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 배

냉이로그 2008. 7. 12. 03:56

백팔 배

오두막을 돌아오고부터 백팔 배를 시작했다.아침마다 눈을 뜨면 발가벗은 몸으로 풍욕을 해오고 있었으니 이제 잠에서 깨어나면 바람목욕, 잠들기 전에는백팔 배를 하는 것이다. 지난 주 서울에서 시국법회가 있을 때 광장에서 나눠준 백팔 참회문을 가지고 와 그것을 한 줄 한 줄 읽으며 절을 한다. 어젯 밤 처음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자리가 잘 잡히지 않았다. 나름 분위기라도 더 맑게 가져 보고 싶어 불을 끄고 촛불 하나만을 켜 놓으니 참회문을 읽을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불을 환하게 켜니 모기장으로 나방들은 달라 붙지요, 방 안은 어수선하지요. 게다가 지난 번 법회 때야 스님 한 분이 절 한 번을 할 때마다 참회문을 한 줄씩 읽어주어 그 소리를 들으며 절을 하기만 하면 되었는데, 혼자 하려니 참회문 읽는 것과 절하는 것을 동시에 한다는 것도 영 어색하기만 했다. 참회문 종이를 들고 읽은 다음에 그것을 옆에 내려 놓고 절을 해, 그리고는 일어나서는 다시 그것을 들고 그 다음 줄을 읽어. 뭔가 어색하고 어수선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한 이십 번, 삼십 번으로 넘어가면서부터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는 것 같았어. 그랬더니 오늘은 훨씬 나아 처음부터 자연스레 참회문을 읽은 뒤 절을 해 나갔다. 그 때 광장에서도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빠져들더니 혼자 그것을 들고 읽어 절을 하면서도 정말 그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초록샘이 요 아래 댓글에다 무아지경이라는 표현을 썼더랬나, 정말 그런 것 같아. 참회문 한 구절 한 구절과 절을 해 엎드려 방바닥에 이마가 닿을 듯 고개를 숙이는 것말고는 아무 것도 없어. 그렇게 오늘로 이틀 째 백팔 배를 했다.

가뜩이나 더운 날이니 땀이 뚝뚝뚝, 한 이십 배쯤 넘어가고부터는 절을 한 번 할 때마다 방바닥에는 물컵이라도 쏟은 것처럼 땀이 흥건하다. 손을 짚고 이마가 닿는 부분은 아주 미끄덩미끄덩 해. 등줄기로 뱃줄기로 얼마나 땀이 흐르는지 옷이 다 젖어 버려. 백팔 번을 다 하고 나면 몸은 아주 샤워를 한 것처럼 젖어 있고, 머리도 금방 물에 행구고 나온 사람처럼 젖어 있다. 고개를 숙여 절을 하니 땀이 몸 아래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머리를 다 적시는 거지.

글쎄, 여러 사람들과 밤을 지새는 시간이거나 집을 떠나 있게 될 때, 그런 때는 못 하고 건너 뛰기야 하겠지만 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 끊지 않고 이 절을 해야지 하는 마음이다. 참회문에 있는 구절 구절마다 가슴을 울리지 않는 것이 없어. 어쩌면 그 참회의 말들이 하나같이 나를 찔리게 하고 있어그런 것인지. 이것을 얼마 쯤 해 가다 보면 그 말씀들로 그것들이 내 몸과 마음에 새겨지게 될까……. 어쩌면 나는 그날의 참회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로 백팔 배를 했다면 참회가 아닌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하며 백팔 가지나 되는 바람, 욕심 따위를 빌기만했을지도.

그날 예기 님도 시청 광장에 있었나 보다. 광장에서 하던 백팔 배를 찍어 동영상으로 만들어 올린 것이 있어 반갑다 했는데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고 편집 작업이 있었나 봐. 그 때 참회문을 읽어주시던 스님의 목소리가 참 좋아, 그리고 그 스님 목소리를 틀어 놓고 있으면 그것을 들으면서 절하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한 배 한 배 절을 하는 사이들을 줄여 놓았는지 절하는 시간만큼의 쉼이 없이 바로바로 이어지기만 한다. (영상 파일 읽는 시간이 조금 걸려 기다리다가 ▶를 눌러 재생)

요즘 참 이상한 건전 모드로 살고 있다. 게다가 오늘은 속초 도서관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어 수험생이라도 된 듯이 열람실에 앉아 딴짓 없이 글쓰는 일을 시작하고 책을 보다 왔는 걸. 구내 식당은 어떻게 되어 있나 알지를 못해 오늘은 그냥 나갔지만 앞으로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려 해. 이거 완전히 범생이 모드가 되어 버렸다. 아침엔 바람목욕에 밤에는 백팔 배, 이러다가 오두막에 깃발이라도 하나 꽂고 자리 펴겠다 할지 몰라.

'냉이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끼통의 촛불 토론  (0) 2008.07.17
그날과 일주일  (0) 2008.07.14
마을 부역  (4) 2008.07.11
전화기와 고릴라  (6) 2008.07.10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5) 2008.07.09
Posted by 냉이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