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주의 엽서, 돌아와선 바로 답장을 써야지 하던 것이 벌써 한 달을 훌쩍 넘겼다.
더 늦지는 말아야지 하고 쓰기 시작한 엽서.
엽서라기에는 많이 크다.
올 한 해, 감자네 집에 걸려있던 철수아저씨의 판화달력.
이제 저것도 엿새 지나면 제 자리를 잃을 텐데,
재활용 페휴지로 내버리기에는,
열두 달 종이가 모두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운 작품들이라.
저 달력 뒷 장에다 엽서를 써야지, 하고는 지난 달력들을 스프링에서 하나씩 뜯어내었다.
그런 벽걸리 달력 뒷장에 엽서를 썼으니, 엽서라기에는 완전 초대형.
희주에게 보낼 것으로 고른 것은,
철수 아저씨 판화작품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난한 머루송이에게>.
그런데 달력 뒷장으로 아이에게 엽서를 써나가다 보니,
어, 조금 이상하다.
제목은 분명히 같은데,
내가 기억하는 작품이랑 달력에 있는 거랑 조금 달라.
그래서 희중에게 달력에 있는 버전말고,
맨 처음 그린, 아저씨 작품집에 있는 버전을 보여주고 싶어
따라 그리기도 했네.
그 원래 작품은 이렇다.
올 해도 정말 다 저물어가는구나.
감자와 함께 한 일 년이었고,
얼떨결에 맡은 난장이공 카페에서 보낸 반 년이었다.
어김없이 철수 아저씨는 내년도 판화달력을 보내어주셨고,
엊그제는 아저씨가 몇 해 동안 고생해서 낸
원불교의 대종경 연작판화집까지 보내어주었다.
묵직한 상자에 무어가 들어있을지 짐작은 하였지만, 바로 상자를 열지 않고 하루를 묵혔다.
얼마 전 피네 아저씨가 <강냉이>를 담아 보내온 우편 봉투를 받았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어떤 봉투나 상자는 그 겉봉에 쓴 주소와 이름 글씨가 그대로 작품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철수 아저씨가 보내온 상자도 그래서 상자 그대로 좀 더 두고 보고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