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보고 좋아할 줄을 알다니, 지깟 게 바다가 몬 줄 알기나 하냔 말이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감자는 바다에 반응을 했다. 그것도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바다를 볼 때마다, 바다 앞을 지날 때마다, 입을 쫙 벌려, 한참토록 다물지를 못하고는, 어쩔 줄을 몰라해. 심지어는 <<구리와구라의 헤엄치기>> 그림책에서 바다 그림이 나올 때도, 어느 날 할머니 방 텔레비전에서 송혜교, 송중기가 나오는 수목드라마에 바다가 잠깐 비추어질 때도, 감자는 이런 얼굴을 짓곤 했다. 아직 말이 터지지 않아 '바다'란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음! 음! 음!" 하면서, 흥분한 얼굴로 입을 함박 벌려 다물지 못한 채 좋아라 하면서.
반찬거리를 사러 잠깐 하귀 하나로마트에 다녀오는 길. 좀처럼 바깥 바람을 쏘이지 못하는 달래와 감자를 위해, 부러 해안도로 쪽으로 해서 집으로 가자하던 길. 이사한 집이 일주도로 쪽에 있으니, 사람들이 좋아라 하는 애월 해안도로가 바로 지척이라, 길을 살짝 틀기만 하면 펼쳐지는 바다를 볼 수 있어. 게다가 거기엔 부담없이 잠시 들러갈 수 있는 전망좋은 편의점이 있기도. 그래, 그 편의점에 잠깐 들러 바다를 보고 가자.
차에서 안고 내리니 아직 감자는 여기가 어딘지, 저 앞에 모가 펼쳐져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가
으아아, 저게 모지?
어어어, 저게 모야?
그러다간 펼쳐진 바다를 보곤,
입이 벌어져 다물질 못하네.
이야아, 바다다!
이렇게나 좋아할 줄이야.
그러더니 감자는 어서 그리로 가쟤.
저 멀리에 펼쳐진 바다를 보면서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그 편의점에서 바다를 내다보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바닷가로 내려가자. 모래밭이 있는 바다로 가자, 하곤 다시 감자를 안아 차에 태우고 한담 해변으로 좀 더 나아갔다. 바다 앞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연신 손가락질을, 저리로 가자고, 바다를 데려다 달라고, 난간에 매달리는 모습에, 잠깐이라도 그 아래로 내려가야만 할 것 같았다. 바로 눈 앞에서 하얀 거품 파도가 쓸려오는 걸 보여주고 싶어, 밀려왔다 쓸려가는 바닷물살의 그 소리도, 물방울 섞여 불어오는 그 바람도.
집에서 가장 가까운 모래밭이 있는 곳. 손바닥만큼이지만, 감자에게는 여느 대륙의 끝에라도 서는 기분일 것만 같은.
철썩이는 바다, 바로 그 앞에 내려놓으니, 처음에는 여기가 어딘가, 저게 몬가 하고 살피는듯 하다가.
이내 입이 함박 벌어지면서, 이야아아아, 바다다.
감자는 바다도 좋지만, 당장 발 밑에 밟히는 모래밭이 또한 신기해.
당장 손에 잡히는 그것 ^ ^
이내 감자는 불러도 들리지 않는, 혼자만의 세계에 몰입해버렸다 ㅜㅜ
모래 주무르기에,
모래 흩뿌리기에,
에라 모르겠다, 아예 그 위에 엎어지고 뒹굴고.
감자야, 그만 가자. 반찬 사러 간 애들이 왜 안 들어오나, 할머니 기다리시겠다.
들어 안기만 하면 내려달라고 으아앙! 몇 번이나 다시 내려놓고 놀아라, 기다려주고 그랬는지를 모르겠네.
실컷 놀았어. 감자야, 이제 가자.
내려조, 내려달라구!
품자에게도 바다를 보여줘.
어느 새 감자는 저만치 달아났네 ㅎ
싫어, 안 간다구. 여기에서 놀 거라구!
울어도 어쩔 수 없다. 손잡고 걷는 건 도무지 안되겠어서, 들쳐 안고 차 있는 데까지 오긴 했는데,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바다 쪽으로 바로 달려나가네 ㅎㅎ
억지로 차에 태우고 돌아오려니 얼마나 미안하던지. 하지만 차에 타기 싫다고 몸을 비틀어 울어대던 감자는, 금세 곯아떨어지고 말아. 실컷 놀았다니까
^ ^
숨는다, 는 건 어찌 알았을까. 그리고 찾는다, 는 건 또 어찌 알았을까. 할머니가 "꼭꼭 숨어라, 감자 어디이있니?" 하고 찾으러 나오는 시늉을 하면, 감자는 아장장장장 잰걸음으로 어디론가 숨어 들어. 숨을 곳을 찾아 뛰어갈 때는 아주 필사적인 얼굴, 그리고 그 어딘가에 숨어있을 때에는 조마조마 긴장가득, 숨죽인 얼굴을 하고서.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감자가 숨는 자리는 날마다 업그레이드가 되고 있어. 어떻게 저기 숨을 생각을 다했을까 싶은, 그런 곳들을 찾아.
이번엔 빨랫대 밑에 납작 엎드려.
방 문 뒤에 숨어서 할머니가 찾게 될까봐 조마조마 ㅋ
감자, 여기 숨었나아?
에구, 들켰다 ㅠㅠ
아기침대랑 서랍장 사이, 이번엔 여기.
