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더움에 대고 여름 안녕, 이라 하기에는 섣부른 것 같지만, 밤에 나와 난닝구 바람으로 마당에 서면 확실히 다르기는 하다. 노랑에 빨강을 더해 붉은 빛깔로 선명한 달빛, 풀벌레들 울음, 난닝구 사이를 스미는 서늘한 밤공기.
팔월 둘쨋주, 광복절이 있어 짧은 연휴가 되던 주말. 라다 빵군네가 바다에 한 번 더 나가자 하여 함께 나간 곽지 바다. 땡볕을 피해 해가 저무는 오후 너댓 시 쯤 나갔는데도 물에 빠져 한참을 놀았다. 라다와 빵군이 아가들을 돌보아주니, 달래도 나도 번갈아가며 바다에 풍덩풍덩 빠져들 수가 있던. 확실히 곽지는 금능보다 파도가 세고 거칠어. 그래서 처음에는 감자가 바다에 들어갔다가 다시 들어가기를 겁내어 하더니, 번쩍 안아들고 저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나니 나중에는 감자가 나오기를 싫어하네.
올 여름 바닷물에 들어가는 건 이게 아마 마지막이 될.
그 다음 주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동쪽 바다엘 한 번 가보자며 나선 김녕 성세기. 아마 그 주말 아침 마당에 나가보았더니 하늘이 아주 맑아, 햇볕이 좋았나 보다. 문득, 제주살이 첫해, 김녕으로 출퇴근을 하면서 날마다 보던 그 바다가 떠올라. 감자품자에게도 그 바다를 보여주고 싶다 했더니, 달래도 흔쾌히 좋다고 해. 그런데 제주 날씨란 참 이상도 하지, 서쪽에서 투명하기까지 하면서 파랗던 하늘이 동쪽으로 넘어가니 희끄므레해지면서 어느덧 하늘도 바다도 잿빛, 먹빛이 되어. 그랬으니 머릿속으로 떠올리던 그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는 풍경을 감자품자에게 보여줄 수 없었지만, 무작정 나선 그 길도 좋았다.
으응, 감자야 여긴 이 섬의 동쪽. 감자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아빠 혼자 제주 섬에 살면서 맨 처음 만났던 바다.
ㅎㅎ 깜장 고무신 한짝은 어디에다 흘렸니.
이날은 물놀이 준비라는 걸 따로 하지를 않아, 갈아입힐 옷도, 젖은 몸을 닦을 수건 한 장도 가져가질 않았는데, 바다 앞에 서니까 들어가고 싶은 걸 어떡해. 좋다, 아랫도리까지만 젖어보기로, 하고선 물 속으로 참방참방 ㅎ
이로써 이 여름이 다 가기 전, 감자는 동쪽 바다에도 몸을 담가 볼 수가 있었네 ㅎ
감자가 놀기에는 딱 좋을 해변이었지 모야. 진작 알았대도 올 여름은 품자가 어려, 이 멀리까지 물놀이를 나오기는 어려웠겠지만, 내년 여름을 이 섬에서 더 나게 된다면, 물놀이 바닷가로 손꼽고 싶은 곳. 그땐 품자가 감자처럼 아장아장 물 속에서 걸음마를 하고, 아빠는 감자를 쫓아다니느라 아주 바빠지겠지 ^ ^
여름은 모니모니 해도 옥수수지 ^ ^ 어느 날 하루는 집 문 앞으로 강원도 강냉이 한 박스가 배달되어 있어. 절애 오두막에서 보내온 강원도 찰옥수수 ㅎ
언젠가부턴, 집에 무슨 상자나 봉투가 배달되어 오면 감자가 먼저 달려들곤 해. 이번에는 상자를 뜯어보니, 이야아, 이게 모야아, 강냉이다, 강냉이!
