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자리

냉이로그 2009. 4. 30. 01:58

못자리 (2009. 4. 28)

아침 출근을 하면서 풋사과 엉아에게 전화가 왔다. 아직 나는 이불 속에서 쿨쿨. 오전 수업 마치고 조퇴하고 올 테니 한 시에 만나 같이 못자리를 하자고. 그래서 오후 한 시부터 모판을 만들어 놓은 본채 마당으로 모였다. 조퇴 맞고 달려온 풋사과 엉아와 올 해부터 아주 퇴직을 하고 농사꾼으로 돌아선 정 선생님, 그리고 대포항에서 오신 정 선생님의 후배 분과 못자리 하는 법을 가르쳐주러 나오신 마을 어르신. 볍씨 낸 것을 보고 마을 어르신이 아주 잘 되었다고, 못자리 내는 시기도 오늘이 딱 이라면서 칭찬을 하니 엉아들 얼굴이 아조 환하다. 사잇골 논농사 네 해 째, 그 동안은 모를 사다 심어왔지만 손수 볍씨 소독에서부터 발아, 모를 키워 모 심기 준비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주 마을 언니엉아들은 죄 조퇴를 맞고 모여 그 일을 해 놓더니 오늘은 못자리를 내느라 다시 모인 것이다. 그 사이에도 엉아들은 이 볍씨들이 싹을 잘 내고 있는지 궁금하여 몇 번이나 부직포를 열어 들여다보곤 했다 한다. 그러면서 날짜를 잡기로는 그 다음 날로 생각하고는 수업을 당기고 옮겨 그 다음 날 조퇴를 할 수 있게 준비들을 했다는데, 볍씨 상태를 보니 아무래도 하루를 더 기다리면 늦을 것 같아 그 아침 갑작스레 날짜를 바꾼 것이다.어르신 말씀으로도 이대로 하루를 더 넘기면 싹이 모판 흙을 들고 일어났을 거라며 아주 딱 좋은 때 못자리를 내는 거라고, 그렇게 논물에 담그고 나면 하루 사이에 뿌리를 이만큼씩은 내리게 되어 아주 잘 될 거라 했다. 아무튼 엉아들은마당에서 싹을 낸 모판들을 논으로 옮길 때부터아기를 다루기라도 하듯 아주 조심조심이었다.모판들을 트럭에 싣고 샘골로 넘어가서는 맨 아랫 다랑논에다자리를 냈다. 못자리법을 가르쳐주러 나오신 어르신을 따라물길을 내고, 줄을 띄워놓고, 그 줄을 따라서모판들을 가지런히 내려놓는다. 논에 장화가 푹푹 빠지는거야 괜찮지만 한 번묻히면 나오질 않아 걸음 떼기가 영 지랄이었지만 그래도 엉아들은 내내 환한 얼굴로 즐거워했다. 줄을 맞춰 모판을 놓아가는 것부터 비닐과 부직포 두겹으로 되어 있는 덮개를 씌우는 일까지어르신가르침을 그대로 쫓아하는아주 착한 학생들.논농사에서는 못자리 내는 일이 한 해 농사의 반이라 그러던가, 다 하고 나니까 일이 그리 힘들 것은 없었지만 때를 맞춘다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볍씨에서 싹이 얼마만큼 나왔을 때 논물로 못자리를 낼 것인지, 게다가 그건 단지 때를 잘 맞추는 것 뿐 아니라 못자리 때에 맞춰 날씨가 얼마나 도와주는가에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일까, 지난 해에도 보면 엉아들은 밭에서는 늘 일이 있었지만 논에서는 늘 담배 태울 일이 많아 보였다. 가물어 물을 대지 못할 때거나 하늘에 해가 나질 않아 모가 비실비실하거나 여물어야 할 낟알이 그렇지를 못할 때….아무튼농사일이라는건 참 놀랍기만 하다.얼마 되지 않는 이 볍씨들에서 그 많은 쌀을 거둘 수 있게 되다니,다 해야 모판 삼백 개를 내려놓았다는데 여기에서 자랄 어린 모들이오천 평 가까이 되는 일곱 다랑 가득한 벼가된다는 것이. 엉아들 곁에 사니 이런 것도 거들며 어깨 너머로 배우는구나.

오늘 낮 군의원 보궐 선거 투표를 하러 회룡리 쪽으로 나가는데 곳곳에서 못자리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보였다. 아마 요사이 자주 보곤 했을 풍경일 텐데 어제 그 일을 하고 나니 그 모습들이 남달리 들어온다. 그런데 거의 그 일을 하는 건할머니 할아버지 두 노인 분들이다. 우리야일을 가르쳐주러 오신 어르신까지 해서 다섯이었으니일을쉽게 끝낼 수 있었지만 두 노인이 하기에는 모판나르는 것부터 해서꽤나 힘이 들어보였다.덮개를 씌우는 것도 여럿이 있었기에바람이 불어도 잘 눌러가며 할 수 있었지만 두 노인이 하는 곳에서는 그 또한쉽지 않아 보였어.저녁으로 싸간 도시락찬밥 한 덩이에 김치를 놓고먹는데그 밥알 한톨 한톨이 그렇게 귀해 보일 수가 없다. 오늘 밥은 왜 그랬는지 조금 설 익어 반은 생쌀을 씹는 것 같기도 했는데 말이다.

사람 / 조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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