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벼를 베었고, 낟알을 말려 쌀을 찧고 햅쌀로 밥을 짓는다. 깨를 털어 들기름을 받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고추를 따다 말려 고춧가루를 빻았다. 고구마를 캤고, 벌써 실하게속이 찬배추를 뽑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은 바짝 마른 콩대를 뽑아.꼭 한 달이 지나는 사이샘골 논과 냇가 밭은 그렇게 제 할 일들을 다 마쳐 빈 가슴으로 남았다.좀처럼 철을 모르던 날씨도을씨년스러운 늦가을에 들었고, 해도 많이 짧아졌다. 이제는 진전사에 올라절을 하고 나오면어두워길이 보이지를 않는다. 백여덟 번 절을마치고 법당에서 내려와 서면별 몇 개 박혀 있는 어둔 하늘과 그 아래 먹물 빛깔 검은 산 밖에 보이질 않아. 나도 모르게 피네 아저씨가 쓴 시를 절로 되뇌곤 한다.'어둔 하늘 아래 / 어둔 산 // 어둔 산 아래 / 검은 숲 // 검은 숲 속에 / 흐린 길…….' 아직 보이지 않는 저 흐린 길 끝에 집 한 채 있을까, 따뜻한 불빛 희미하게 떨리는.
불빛
- 김환영
어둔 하늘 아래
어둔 산.
어둔 산 아래
검은 숲.
검은 숲 속에
흐린 길.
흐린 길 끝에
집 한 채.
그 집 얼굴에
눈 하나.
나를 기다리는
따듯한
불빛 하나.
꼭 한 달이 지났다. 삼천 번 가까이 절을 해 오면서마룻바닥에 손을 짚고, 이마를 대고, 몸을 굽힐 때마다 오로지 그것 하나만을 마음에 그린다.사랑, 그 초라하고 헐벗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