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가는 길

두 차례 길동초등학교 등교길 교문 앞에 나갈 때는 일찍 나설 자신이 없기도 하고, 그 전날 미리 만나게 될 분들과 저녁 시간 함께 하고픈 마음으로 길동 모모 아저씨네서 잠을 자고 학교로 나가곤 했다. 그랬어도 겨우 일어나 얼굴에 물 물묻히기도 바쁘게 허겁지겁. 그런데 오늘은 미리 가 있지를 않고 아침에 나서 거여동 거원초등학교를 가겠다 생각하니 어젯밤부터 잠을 설쳐. 이놈의 올빼미는 쉬 잠이 들지도 않아. 애써 뒤척이며 잠을 잔 뒤 여섯 시부터 일어나 걸음을 서둘렀다. 거여동이라면 길동보다 전철로도 대여섯 정거장이 더 멀어. 전철역에 닿으니 간격이긴 용산행 전철이막 떠나고 있네.그래 한참을 기다려야 했는데,왕십리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려 하는데 하필이면 마천행이 아니라 상일동행이 먼저 들어온다.거기에서 또 한참. 이거 늦겠다, 늦겠다 하면서 거여역에 내리는데 아뿔싸, 기껏 학교 약도를 찾아놓고는 자세히살피지도 않고 그냥 나왔어. 다행히 이정표들이징검돌처럼 매달려 있어 학교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그렇게 해십여 분을 늦었는데또 다시 다행인 것은 아직 교문 앞에는 아무도 나와 있질않아.

선생님의 교문 수업

나중에 들어보니 교문 앞에서 박수영 선생님이 등교투쟁으로 해오고 있던 야외수업은 지난 토요일로 정리를 했다 한다. 사진으로만 보던 바깥수업 모습은 참 궁금하기도 했더랬다. 교문 앞 자리를 펴고 둘러앉아 담요를 펼쳐 무릎들을 덮고서 이야기를 나누던 선생님과 아이들. 추운 날들이지만 참으로 따스해보이던. 교문 선전전을 마치고 박수영 선생님 집으로 차를 마시러 가는 길에 물었다. 바깥에서 수업을 할 때는 어떻게 하셨는지. 둘러앉아 아이들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리고 선생님이 교실에서 쫓겨난 이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인권과 평화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그렇게 해 오던 바깥수업을 지난 토요일로 정리하고 나니 선생님은 마음에 무엇인가가 빠져나간 것도 같고, 그러한 허전함에 조금은 긴장이 풀어지는 것도 같다 한다. 교문 수업이 없으니 학부모님들도 조금씩 늦게 나오신 것 같다며.

아이들과 함께

조금 기다리고 있자니 피켓을 준비한 어머니들이 한 분 두 분 교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어제 길동초등학교 앞을 함께 갔던 윤여강 선생님(광양중학교 해직, 초등보다 이르게 졸업식을 마쳐 등교투쟁이 아니라 다른 교사분들의 학교로 지지방문을 함께 하고 계신)도 오셨다. 어머니들이 준비한 피켓들을 나누어 들고 교문을 바라보고 섰는데, 생각지 못한 곤혹스런 상황 발생. 얼굴을 알아보는 아이들이 하나둘 앞으로 모여들며 싸인을 해 달라고 늘어섰다. 실은 평소에도 나는 그런 것에 인색한 편이라 어떤 식으로든 둘러 말하거나 피하려 하는데, 공책 종이를 북북 찢어 들고 선 아이들 웅성거림에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그 자리는 내가 책을 쓴 글쓴이로서가 아니라 시민 한 사람으로 간 자리, 짧은 시간이지만 선생님을 교실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는 바람에 힘을 실어야 하는 자리인데 아이들에게는 평소 못 보던 어떤 사람이 왔다 하니 싸인 쪽으로 관심이 가 있는 것이 아닌가. 너희들 박수영 선생님 알지? 아저씨는 여기 박수영 선생님 응원하러 온 거야…. 하고 얘기를 하면서 틈틈히 주의를 환기해보려 했지만 이내 아이들은 싸인이라는 것으로만 웅성웅성. 그렇게 난감한 속에서 이름 한 자 한 자를 적어가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그럼 얘들아, 아저씨가 이거 하면은 너희는 큰 소리로 '박수영 선생님 꼭 돌아오세요!' 하고 교문에 대고 외치는 거야. 안 그러면 아저씨 이거 안 해 줄 거야." 그러고 나니 아이들도, 나도, 그 자리도 서로 민망함 없이 와글거리는 선전전이 될 수 있었다. 첫 시간 종이 칠 때까지 계속해서 몰려들어 둘러싼 아이들, 나는 삐뚤빼뚤 글씨로 아이들에게 '아저씨도 박수영 선생님을 응원하러 왔어.' 하고 싸인을 했고, 아이들은 교문 앞에 선 선생님을 바라보며 '선생님 꼭 돌아오세요!'를 잇달아 외쳤다.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게 한시간이 지났고, 아이들은 그만 교실로 들어가야 해. 그런데 아직 싸인을 못받고 기다리기만 하던 아이들이 들어가려 하지를 않네. 지각을 해도 좋다고, 받고 들어가야 한다고…. 다시 난감. 아니다, 아무래도 그건 아니다. 다시 아이들에게 설득을 했다. "아니야, 이렇게 수업에 들어가지 않으면 선생님을 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 선생님을 곤란하게 하는 거야. 그러니까 어서 들어가야지." 그 말에 아이들은 한 풀 꺾인 듯도 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가득 배인 눈빛으로 돌아설 생각을 앉는다. 이걸 어쩐다. 그렇더라도 선생님을 곤란하게 할 수는 없는 일. 그러면 아이들에게 종이만 여기에 두고 가라 했다. 종이에다 자기 이름을 써 놓으면 빼놓지 않고 다 싸인을해놓을 테니그건 내일 아침 학교에 올 때 늘 교문 앞에 나오시는 어머니에게 받아가라고. 그제서야 아이들은 종이에 제 이름들을 써 놓고 교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함께 외치는 말, 박수영 선생님 돌아오세요!

