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일
대팻밥
어제에 이어 계속 쪼그려 앉은 채 마른 숫돌에 우라내기. 처음에는 교수님도 우라낸다는 것을 우리 말로 바꾸어 광택내기로 칠판에 적어줬지만, 이내 ‘우라낸다’는 말을 쓰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실제로 일하는 현장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말을 하고 있어 광택낸다는 말로는 말이 잘 통하지 않을 거라면서 말이다. 이미 작업장에서는 모두 ‘우라낸다’고만 하지 아무도 ‘광택내기’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어쨌건 이 일기를 쓰면서라도 그 두 가지 말을 같이 쓰고 있었는데 어제 뒤로는 왠지 ‘광택내기’라는 말이 그 작업의 내용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의 뒷면에 광을 내는 것은 단순히 반짝일 정도로 깨끗이 갈아낸다는 걸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작업을 통해 날을 더욱 촘촘하고 단단하게 갈아낸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글쎄, 우리 말로 바꾸어 쓴다면 뭔가 그 뜻을 살릴 수 있는 다른 말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어쨌든 쪼그려 앉아 우라내기. 숫돌이 새카매지고, 손가락에 손등까지 다 새카매지도록 날의 뒷면을 갈았다. 그러다가 날끝이 앞으로 넘어가기라도 하면 다시 날의 앞면 끄트머리를 갈고, 다시 날의 뒷면을 갈고. 정말 갈면 갈수록 닝닝하던 쇠가 반짝반짝 거울을 닮아간다. 따로 요령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더 열심히 갈고, 더 오래 갈고, 계속해서 가는 것에 비례할 뿐. 이제는 다 되었다 싶어 어제 배운대로 대팻집에 날을 끼웠다. 톡톡 토도독, 망치로 날 뒷통수를 살살 밀어 넣으며 적당한 만큼 나오게 하여 수평을 잡고, 그 위로 덧날을 끼워 또한 적당한 만큼 단단히 붙잡을 수 있게 해 주고. 그 다음 작업대 위에 얹은 나무로 가서 대패를 당겨 보았다. 끄으윽, 끄으으으으으윽. 하, 대팻밥! 잘 된 대패처럼 스으윽 사아아아악 가볍게 밀어 얇게 마려 나오는 대팻밥은 아니지만 내 대팻날 위로도 대팻밥이 나왔다. 정말 남들이 봐서는 아이고 이게 뭐야 할 정도로 엉망인 대팻밥, 대패질이었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도 왜 그렇게 기분이 좋던지. 작업장 바깥 담배 피우는 곳으로 종종 달려나가 “나도 대팻밥 나왔어요!” 하고 웃어 자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고, 참말로!)
벌써 어느 정도 말했듯 그건 대패질이 되는 거라 할 수도, 대팻밥이 나온 거라 할 수도 없는 정도였다. 대팻날 넓이의 오분의 일이나 되려나, 그 정도로 좁게, 그것도 한 자 길이만큼도 당겨지지 못하고 걸리고 마는. 대팻집에서 날을 꺼내 다시 숫돌 위에 쪼그려 앉았다. 다른 사람들도 보니 한 번 밀었다가는 다시 대팻날을 꺼내 다시 날을 갈고, 다시 우라를 냈으니까. 아아, 처음에는 다들 이런 가보다. 이제 여기에서 더 날을 갈고, 우라를 잘 내면 나도 얇게 둘둘 말리는 대팻밥을 낼 수 있겠지.
새로 받은 공구들
어제 각 조마다 작업 공구를 새로 받았다. 다섯이나 여섯 사람씩 짝을 맞춘 작업조는 모두 열 개인데 나는 마지막 10조에 들어 있다. 나랑 동갑이 셋이고, 소방관을 하다가 왔다는 형님 한 분, 그리고 그보다 위 전문 산악인이었다는 아저씨 한 분까지 그렇게 다섯. 어제는 끌 다섯 자루, 낫 두 자루, 먹통 하나, 줄자 하나를 받았으니 개인 공구로 받은 대패 다섯 개와 망치 다섯 자루, 숫돌 다섯 개, 곡자 하나를 더하면 그것이 우리 조 공구함에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오늘 톱 세 자루를 받았다. 오후 교육을 마칠 때쯤 교수님은 내일이면 전동 공구가 조마다 하나씩 나갈 거라는 말을 했다. 공구가 늘어난다. 앞으로는 정말 나무를 만지는 본격적인 일이 시작될 모양이다. 서까래에 쓸 나무를 가져와 치목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때부터는 직접 나무를 가져와야 할 테니 목도를 해야 할 거라고도 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에는 불 땐 난롯가로 옹기종기 모여 대팻날을 갈아왔는데, 이제는 조마다 작업대를 갖춰 작업장을 다시 정리했다.
