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메이데이

냉이로그 2008. 4. 30. 23:20


4월 30일 그리고 5월 1일. 나는 방 안에 앉아 툇문을 열어 엊그제 양양읍에 나갔다 우연히 눈에 띈 책방에 들어가 집어 들고 온 책이나 읽고 있었다. 맞은편 바람벽에 등을 기대어 앉으면 툇문을 열어 네모낳게열려 있는그것은 마치 무슨 그림을 담은 액자인 것만 같아. 그 액자 안의 그림은 날마다 달라지지, 날마다 뿐 아니라 시시각각 달라져. 철쭉이 붉고 그 뒤로 감자를 놓은 골이 보이고, 더 멀리로 하늘에 닿을 듯 키가 큰 소나무가 보여. 나비와 벌 말고도 어떠어떠한 이름의 날벌레들 그 사이로 지나다니는.

메이데이

일부러 기억하려 해서는 아닌데 문득 오늘내일 날짜에 무언가 이상해, 궁금해, 알고 싶어져. 메이데이, 그렇담 한 번씩 훑어 지나는 어느 게시판이나 이러저러한 단체에서 보내오는 메일들에서 그 소식을 들어도 벌써 들었을 터인데 어떤 이야기도 들은 기억이 나질 않아. 그냥 다 지나치고 지우고 해서 그런 것인지. 올 해의 광장은 어디인지, 그 광장은 어떻게 준비되어 어떤 알맹이를 담을 것인지 인터넷에 물어 찾아보았다. 신기한 세상은 신기한 세상이야. 이 산자락 아래에서도 컴퓨터에 전원만 넣으면 세상 돌아다니는 소식들 원하는만큼 기웃거릴 수 있으니. 이랜드 조합원들, 기륭전자 분회원들이 싸우고 있는 소식들을보았다. 그리고 올 메이데이 광장의 일정들도.

바리케이트

언젠가부터더는 광장의 정치가 아니라 삶의 정치,거리의 함성이 아니라 생활의 실천으로바꿔내는 것이 무엇보다중요하다 생각했다. 짱돌을 들어 바리케이트를 깨고 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지배가 닿지 않는 자급과 자치의 바리케이트를 세워 외려 우리 스스로 삶의 바리케이트로 그들의 지배가 닿지 않는 뿌리를 내리는 것에서야말로다른 세상을 일구어 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그러면서도 자꾸만 광장에 눈이 돌려지는 까닭은 무엇인지. 자꾸만 어떤 부채의식이 느껴지고, 무엇인가를하지 않아 놓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 무엇인지…….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랬던 것처럼 자꾸만 기웃거린다. 광장의 찌라시들을, 광장의 기록들을,그곳 현장을 담은 동영상과 사진, 목소리들을. 보면 볼수록 무언가가 자꾸만 해명되지 않아 괴롭기도 해. 애써 나를 합리화하면서 모른 척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 그게 아니라한들 그렇담 무얼 얼마나 할 수 있겠는지…….

광장의 정치

광장의 정치, 거리 투쟁에 갇혀서는결코 그 어느 것도 이룰 수 없다는것에는 지금도 달리 생각하지 않는다.우리가 바라는삶의 모습과 내용을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살아내는 것에그 바탕이 있을 거라는 것 또한 비로소 마음의 울림으로 깨닫고 있다. 하지만 혹시 나는 이것에새로이 눈을 뜨게 되면서 광장의 정치와 거리 투쟁에 대해 너무도 쉽게 정리해 버리려 하지는 않았는지. 문제는 광장과 거리, 함성과 짱돌에만 의존해 세상을 바꿀 수있을 거라 잘못 밴 관성에 있던 것이지 그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는 결코 없다. 반성해야 할 것은 삶의 내용을 재구성하고자 하지는 않은 채 눈앞의 억압과 불평등에만 소리 높였던 것, 그것은 어느만큼 당장 이뤄낸다할지라도 그건 마치 주추 없이 기둥을 세워 집을 짓는 것처럼 금세라도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거였다. 민주라는 가치를 세우기 위해 싸워왔다는이들이끝내 또다른 기득권이 되어 지배구조 안으로 편입되어 가는 것은 바로 그것을 반증해주는 일.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욕망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억압에 대한 싸움조차 어느 새 기득권을 좇는 싸움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욕망 체계를 바꿔야 해, 소비와 축적을 넘어 생산과 조화라는 새로운 가치를 기쁘게 느낄 수 있어야해,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로 삶의 내용을 바꾼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그 과정은 오로지 기쁨이어야하고, 즐거운 보람, 행복, 감사함, 떳떳함, 뿌듯함들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광장의 정치,거리 투쟁이 의미 없어지는 것은 아닐진대,나도 모르게 나는 쉽게 한 쪽으로만 기울이려 했는지 몰라. 자칫 한계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그것 자체를 부정하는 오류로 나아가곤했던 것처럼. 아니야. 지난한 동안 광장의 정치가 바탕을 잃어허약하고 낡은 움직임으로 힘을 쓰지 못했다면 삶을 바꾸는 것으로 그 바탕을 갈고 다져 뿌리를 내리고 그 힘 위에서 광장의 함성이, 거리의 짱돌이 잎과 가지가 될 수 있도록.