이번엔 저 종이상자와 소파 사이, 그 틈으로 쪼그리고 들어가 ㅎㅎ
내일은 또 어느 구석에 가 숨으려는지. 요즘 집 안에서는 감자가 제일 좋아하는 숨바꼭질 놀이 ^ ^
그 다음 날이었다. 제주 날씨는 정말 얼마나 변화가 무쌍한지, 이 날은 햇살이 좋으면서도 바람은 엄청나게 불어대었어. 그랬으니 바닷물 빛은 무지하게 예쁘면서, 게다가 저 먼 데서부터 거센 파토의 하얀 거품들이 온갖 모양을 만들어내어. 파도가 아니라 마치 눈사태라도 난 것처럼.
그래서 다시 한 번 그 길엘 나갔다. 감자에게 보여주고 싶어, 감자가 이걸 보면 또 얼마나 놀라워할까. 게다가 우리가 사진기를 하나 살까, 그런데 어떤 걸 골라야할지 모르겠다며 고민하고 있었더니, 라다 이모야가 안 쓰는 사진기가 하나 더 있다며 그걸 그냥 우리에게 주었거든. 그래서 사진기 개시도 할 겸, 나가보자! 하고 나갔던 길.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게다가 파도는 얼마나 높고 거센지. 비가 오지 않는데도 와이커를 움직여 차창을 닦아야 했다. 파도 물거품이 자동차길까지 뿌려대어. 그랬으니 달래 감자는 차에서 내릴 수가 없어. 그냥 차 안에서 내다보기만.
창을 내리면 바람 때문에 눈을 뜨기가 어려울 정도였지만, 그래도 감자는 피하질 않아. 손가락으론 계속 바다를 가리키면서 금세 흥분이 되어 좋아하는 얼굴.
어머나, 오늘은 바다에 무슨 일이 있는 거지?
감자는 바다가 좋았다.
어차피 차에서 내리지 못할 거, 최대한 가까이 가보자 하고 등대가 있는 쪽으로 내려가.
으아아, 바다가 달라졌어!
바람에 눈이 감기면서도, 감자는 자꾸만 무언가 말을 하고만 싶어. 아빠, 바다가 화난 거야?
아니, 화가 나서가 아니라 바다가 오늘은 더 씩씩하게 움직이는 거야.
이 우는 듯한 얼굴은, 바다를 눈 앞에 두고도 가까이 가보지 못하는 안타까움. 내리고 싶다고, 내려달라고 울먹울먹 슬픈 얼굴을 지었지만, 정말 바람이 얼마나 세던지, 나조차도 몸을 가누기가 어려워, 똑바로 걷는데 사선으로 몸이 밀려가는 정도였다. 얼굴로 때리는 바람은 또 얼마나 아프던지. 그랬으니, 어쩔 수가 없지 모야.
감자는 넘실거리는 바다를 보았다.
제주 날씨는 참, 알 수가 없어. 다음 날은 삼일절 휴일. 그래도 아빠는 작업 현장을 둘러보아야 해서 이번엔 온 식구가 함께 아빠 일하는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 아빠 일하는 데엘 갔다가 돌아오는 길, 모처럼 남쪽까지 내려왔는데, 할머니 절에도 들르시게 할 겸, 엄마아빠가 신혼여행 때 가보았던 거기를 다같이 가보자 하고 갔던 산방산 아래. 전날만 해도 파도가 요동을 치고 그러더니, 이날 바다는 아주 망망하게 펼쳐져 있기만 해. 감자는 또다시 바다를 보며 입이 벌어졌고, 감자네 식구는 엄마아빠가 신혼여행 길에 둘이서 갔던 그 카페엘, 이제는 할머니에 감자, 품자까지 다섯 식구가 되어 다시 찾아.
4년 전, 신혼여행 길에 들렀던 산방산 아래, 레이지박스.
거기엘 이젠 다섯 식구가 되어.
그때 엄마는 창가 테이블에 앉아 누군가에게 엽서를 썼고,
이번엔 감자를 안고 창가엘 앉아, 절에 가신 할머니를 기다리며 바다를 내다보아.
엄마는 커피, 감자는 케잌.
창문을 활짝 열었더니 감자는 밖으로 나오고 싶어.
여기엘 감자, 품자랑 같이 오게 될 줄은 몰랐네.
이번엔 창밖에서 아빠랑 같이 엄마를 들여다봐.
이야아, 다시 창을 열고 엄마한테로.
감자야, 여기도 바다네!
배가 고파질 시간. 여기까지 나왔는데 맛집 같은 델 검색해보자 하다가, 집에 가서 먹는 게 제일이라고, 어머님 해주시는 게 더 좋다며, 그만 돌아오려는데. 차에만 타려 하면 감자는 울어대지. 차에 타기 싫다고, 집에 가기 싫다고. 여기에서 더 놀고 싶다고,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내려달라고 ㅎ
감자가 그렇게나 바다를 좋아할 줄 몰랐다. 암만 생각해도 신기하단 말이지. 바다가 몬지 지가 몰 안다고. 그래도 바다를 보면 몬가 다른 게 느껴지는가. 끝도 없이 펼쳐지는, 빛깔이며 소리며 냄새. 그 모든 게 만들어내는 그 어떤 것.
어쨌거나 감자가 좋아하는 걸 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기쁘다. 지가 몰 알건 말건, 훗날 기억을 하건 못하건, 어쨌거나 그토록 좋아하니까. 나중에 우리가 영월로 돌아가면은, 그땐 바다가 보고싶어도 쉽게 볼 수 없을 텐데. 여기에선 십 분만 나가도, 그 좋다는 바다가 펼쳐지니, 감잔 참 좋겠네. 있는 동안이라도 질리도록 봐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