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복종
점심시간, 숙소 식당에서 줄을 서 밥을 기다리고 있을 때 텔레비전 뉴스가 나오는 걸 보았다. 한미 FTA 협상 타결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아나운서의 말, 줄을 서 식판과 수저를 챙기고 있을 무렵 아나운서의 뉴스보다 더 빠른 속보 알림 글씨가 화면 윗줄에 떴다. 되었다고, 민중의 삶을 자본의 용광로 속으로 집어넣는 일 결정하고 말았다고……. 택시 운전을 하던 아저씨 한 분 그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온몸으로 가난하고 서러운 이들의 삶을 지키고자 하는 촛불이 되었다. 잿덩이가 된 채 그 뜨거운 입을 움직여 FTA 반대를 말하는 동영상을 보았다 이 협상 체결에 불복종 운동을 펼칠 거라는 어느 진보 정당의 성명을 담은 기사를 보았다. 나 과연 그 불복종이란 것을 할 자신이 있는가? 불복종을 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내 삶으로 그 불복종을 살아갈 자신이 있는지…… 불복종, 이라 하는 그것이 복종함으로써 누리던 모든 것들을 떨쳐버릴 때 그 자리에서 설 수 있는 것이라면, 나 지금 복종함으로써 누려온 것들 또한 얼마나 많은가. 한 번에 다 떨쳐버릴 수 없다는 것 잘 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또 한 가지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나, 과연 그러한 준비 되어 있는지……. 그것뿐이다. 아마 FTA 범국본 홈페이지나 예전 즐겨 찾던 대안 언론 싸이트를 들어가면 그와 관련한 여러 가지 소식과 자료,분석과 논평 따위를 찾아볼 수 있겠지만, 솔직히 이곳에 있으면서 그러할만한 시간이나 상황이 되지를 않는다. 그저……. 아마도 나는 더 가난해지겠지. 허나 내가 바라는 가난은 내가 선택해 자유롭고 싶은 것이지 그들에게 빼앗기고 목 졸리는 그것은 결코 아니다. 국회 비준이라는 절차가 남기는 한다는데, 그렇게라도 해서 되돌릴 수 있기는 한 것인지……. 사실 당리당략에 따른 줄다리기 아닌 이상 행정부에서 통과한 안이 국회 의결 과정에서 거부된 바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만은.
그 어느 분의 분신 모습을 보면서 그 분께 무척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이 몇 자를 쓰는 것도 그 마음에서 시작. 하지만 더, 더, 더 깊이 생각해보다 보니 나는 미안해할 것이 너무 많다. 우선은 그 어느 무엇보다도 내 삶과 내 땀, 내 미래에 대해 미안하고, 목숨이 아니어서 아파하지도 못한 채 자본의 톱니바퀴에 끼어 죽어가는 무수한 것들에 미안했다. 그저 풀꽃처럼, 산새처럼, 들짐승처럼 살아야 옳겠지만,그렇게 존재할 수 없는 나는…….
아니, 다시. 이렇게 비관 혹은 자학적으로 자꾸만 빠져드는 것에 대해 비판도 참으로 많이 받았으니. 그 비판 또한 옳아. 그러니 다시,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괴로워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할 수 있는 모습을 찾아가는 것,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 먼저일 테니. 불복종하겠다는 말은 단순히 그 어떠한 제도나 체제에 저항하겠다는 것만은 아닌 것, 불복종한다는 것은 독립한다는 것, 자립한다는 것, 끝내 그 어떤 제도나 체제의 이익과 불이익을 모두 떠나 나 스스로의 책임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것……. 어렵다. 실은 오늘 저녁 같은 방 형님하고 나가 술 한 잔을 하고 왔지. 얼굴은 임꺽정, 덩치는 변강쇠 우락부락겉모습에마음씨만큼은 순둥이인 같은 방 형이 오후부터무슨 일인지 몹시도 속이 상해하고 있어 술 한 잔 받아주러 나갔다 왔다. 이곳은 술 마시고 학교 들어오면 무조건 잘린다 하지만 설마 학교장이 이 블로그까지 들여다보지는 않겠지. 모르겠다. 술 한 잔 마시고 들어와 컴퓨터를 여니 맨 첫 단락, 아까 점심시간에 끄적이던 글이 있네. 거기에 이어 어지러이 이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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