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제 모임이 있었다. 워낙에 사십구 일이 되는 날은 7월 4일이었지만 하루를 당겨 3일 저녁 할아버지 살던 집 마당에 모였다. 마침 그 날 안동법원에서 유언장 공증을 위해 세 분의 유언집행인들과 유족, 마을 분들을 불러 모두 모여야 했고, 그래서 그렇게 모인 자리에서 빈소를 걷고 집 앞 분향을 하는 인사로는 마지막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대팻밥, 톱밥을 대충 털어내고 안동으로 달려갔다. 신호를 많이 어기고 갔는데도 모임 시작 시간인 여섯 시 삼십 분이 다 되어서야 겨우 들어갔다. 그 구불구불한 태백, 현동, 봉화를 지나는 길에서도 백 킬로, 조금 길이 곧다 싶으면 그보다 일이십 킬로를 더 밟아 달렸다. 어이없게도 나는 그랬다.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린다면서 속도를 찢으며, 독한 기름 연기를 뿜으며 그곳으로 달렸다. 그렇게도 하지 말라 하시던 그것을……. 하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5월 17일, 18일, 19일 장례를 치르던 그 때는 전국에서 얼마나 많은 승용차들이 조탑으로 모여 들었었나. 집 앞으로 들어오는 승용차에 그토록 몸 아파 하시던 분의 죽음이 끝내 그 많은 자동차들을 부르는 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그 날 모임의 사회를 보기로 해 더듬더듬 순서를 일러 말을 하기는 했지만,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눈을 감고 있는 동안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는 듯 울리는 듯, 집 뒤 편에서는 누군가의 울음인 듯한 해금 소리가 들렸고, 어디에선가 새소리가 가득 지저귀었다. 유가족을 대표해 나이 어린 막내 조카가 나와 이야기를 했다. 큰아버지가 이렇게 훌륭한 분인지도 잘 몰랐어요…… 지난 장례를 마치고 돌아간 뒤 큰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자동차도 꼭 필요한 때 아니면 안 타려고 하고 있고, 일을 할 때도 큰아버지 말씀 생각하며 그리 하려 하고 있어요…… 맑은 얼굴로 아주 소탈하고 진솔하게 얘기하던 조카 분의 이야기가 가슴에 남아.
집 앞 댓돌에 마련한 분향소를 거뒀다. 할아버지, 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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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어린이도서연구회 게시판에 엉겅퀴 님이 올린 그 날 모습을 담은 사진과 글. 원문보기)
6710 권정생 선생 사십구제 다녀왔습니다 엉겅퀴 2007.07.05. 88
7월 3일, 저녁 안동 일직면 조탑리 권정생 선생 집 앞에서사십구제가 있었습니다.
선생이 즐겨 앉던 빨래판과 작은 책상은 집 한쪽 옆으로 치워져 있고
선생이 어린 새를 위해 새의 마음으로 아기자기 정성들여 만들어 놓은 새집에
올해는 깃들은 새가 없이 비어있습니다.
정호경 신부
박연철 변호사
최완택 목사
권정생 선생의 대리인 세 분과 장례준비위원회 분들...
유족들과 동네 어르신들 어린이문학 관련 단체 사람들...
집 안마당과 길목에 사람들이 모여 선생을 보내는 마지막 의식을 갖습니다.
장례식과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한 보고와앞으로 할일들을 간략하게 이야기합니다.
권정생 선생 가신지 사십구일이 되는 날은 7월 4일입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선생을 기리며 참배를 하던 집앞 분향소는 오늘로 정리를 합니다.
식을 마치고 자리를 옮겨 저녁을 먹고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리인과 유족들 장례를 담당한 분들이 그간 논의하고 결정한 것에 따르면...선생의 집은 그대로 보존하기로 합니다.구체적인 방법들은 앞으로 더 의논을 하면서 밝혀갈 것이랍니다.
앞으로 선생의 재산을 관리하고 선생의 유언에 맞게 운용하며자료와 작품발간 등 필요한 사업을 펼치기위해 재단법인을 설립할 예정이랍니다.
선생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여러 다양한 의견들을 귀담아 들으며 천천히 일을 진행해 나갈 생각이랍니다.앞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서로 힘을 모아선생을 기리는 활동들이 잘 펼쳐질 수 있도록 하자는 말씀을 하십니다.
어느 어린이가 권정생 선생 분향소에 만들어 놓은 그림판
- 영결식(5월 20일) 모습을 담은 사진글의 게시물은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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