미더운 학부모님들

느즈막히 등교길 선전전을 마치고 선생님과 학부모님들 다 같이 둘러서서 앞으로 있을 졸업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 아무 것도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 측과 만나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풀 것인지. 다른 학교들의 움직임은 어떠한지. 어머님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박수영 선생님은 정말 그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을 등에 업고 있구나 싶었다. 지난 두 달을 넘는 싸움을 해오면서 어머님들은 다들 부드러운 투사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자리를 옮겨 박수영 선생님이 사는 집으로. 집에 들어서도 계속해 그러한 이야기들을 이었다. 마침 한 시간 가량 지난 뒤 학교장과 학부모님들과 면담을 약속해 놓고 있었는데 그에 대한 의논들. 솔직히 의아하기도 했다. 선생님이 아니라 학부모님들이 그 역할을 이렇게나 믿음직스럽게 하고 계시구나. 선생님이 모든 짐을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님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곁에서 함께 싸우는 거였다.학부모님들이 면담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수영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다가 점심을 함께 했다. 기대한 것보다 면담 결과는 좋지 않은 듯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직접 가서 담판을 지어야겠다며 수영 선생님이 다시 찾아가기로.

부드러운 직선

지난 번 고양이캠프 때박수영 선생님을 처음볼 때는그 겉모습이나 말하는 것에서 참으로 곱상하고 여린 분인가 보다 하는 느낌이 먼저였다. 그래서 아이들이 나더러 무슨 띠냐 물어 소띠라 대답하니 우리 선생님이랑 같다고 하는데, 나는 당연히 아아, 스물다섯 띠동갑인가 보다 하고 여기고 말았지. 그런데 그게 아니라 소띠 동갑. 그런 뒤 선생님 싸우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노라니 그 여리고 앳되어 보이는 모습 속에 얼마나 곧은 심지가 있는지 거듭 느끼게 된다. 도종환 선생의 시그리고 선생님을 지지하는 많은 학부모님들과 아이들 사이로 다정함으로 흐르는 따뜻한 힘이 얼마나 큰지 알 것 같아. 흔히 그 어떤 일 앞에서 시민사회단체나 진보정당, 활동가들이 꾸리는 대책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학부모님들의 모임을 보자니못지 않은힘이 있었어.애정과 따스함, 절실함으로 움직이는 따뜻하고 끈끈한 무엇.그런 가운데서 또한 학부모님 그 분들마다 또 다르게 거듭나고 있었고, 단순히 우리 아이의 선생님 문제에서 우리 교육의 문제, 사회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나가는 모습 또한 볼 수 있었으니, 그 모습만으로도커다란 감동이었다. 여리고도 곧은 박수영 선생님, 그리고 따뜻함으로 이뤄내는 커다란 힘의 학부모님들을 보면서 도종환 선생의 시 제목이던가 '부드러운 직선'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따뜻하고도 부드러운 직선의 힘.

아이들을 사랑한 죄

이제 내일아침에는 김윤주 선생님이 해직된 청운초등학교로, 졸업식 전날인 모레는 더작가 모임 분들과 함께 길동초등학교로 가기로 하고 있다. 나, 아이들이 읽는 글을 써서 입에 풀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을 줄세우기 점수교육에서 지켜주고자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랑해온 선생님들이 잘려나간 지금 어찌 이 일을 외면할 수 있겠나.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을 사랑한 죄밖에 없는 그이들의 곁이 되지 않는다면.

사랑노래 / 신지아

* 지난 2월 9일 마지막 교문수업을 하고 나서 박수영 선생님이 쓴 글 -마지막 수업을 하고 나서

'냉이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운초 0211] 곁이 되어  (0) 2009.02.11
또 숙제 - 해직교사들의 졸업식  (0) 2009.02.10
조직과 진영의 논리, 그리고 오빠라는 괴물  (4) 2009.02.09
숙제한 거 - 학교들  (9) 2009.02.07
학교 앞  (3) 2009.02.06
Posted by 냉이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