 잡신, 화마 따위가 강을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주술의 의미 때문이라 했던가? 암튼 그렇다.

사진으로만 봐도 명정전 앞의 명정문이 근정전 앞의 근정문보다 훨씬 오래되어 보인다. 이 문 역시 명정전처럼 광해군 8년(1616년)에 만들어진 그대로의오래된 궁궐 건축물이라 한다.세 칸, 두 칸 입면을 가졌는데 중층이 아닌 단층으로 되어 있다.사진을 찍다보니 길목수 형님 얼굴도 있다. ^ ^

이 사진은 왜 찍었더라, 왜 찍었더라… 아하, 그거다. 공포부의 내출목 쪽 부재들이 초각없이 교두형으로 되어 있다는 것. 마치 초기 주심포 건물인 봉정사 극락전의 첨차들을 보는 것처럼 별다른 모양 없이 뚝뚝 끊겨져 있다. 에고, 하필이면 바깥쪽은 명정문 현판이 걸려 제공의 초각을 확인할 수 없는 위치에서 찍었네. 안팎의 공포부 모습이 다 보일 수 있게 찍었어야 할 것을. 혹시 싶어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이 명정문에 대해서만 자세히 부분부분 뜯어가며 사진을 찍어놓은 블로그가 있다. 그걸 보고야 알았다. 내삼출목에 외이출목인데 바깥에서 출목 하나를 생략하고 제공을 하나만 두었다. 다포계 형식에서 이처럼 안쪽은 그대로 두고 바깥쪽만을 생략한 것은 드문 경우라는 것도 말이다.생각해보니까 길목수 형님이 그 말을 해주었던 것도 같다. 이그, 띨띨이.

요 사진은 또 왜 찍었니? 명정문을 둘러보다가 기와의 막새 부분이 일정치 않고 이상하다 싶어 찍은 기억이 난다. 사진에서 보이는 기와들의 가운데 쯤을 보면 막새 하나가 넓고 커다란 게 걸려 있는데, 저건 뭔가, 왜 그런가 싶었던 것이다. 글쎄, 중건 당시 구부재를 살려서 쓰느라고 저렇게 된 것인지, 어떤 경우인 것인지, 양식이랄 것까지는 없고 별 대단치 않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ㅠㅠ (나중에 물어봐야지.)


명정문을 지나 명정전으로 들기 전에 생각나는 게 있어 뒤를 돌아 찍은 사진들. 아마 정문인 홍화문 담장 끝으로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이 있는 것을 확인하느라 찍은 것 같다. 경복궁도 지금은 동십자각이 남아 있으니 궁에 좌우 십자각이 남아 있는 것은 이것 뿐이다. 아, 그런데 동십자각, 서십자각으로 불러서는 안 될 것 같다. 이 궁은 남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향을 하고 있으니 방위로 따지면 남십자각과 북십자각이 될 테니 말이다. 그냥 좌우에 한 쌍의 십자각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하면 될는지.

명정전으로 들어갔다.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은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이나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과 달리 단층 건물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월대는 이층으로 만들어놓았다.(아! 우연히도 창경궁에 들어서면서 한 강의실에서 공부를 하는 또 다른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그 분은 혼자 답사를 나온 길이었고, 이렇게 되어 이 뒤부터는 셋이서 함께 다니게 되었다.)



명정전 안의 보개천정과 층단을 지어 만들어 감입 시킨 어칸 주좌 위의 천정이다.


아, 그런데 이 사진 둘은 암만 생각해도 왜 찍었는지가 기억나질 않아. 같이 다니던 분들한테 물었어도 만족할만한 대답을 듣지 못해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 그럼 나중에 강의실에서 선생님께 물어야지 하면서 허리를 건물 안으로 쑥 집어넣으면서까지 찍기는 한 것 같은데, 이게 뭐였더라. 이 내고주에서 측면부로 나가는 툇보가 있기는 한데 안에 감주되어 있는 열에서는 툇보가 없다는 것, 그게 이상하다 싶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이 사진으로는 알아볼 길이 없다. 사진을 잘못 찍은 겐지. (아, 정말 바보같이, 기껏 답사를 해놓고 이게 뭐야. ㅠㅠ)

꽃살창이 예뻐 찍었는데, 정확한 이름은 '솟을빗꽃살창'이란다.