잃어버린 이십 년

잃어버린 이십 년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돌곤 했지. 잃어버린 이십 년이라는 말, 뼈아픈 말이긴 하지만 나는 그 말에또다른 의미에서 어느만큼동의한다. 비정규직을 외면하는 조합이라면 지난 날 아무리 치열한 투쟁으로 이뤄낸 것이라 할지라도 더는 '민주'노조가 아니다. 적어도 같은 사업장, 같은 직종의 또다른 동료들이 받는 억압 앞에서 내 것을 나눠 함께 하려 하지 않는 조직, 운동이라면 민주노조라는 과거의 영광된 이름을 스스로 버려야 한다. 설사 지금 가진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더 약한 이웃, 더 억압받는 동료의 자리로 내려설 수 있을 때 비로소 그것에 민주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신영복 선생이 연대라는 것을 가리켜 '입장의 동일함'이라 쓴 붓글씨는 온 데에서 볼 수 있지만팔백 만에 가까운 비정규직 노동자들 앞에서 그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팔십칠 년 그토록 치열하게 싸워 얻은 민주노조의 깃발이 어느덧 비정규직을 외면, 그들을 딛고 선 또다른 기득권이 되어온 시간이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이십 년인지 몰라.

이랜드, 기륭, 비정규직

이랜드 아줌마들, 기륭전자 조합원들, 그리고 곳곳에서 비정규직의 설움을 안고 싸우는 분들 모두 힘 내세요. 여기 멀리 산자락 촌 구석에서도 함께 합니다. 자본을 넘는 인간의 삶을 그리며.

* 지난 설을 앞 두고 기륭전자분회 관련해서 썼던 글 - [바끼통] 기륭전자분회 (2008. 2. 4) /냉이

인디 메이데이

메이데이 관련 글들을 찾아 읽다 진보신당 게시판에 어느 당원이 퍼 놓은 '인디 메이데이'라는 경향신문 칼럼을 봤다. 이러한글을 다른 나라 사례를 소개하는 칼럼이 아니라 우리의 기획안이나 제안서로 볼 수 있다면 훨씬 좋을 텐데 하는 생각, 동시에 결국 운동은 진화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가장 아픈 자리, 모순과 질곡의 끄트머리에서 운동은 다시 일어설 것이니.

[여적]인디 메이데이 (경향신문 2008-04-29 18:30 / 유병선 논설위원)


묘비에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새겼지만,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의 94년 인생이 결코 우물쭈물했던 것은 아니다. 빅토리아 시대 낭만주의의 위선으로 덮였던 무대 위에 즐겁지 않은 사실, 혹은 불편한 진실을 펼쳐 보였던 그다. 그는 삐딱했다. “어떤 사람은 있는 그대로를 보고 말한다. 왜 그럴까라고. 그러나 나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꿈꾸며 말한다. 왜 안돼라고.” 그 삐딱이 기질이 연극과 세상을 바꿨다. “이성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맞춘다. 비이성적인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 한다. 그래서 모든 진보는 비이성적인 사람에게서 나온다.”


5월1일 국제 노동절(메이데이)도 비이성적인 힘의 결과물이다. 미국 무역노동자연맹이 8시간 노동 입법화 투쟁을 선언한 게 1884년 5월1일이었다. 2년 뒤 8시간 노동 입법이 거부되자 하루 10~14시간 일을 해야 했던 노동자들은 파업에 나섰다. 하지만 ‘노동 귀족’으로 변질돼 정·재계와 한 통속이던 노조 간부들은 파업에 무관심했을 뿐 아니라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8시간 노동은 배부른 노조 간부가 아니라 하루하루가 팍팍한 노동자들이 쟁취한 것이며, 이를 기념하는 것이 바로 메이데이다.


일본에선 색다른 메이데이 행사가 눈길을 끌고 있다. 비정규직과 노숙자들이 정규직 중심의 대형 노조와 별개로 빈곤과 세계화에 반대하는 ‘인디 메이데이(독립 노동절)’가 열도 전역에서 시작됐다. 비정규직과 양극화의 실상을 자유롭게 고발하고 펼쳐 보이는 이들의 행사는 활력을 잃은 주류의 노동절 행사와 대조를 이룬다고 한다. 3년 전 청년 비정규직노동조합이 물꼬를 튼 이래 주류 노조의 밖에 있는 노동자들의 인디 메이데이 행사가 ‘반빈곤 연대’를 구축하며 새롭게 ‘비이성적인 힘’을 드러내고 있다.


기념일이지만 돋아나는 아픔이 더 큰 게 우리네 메이데이 풍경이다. 노동자 셋 중 두 명꼴인 비정규직의 문제를 ‘친기업’의 요란한 구호가 뒤덮고 있다. 3년 전 민주·한국 두 노총 위원장은 비정규직 문제로 단식이라도 했지만, 올해는 그나마도 없다. 인디 메이데이의 활력도 없다. 우리 사회가 ‘이성적’이기 때문일까. 314일. 내일 노동절 아침, 이랜드의 아줌마 노동자들이 마주할 파업 일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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