먹는 건 줄은 또 어떻게 알았는지 ㅎㅎ 보자마자 먹겠다고, 입에 넣겠다고, 감자표 바디랭기지를 해오네 ㅋ
그러더니 삶아낸 강냉이 한 자루를 손에 쥐고는 신이 나서 뛰어다니며 춤을 추더란 말이지 ㅋ
하도 그 모습이 신이 나고 우스워, 여기서부터는 연사로 차르르르르 찍었던 거 ㅋ
ㅎㅎ 캠핑 때 사과를 입에 물고 그러더니, 강냉이를 손에 쥐고도 아주 필사적으로 뜯어 ㅋ
그담날 잠에서 깨어 보니 이번엔 감자가 한 상자가 문 앞에 놓여이어. 강냉이를 보내준 그 오두막 큰아빠가 보내온 감자알들.
"우와아아~~~ 감자야, 감자알들이다! ㅎㅎㅎ"
이렇게 여름 날들이 가고 있다. 아직도 폭염이 그치지를 않아, 밤이래도 집 안은 후끈후끈, 아가들이 쉽게 잠에 들질 못해, 요사이엔 날마다 밤이면 나가곤 하는 밤산책.
품자는 먼저 잠에 들고, 잠을 못이루던 감자를 안고 아빠랑 둘이서만 나갔던 구엄리 돌염전.
이렇게 밤산책을 나가다 보니, 북적이던 사람들, 번쩍이던 불빛 다 지워지고 난 원래의 풍경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 그야말로 달빛과 바람, 풀벌레소리가 그 자리를 채우는.
이날 엄마랑 아빠, 감자, 품자가 다 같이 나갔던 한담해변도 그러했네.
아직 오지 않은 가을을 맞으러, 밤마다 밤마다 이렇게 나가곤 하는 여름의 끝자락.
아! 그리고 연달아 이틀밤이나 나갔던, 시내에 확 트여 있는 탑동광장.
딴 데서는 차가 다녀서 위험, 아님 바닷가 어디에선 떨어질까 위험, 아무리 맘껏 뛰다니게 하려 해도, 늘 쫓아다녀야 했건만, 여기 탑동광장에선 자동차도 없어, 떨어질만한 낭떠러지도 없어, 맘껏 뛰어다니기에는 이만한 데가 없다 싶었다. 게다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기까지.
여길 알게 된 건 지난 번 강정평화문화제에 오면서, 이야아, 여기라면 감자랑 나와서 놀기에 정말 좋겠다! 싶던 거를, 그런데 밤에 움직이기에는 삼십 분 넘게 걸리는 데라 멀다면 멀어 그게 좀 아쉬웁던.
감자는 저 끝에서부터 쉬지도 않고, 엄마랑 품자를 돌아보지도, 단숨에 달려와.
이렇게 뛰어야 하는 거를, 펄펄 넘치는 에너지를 이렇게 써야 하는 거를, 집 안에서 하루종일 있어야 할 때가 많았으니 어땠을까 싶은.
광장에 내려놓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리다가, 숨이 좀 차면 쉬었다가, 저 혼자서 옆으로 걷기를 하다가, 그림책 오리를 흉내내던 오리걸음을 하다가, 두 팔을 뒤로 뻗고느 새처럼 날아가기를 하다가 ㅎㅎㅎ
사진을 찍어보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쉽지가 않으네 ㅠㅠ
하긴 사진 따위가 모 중요하담. 감자는 이렇게 새처럼 날고 있는데.
그 넓은 광장을, 감자를 쫓아다니다 보면 네 식구가 모두 땀에 흠뻑 젖어 집에 돌아오곤 했다. 감자도 샤워를 한 것처럼 머리칼부터 더 젖어버려, 아빠도 속옷까지 풍덩 다 젖어버려 ㅎ
집에서 조금만 가까우면 좋으련만. 그래도 탁 트인 마당이 좋고, 바람이 좋아 밤산책으로 나가 감자하고 뛰어놀기에는 딱 좋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