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네 큰아빠가 제주에 내려올 거라는 기별은 벌써 두 주일 전. 날짜를 보니 그 며칠 전에는 낮은산 아저씨랑 새끼개 삼촌이, 그 며칠 뒤엔 기차길 식구들이 내려오기로 했는데, 그 사이에 꼭 끼어있는 거라. 날짜가 맞아 함께 얼굴 볼 수 있으면 더 좋았을까, 함께 보면 함께 보는대로 더 좋기야 하겠지만, 감자품자네 식구한테는 밀물처럼 다 같이 들이닥쳤다가 썰물처럼 싹 떠나보내는 것보다, 이렇게 그리운 이들이 도레미파 랄랄라 하는 것도 좋아!

 

 보령 사는 피네 큰아빠는 강진으로, 광주로 강연을 마치고 나서, 광주에 비행기 뜨는 공항도 있겠다, 그 참에 제주엘 다녀가기로 한 거. 제주에 사는 아저씨의 친구 병문안을 해야 할 일도 있었으니, 그렇게 동선을 잡아 먼 길을 나서.

 

 

 

 

 

 

 

 하늘이 어두워질 무렵, 피네 큰아빠는 비행기에서 내려와. 이게 얼마만이니, 지난 1월 제주에 다녀갈 때 보았으니 반 년이 다 되었구나. 아, 아니다, 용인엘 다녀온 일이 있었구나. 느닷없이 전해진 부고를 받아, 저녁 비행기로 올라가 첫 비행기로 내려오던 봄.

 

 

 피네 큰아빠는 감자의 자석 그림판을 들고 슥슥슥슥, 세상에나, 그 잠깐 사이였는데도 얼마나 멋지게 그리던지. 그런데, 으어엉 ㅠㅠ 입이 벌어져 감상을 하기가 무섭게 감자가 쇳가루를 쓸어 그림을 지워부렀어 ㅠㅠ  감자는 늘 하던 대로 거기에 그림을 그리면 깨끗하게 만들어 새 그림을 그려달라고, 또 화면 가득 그리면 지워내고 또 그려달라고 그러거든. 자석 그림판이라는 게 본디 그러고 놀으라고 만든 거기도 하고 ㅠㅠ

 

 워낙 늦은 시간 집에 닿았고, 감자품자는 잠에 들 시간. 담날 출근 부담이 없는 토요일 밤이기도 하였으니, 아무 부담없이 아빠랑 큰아빠는 막걸리병을 하나둘 쓰러뜨리기를 시작. 어떤 얘기로 시작해 굽이굽이 어디로 이야기가 흐르고, 어떻게 맴돌았는지는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그 어떤 얘기라도 좋았을 밤. 아빠랑 큰아빠는 막걸리에 오이지를 들고 마당으로 나가 별 몇 점이 반짝이던 검은 하늘을 보며 술을 마셨다. 그랬으니, 당연히! 술은 모자랐겠지 ㅋ 그리하여 바닷가 편의점을 찾아나섰고, 피네 큰아빠가 묵을 숙소에 가서 막걸리 병들을 하나둘 더 쓰러뜨려. 그 사이에 전화기 너머로 몇 사람이 더 초대되기도 하였을 거고, 아마도 몇 사람은 더 다녀갔던 것만 같은.

 

 감자품자를 낳고선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셔보기란 처음이었나 보다. 그 전을 생각하면야 그리 많이 마셨다 할 수 없겠지만은, 감자를 낳은 뒤로는 생활이 아주 달라졌으니, 그 정도로도 나로서는 가장 늦은 새벽까지, 가장 긴 술자리.

 

 

 일요일이던 이튿날, 피네 큰아빠는 강연을 다니며 돈 많이 벌었다고 ㅎ 감자 할머니 맛있는 거 사드리고 싶다고, 그리해서 감자품자네 식구와 다 같이 나선 나들이. 우리가 찾은 데는 <연꽃냉면>이라 이름붙은 마을 안에 있는 냉면집. 감자네야 한 번도 들어가보질 않았지만, 그 앞을 지나면 왠 관광객들이 그리도 북적이며 줄을 섰는지, 그래, 거기 가보자 하고 찾아나선 냉면집.

 

 

 

 

 

 

 냉면집을 나와 연못 한 바퀴를 돌자, 하고 산보를 준비하는데 감자는 냉면집 옆으로 난 조그만 올레 골목에 꽂히고 말아. 아장장 감자가 그리로 들어가니 와아아, 정말 예쁜 골목이네. 구석에 들기를 좋아하고, 골목을 좋아하는 건 모든 아가들이 다 그런 건가 보다. 아무리 꼬시려 해도 감자는 이 골목에서 나올 줄을 몰랐네. 낮은산 아저씨도, 피네 아저씨도, 만날 때마다 감자품자 동화를 얘기하는데, 이 골목은 피네 아저씨가 꼽은 감자품자 이야기의 첫 장면 ㅋ

 

 

 다들 감자, 감자! 감자에 빠져 감자빠 커밍아웃을 줄지을 때부터 피네 큰아빠는 나는 감자보다 품자야! 라며 감자보단품자! 를 선언한지 오래였다 ㅋ 냉면집을 나와 연못 나들이를 하면서, 언제나처럼 감자는 신이 났고, 새가 되어 나무다리 위를 뛰어다니거나, 어쩌다 스치는 형아, 누나들에게 정신이 팔려 그리로 쫓아다니고, 물잠자리에 눈이 동그래져 잠자리를 쫓는동안, 품자는 유모차에 누워 가만히, 가만히. 연못을 지나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순한 잠을 자거나, 눈맞춰주는 게 좋아 웃거나 하면서 우주최강순둥이의 포쓰를 ㅎ   

 

 

 

 

 집에 들어오자마자 감자는 자석칠판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감자가 설마 피네 큰아빠가 화가라는 걸 알고 그랬을까. 그러거나말거나 감자는 자석펜을 들고 얼마나 진지하던지 ㅋ  

 

 

 

 

 

 

 아무리 최강순둥품자라지만, 감자 그림 그리는 것만 보느라 너무 오래 눕혀놓기만 했어 ㅜㅜ 품자를 안아 범보의자에 앉혔더니, 감자는 자기가 끌어주겠대. 어느 새 형아가 다 되어버린 스무달 짜리 감자.

 

 

 지난 여름에만 해도 저 의자에 앉아, 엄마아빠가 끈을 묶어 끌어주면 좋아라 바동거리던 아기 감자였는데  

 

 

 그런데 이제는 아빠가 삽을 들고 나서면 놓치질 않고 따라나서고 있어 ㅋ

 

 

 다음 날은 출근이어서, 긴밤술을 하는 게 겁이 나던 터라, 그렇다고 그걸 건너뛸 수야 있나. 해가 저물기 전부터 조금 일찍 시작해. 고맙게도 아가들은 일찍 잠에 들어주었고, 그래서 달래하고도 한 자리엘 앉아있을 수가 있던.  

 

 

 사흘째 되던 날엔 따로 기약이 없었다. 아빠는 출근을 해야 했고, 큰아빠는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다 하였으니. 그렇다고 어디 그럴 수가 있나. 제주의 장맛비는 장대처럼 쏟아져내렸고, 일터 현장도 더 돌아가지가 않아, 점심시간이 되어 다시 만났네. 얼굴보고 사흘 쯤 되고 나니까 마음에 힘든 아빠 얘기를 비로소 내놓을 수가 있었어. 그렇게 사흘을 함께.

 

 그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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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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