합각부는 경복궁의 침전들에서 본 것처럼 전돌로 장식을 했다거나 하지 않고 판재로 마감을 했다. 박공에 까치발이라거나 하는 것도 없고 그냥 박공을 지네철로 고정하고 있다는 정도만 보인다.

경복궁에서는 편전인 사정전은 정전인 근정전에서 일직선상으로 뒤에 놓여 있었고, 그리로 건너가려면 문을 하나 지났어야 했는데, 창경궁의 편전은 정전인 명정전 남쪽에 위치해 있다. 창경궁의 편전은 문정전이라 하는데, 창경궁의 정문과 정전들이 모두 동향을 하고 있는 것에 반해 이 문정전은 남향을 하고 있다. 그래서 문정전은 마치 명정전을 등진 것처럼 돌아앉아 있는데, 위의 사진은 명정전과 문정전의 사이, 명정전에서 문정전으로 건너가는 행랑이라 할 수 있다. 사진은 명정전의 뒷편에서 찍은 것이며 왼쪽이 명정전, 오른쪽이 문정전이며 그 두 건물 사이에 있는 행랑이다. 그런데 특별히 이러한 행랑은 왕이 다니는행랑이라 하여 지붕도 씌워놓고 '천랑'이라 한다던가.

이 사진은 다시 명정전의 정면에서 봤을 때 오른쪽 측면에서 찍은 사진이다. 여기도 팔작건물인 명정전의 뒷편에 행랑을 이루는 기둥들이 서고, 맞배모양으로 지붕이 씌워진 천랑이 나 있다. 지붕을 붙인 방식이 눈에 띄어 일부러 사진으로 담아보았다.

숭문당이라는 건물이다. 명정전과 문정전이 방향을 달리하기는 하지만 나름 나란히 있다면 정문의 진입축에서 봤을 때 그 뒤에 있는 건물이 바로 숭문당. 임금이 신하들과 정사와 학문을 논하던 곳이라 하는데, 이 건물은 자연경사지 위에 짓느라 앞에는 꽤 높은 주초석을 썼고, 뒷면에는 낮은 주초를 썼다. 창경궁이 자연지세를 이용해 궁을 지었다는 것이 새삼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건물은 통명전인데, 명정전과 문정전, 숭문당 들을 지나 동북쪽으로 가다보면 통명전이 나오기 전에 함인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그 뒤로 동향을 한 경춘전과 남향을 한 환경전이라는 두 개의 침전이 나온다. 그 북쪽으로 가장 깊숙한 곳에 남향을 하고 있는 건물이 통명전인데, 이 건물은 왕비의 침전으로 내전에서는 가장 으뜸이 되는 건물이다. 그리고 그것과 나란히 동쪽으로는 양화당이라는 건물이 있어 내전의 접대 공간으로 쓰이는 건물이 있기도 하다.

통명전은 왕비의 침전인 중궁이기도 한데 경복궁의 교태전처럼 합각부에 전돌 장식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통명전 역시 용마루가 없이 기와처리가 되어 있다. 창경궁의 다른 침전 건물들인 환경전과 경춘전에는 회를 두껍게 마른 용마루가 있는데 이 건물에만 용마루가 보이질 않았다.

종묘로 넘어가기 전에 옥천교를 사진으로 찍어가고 싶어 다시 홍화문 앞까지 뛰어내려가 사진을 찍고 왔는데 정작 찍어야 할 것은 찍지 않고, 그저 그 위치나 존재만을 확인하는 사진밖에 되지 않았다. 정작 확인해야 하는 모습은 홍예구조로 되어 있는 다리의 모습인데 이렇게 다리 위에서만 찍었으니 말이다. 어이구, 멍충이 같으니라구. 아무튼 직접 사진을 찍어오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볼 수 있게끔 꼼꼼히 사진과 설명을 올려놓은 블로그가 있어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지 모른다.

서울시인터넷방송싸이트에 가서 영상을 따라가며 다시 한 번 창경궁을 둘러보았다. 이또한서울의 역사편찬위원회에 있는 연구위원이 해설해준다.

또한 서울문화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경복궁에 있는 중요 문화재들에 대한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창경궁

-창경궁 명정전

-창경궁 통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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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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