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봄볕에 개나리 노랗게 반짝였다. 그리고 앵두나무 분홍 꽃들. 조탑에 가 할아버지를 만났다. 언제나 집 앞에 닿으면 마음이 콩닥콩닥, 잘못 온 건 아닌지, 불편하게 해 드리는 건 아닌지. 그냥 조용히 문을 열었다. 그러니 잠시 뒤 안에서도 방문이 열려. 기범이 왔구나, 방으로 들어와. ……들고 간 딸기를 씻어 먹으려 문 바깥 댓돌가로 나와 앉았다. 다시 지는 봄볕, 개나리, 앵두꽃. 사잇골 집 지어 가는 얘기에 빼떼기 그림 얘기, 스무 돌 된기차길옆 식구들 공연 얘기, 병수 아저씨 펭귄 얘기, 그리고 목수학교 다니는 얘기들 들려드려야지 했는데 그럴 수가 없어. 할아버지가 많이 아파요. 한 눈에도 전보다 더 마르고 힘이 없어 보여.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가사흘 전에야 돌아왔대요. 병원에서 열 하루를 계셨다지요. 전에는 몰랐는데 할아버지는 소변 주머니를 늘 달고 계셨던 거예요. 지금까지는 작은 주머니여서 바지 안으로 감춘 것인데 이번에 큰 주머니로 바꿔 그럴 수도 없어 바깥으로 내 놓고 있던거죠. 콩팥이 터져 피가 나오면서 소변 호스가 막혔던 거래요. 그래 갑자기 호흡 곤란이 왔고, 잘못하면…… 마을 사람이 보고 구급차를 불러 대구에 있는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지요. 아무도 없이, 얼마나 아팠을까, 아무도 없이, 하마터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제는 할아버지한테 가리지 않고 그냥 얘기를 해요. 그 때 마을 사람이 알지 못했으면 어쩌실 뻔 했어요, 나 여기 와 할아버지 곁에 지내야지 했어요, 갑자기 아플 때는, 그럴 때는……. 할아버지 곁에서 심부름도 하고, 할아버지 이야기 받아적는 거… 그런 얘기들을 말끝을 흐리며 주거니 받거니.어느덧 할아버지도 그런 얘기를 불편해하지 않아.그만 일어나 나올 때 또 올 거라고 했더니, 그러라고 하시네. 그런 말씀 십 년만에 처음, 언제나 오지 말아라 하시기만 했는데, 이제는 올 때 딸기 같은 거 사 오지 말고 미리 전화해 뭐 필요한 거 있는지 얘기듣고 갖다 달라고. 네, 그럴게요. 앞으로 한 달에 두어 번 그렇게 할아버지를 찾아 뵙기로 했다. 할아버지와 봄볕 아래 함께앉아 너무너무 좋았는데, 이제 편안하게 마음으로 받아주시는 거 같아 정말 좋았는데, 그런데 할아버지가 많이 아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내 몸에 있는 콩팥 하나 드릴 수 있을까, 그걸 받으려면 수술을 해야 할 텐데 몸에 기운이 없어 그리할 수도 없잖아.응, 전화 드리고 올게요. 너무 많이는 아프지 마요, 평화롭고 따뜻한 기운만 담아 찾아뵐 게요. 바람이 차졌어요, 얼른올라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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