대패를 잘 만든 분들은 정말로 아주 멋지게 대팻밥이 솟구치듯 날아간다. 대팻밥이라는 것도 대패를 당기는 쪽으로가 아니라 그 반대쪽으로 쭉쭉 날아 올라가는 것이다. 와아, 눈이 동그래져서 구경을 했다. 보고 있기만 하는데도 아주 시원했다. 이걸 어쩌나, 내 대패는. 대팻밥을 얇은 허리띠처럼 쭉쭉 뽑아 올리는 대패는 한 삼분의 일 정도? 그리고 그 나머지는 아직도 쪼그려 날을 갈았다, 끼워 나무를 밀어보았다, 다시 쪼그려 우라를 더 내보다가, 다시 대팻집에 조립해 보았다, 다시 망치로 톡톡 날을 꺼냈다 하면서 바빴다. 사람 기분이라는 게 이럴 때 참 내 대패도 보란듯이 대팻밥을 잘 뽑아서 시원하게 나무 위를 쭉쭉 당기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냐만, 지금은 숫돌을 적시는 물 한 양동이 더 떠올 수 밖에.
벌써 어제부터 끌날을 가는 분들, 끌날에 우라까지 내는 분들이 있지만 나는 아직 끌은 공구함에서 꺼내보지도 않았다. 교수님 말씀이 맨날 오늘까지, 오늘까지, 이번 주까지, 내일까지 했지만, 대팻날 가는 건 정말 내일 오전까지는 다 마치고 끌질에 들어갈 거라는데, 새로 공구 나눠주는 걸 봐도 그렇고 이번에는 정말인 것 같다. 끌날을 갈아본 분들이 말하길, 이제 대팻날이건 끌날이건 날 가는 데에는 도통이라도 한 것 같으니 끌날 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했다. 대패 만드는 일 비록 멋지고 근사하게 해내지는 못했지만 한 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날을 갈고 우라를 내고, 손수 대팻집의 수평 수직을 맞춰 보면서 날을 끼우기도 하고, 참 많은 걸 배운 시간이었다. 이제 그만 멋지고 근사한 대패에 대한 미련이나 욕심을 두지 말고 내일 오전에는 끌날부터 갈아야겠다. 끌은 조원 수에 맞게 다섯 자루가 나오기는 했지만 그것은 대패처럼 개인 공구가 아니다. 저마다 모양과 크기가달라 앞으로일을 해 나가면서 조원들이 공동으로 쓸 것으로 다섯 자루, 그러니자기가 갈기로 한 끌만큼은 제대로갈아놓아야 할 것이다. 오후쯤 되니 아직 대패가 바람만큼 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스갯말로 이런 소리들이 나오기도 했다. 옛말에 목수가 연장 탓하느냐 하지만 제대로 된 연장을 보는 눈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며, 처음부터 너무 되지 않은 걸 받아서 아무리 갈아도 그걸로는 될 수가 없었다.
* 필기한 것 (흐린 색깔로 쓴 것은 교수님 설명을 듣고 덧붙여 적은 내용)
끌
끌의 종류
나무자루끌, 제자루끌 - 자루 재질에 따라 이름 붙여진 것, 나무로 손잡이를 만든 것이 ‘나무자루끌’, 끌날부터 손잡이가 같은 쇠로 된 것은 ‘제자루끌’
손밀이끌, 때림끌 - 쓰임에 따라 손으로 미는 것이 ‘손밀이끌’, 망치로 때리면서 쓰는 것이 ‘때림끌’
평끌, 둥근끌 - 날 모양에 따라 끝이 반듯한 것이 ‘평끌’, 둥글게 굽은 것이 ‘둥근끌’
탁끌, 쓰기노미, 애끌(푼끌) ……조각끌 -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많다. ‘탁끌’은 탁하게 끌질을 하는 것, 쓰기노미는 일본말인데 넓고 예민하게 끌질을 할 때 쓰는 것, 애끌(푼끌)은 작은 곳에 끌질을 할 때 쓰는 것이다.
1分~ 2寸의 규격 - 무슨 말인지 몰라 물었더니 ‘1푼~2치’라 읽으며 ‘푼’과 ‘치’는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라고 한다.
[끌의 각 부분 이름에 대해 설명해주는 그림 있음]- 끌은 귀가 살아야 한다.
- 날끝과 날측면은 90°를 유지
- 자루 끝은 가락지보다 뒤로 더 나와야 한다.
함께 교육받는 분들과 지내는 것도 하루하루 적응이 빨라간다. 우리 방 사람들은 전체 방 가운데에서 아마 가장 얌전한 편이지 않나 싶다. 처음 볼 때는 조금 우락부락해 보이던 부산에서 온 형님은 모습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순둥이 같고 착하시다. 우리 방 막내이면서 26기 전체에서 막내이기도 한 어린 친구는 몸집도 작고 곱상하게 생겼는데 소리도 없이 일을 아주 잘한다. 도끼로 장작패는 건 아마 지금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잘하지 않나 싶다. (이 친구도 순둥이 중에 순둥이.) 그리고 나하고 동갑인 요가 강사를 했다던 이는 여기저기에서 ‘도사’라고 불리면서 저녁 시간이면 요가를 가르쳐주러 다니기도 하고, 차를 우려내 차마시는 자리를 만든다. 다들 먼저 잠이 들었다. 나도 이제 이불 속으로 들어가야지. 잘 자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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