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에 체인까지 감았건만 중엄리에서 차를 버렸다. 도무지 운전을 해서 나갈 자신이 없어. 일단 시내 기까이라도 나가보자 하고 버스정거장으로 나가 기다리고 있자니, 웬 버스 한 대.시내까지 갑니다아, 무료입니다아아 하고 외치는 기사님 소리. 버스 창에는 비상수송차량이라 쓰여 있어. 이미 출근시간은 한참을 지났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휴우, 이렇게라도. 버스 안 여기저기에서 이런 눈은 처음이라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이 섬 할아버지들이.
출근 팔일 째 아침, 일주도로 위 긴급수송버스 안에서.
연동 한라병원 앞까지 타고온 비상수송버스.
버스가 지나간 그 길.
그리고 이건 눈보라가 휘몰아대던 일요일 오후, 말랴는 어떻게 잘 있는지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집에 가스도 떨어져버렸다지. 가스배달이 안 되는 건 물론. 바닥 난방도 없이 화목난로만으로 겨울을 보내고 있는데, 가스까지 그렇다니 ㅜㅜ 등산용 버너도 있고, 전기포트가 있어 간단하게 물은 끓일 수 있다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어 잠시 말랴네 집엘 다녀왔다. 마침 엄마가 끓여놓은 배춧국이 있어, 그거라도 가져다 주자 하며.
감자네는 하가리, 말랴네는 상가리. 여느 때 같으면 차로 오분도 걸리지 않을 길이건만, 그 눈길 위를 이십 분 가까이 비틀비틀. 바퀴가 푹푹 빠지는 길도 길이었지만, 연화지에서 더럭분교 앞을 지날 땐, 거기가 바람이 다니는 길이라 그런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가. 그 길을 뚫어 말랴네를 잠깐 다녀왔다.
저기가 말랴네. 발자국 하나 없는.
깜찍하게도 눈사람이 맞이해주어.
머리엔 꽃, 눈엔 빨랫집게, 두 팔은 낫과 호미.
돌아올 생각에 커피 한 잔만을 마시고 바로 일어섰다. 좀 더 앉아있었다간 곧 어두워질 거고, 길은 더 두껍게 얼어들 테고, 그 눈보라 구간은 또 어떻게 지나야 할지.
그나마 해안에 가까운 하가리 상가리는 낫겠지. 동쪽 중산간의 승민네는 무릎까지 눈이 쌓였다던가. 승민네 또한 바닥 난방없이 화목난로만으로 추위를 나고 있는데, 아직은 견딜만 하다며 땔나무를 아끼느라 난로마저 때질 않고 있다 하네. 부식은 아직 떨어지지 않아 다행이라며. 어디 동쪽의 중산간만 그럴까, 감자네가 살던 서쪽 중산간인 소길도 아주 고립일 것이다. 보금자리없이 여기저기 떠도는 들짐승, 길짐승 그 애들은 다들 어쩌고 있으려는지. 새벽에 깨어 담배 한 개피를 태우러 문 밖엘 나가보았더니, 우리 집 대문 밖 음식쓰레기를 모아놓은 통 앞에도 노루인지 고양이인지, 추위에 떨다 배주린 아이 발자국이 눈 속에 남아있어. 주워먹을 게 없어 그냥 돌아간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