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3월호

냉이로그 2010. 3. 11. 19:08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면 잠깐씩 멈칫하게 된다. 요즘 들게 된 버릇인데, 사실벌써 두어 달 전부터는 전화기를 아예 꺼놓고 지내오기도 했다. 그래서 꼭 받아야 할 연락, 받았어야 할 연락마저 못 받게 되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었지만그리 지내오고 있었다.일이 있을 때마다 구차하게 사정을 설명하기란 몹시도 힘든 일이었다. 그럴 바에야 아예 꺼놓고 지내자…….어쩌다 우편물을 받아야 해서 전화기를 켜놓거나 아님미리 통화를 약속하고 있을 때, 아님 그랬다가 끄는 걸 까먹어 좀 더 켜두게 되거나 하고 있었으니 모르는 번호임에야.

걸려온 전화는 지난 번 인터뷰를 했던 참여연대의 편집기자 분. 이 달 <<참여사회>> 3월호가 나왔다면서 보낼 주소를 물으시는데, 그러면서 어느 분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어도 좋겠는지를 함께 물었다. 인터뷰가 나간 3월호를 보고 한 분이 연락을 하고 싶다며 그곳으로 번호를 물으셨다는데……. 나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아마도내 실상 이상으로무언가 그럼직하게 보여지거나 했을 뿐일 텐데.

그 전화를 받고는 홈페이지에 들어가 찾아보기는 했지만 솔직히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는 못했다.서너 단락도 채 읽기 전에 혼자 낯이 뜨거워 끝까지 읽어내리지를 못하겠으니 말이다. 무슨 얘기가 어떻게 담겼을지 걱정이 앞서 한쪽 눈을 감아 얼굴을 찡그려가며 읽어보려 해도그게 잘 안 된다.모쪼록덧칠이 되어 있지 않기를, 맥락과 다르게 땅불쑥히 옮겨져 있지만 않았기를……. 글쎄, 여태 이블로그에는내가 나간 방송이니 지면의 기사 따위를 담아놓거나 하질 못하고 있었다. 왜 그런지 민망스럽기만 하고 무언가 남사스럽기도, 얼굴이 붉어지기만 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아주 간혹 예전의 무엇을 찾아보고 싶을 때 후회가 되곤 했다. 그냥 컴퓨터 한 구석에 폴더 하나라도 만들어 쟁여놓을 걸, 아님 책꽂이 한 쪽에라도 이것저것 스크랩이라도 해서 숨겨 놓을 걸……. 그게 무어 다른 까닭이 있어서는 아니고, 그 때 그 시간들을 건너오면서 내 모습이 어떠했는지, 아님 당시 나는 무엇에 부딪쳤고 무엇으로 말해내고자 했는지 되짚어보고 싶은 때가 아주 간혹 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냥 이 인터뷰라는 것도 이리로 담아다 놓는다.


동화작가에서 평화활동가, 목수로
느리지만 깊게 그려가는 삶의 큰 획

박기범작가 / 강지나 참여사회 편집위원 (기사원문)

2003년 3월, 미국이 9·11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이라크 침공 안을 유엔 안보리에 제출하면서 전세계가 전쟁반대와 평화의 이슈로 뜨거워졌다. 한국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지지와 각종 지원을 약속했고, 국내외 극심한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파병을 감행했다. 그 후 재파병과 연장 파병 등 한국의 해외파병은 이제 일상사가 되어 더 이상 분노할 이유도 찾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2010년… 똑같은 일이 한국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올 2월 아프가니스탄 파병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를 기다리고 있고, 7월 재파병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아이티에 대한 PKO 파병안도 3월 국회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이제 전쟁이 지나친 일상사가 되어 버린 걸까? 이런 와중에 2003년 이라크 전쟁을 막기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릎 쓰고 혈혈단신으로 이라크로 향한 한국인들이 떠올랐다. 그들중 하나였던 동화작가 박기범은 인간방패활동뿐 아니라, 장애아들을 위한 지원활동,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마련, 고아원 지원활동, 동화책 나눠주기 등을 통해 전쟁의 최대 피해자인 아이들을 위한 활동들을 벌였다. 귀국해서는 전국을 돌며 전쟁반대 강연과 캠페인을 지속했으며, 50여 일간의 평화단식과 순례활동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여론을 집중시켰다. 재파병 문제가 불거지는 요즘, 박기범 작가가 했던 열정적인 단식과 순례활동, 평화운동은 지금 어떤 색깔로 채색되어져 있을까 궁금해졌다.

수줍게 웃으며 박 작가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말이 느리고 잘 못해서 인터뷰하기 어려울 거에요”였다. 말이 느려서 생긴 재미난 에피소드를 얘기해주면서 한마디 보탠다. “녹취 푸는 건 쉬우실 거에요(웃음)” 얘기를 들어보니 말이 느린 것도 있지만 말하면서 고민을 많이 하고, 말하다 중간에 ‘취소’도 잘하고, 한창 이야기하고 나서는 “모르겠어요… 할말이 없네요… 선생님(인터뷰이)이 좀 가르쳐 주세요”한다. 마치 그림을 그릴 때 여러 번 선을 그어 스케치를 하고 한 색을 입혔다가 다른 색을 덧입히고 또 덧입히면서 질감 있는 작품으로 완성해 가듯이 표현들을 조심스레 고르고 또 고르며 세심하게 살피면서 얘기한다. 그렇다고 뻔지르르한 수사가 많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덜 거창하게 자신의 삶을 표현하려고 한다. 그래서 표현할수록 점점 더 소박해져서 알몸만 남아버리는 모습이랄까? “늘 설명하는 것은 설명 못하는 것을 놓치는 거 같아서” 말해놓고 후회한 적이 많다는 박기범 작가. 아마 그가 살고 싶은 세상은 우리 일상의 오염된 말로는 영원히 다 표현해내지 못할 듯 싶었다.

말뿐이 아니다. 그가 풀어놓는 얘기들도 소박하기 그지없다. “이라크에 가게 된 건 무슨 운동이라고 생각한 게 아니라, 맨몸으로 전쟁을 막으려고 사람들이 모인다는 소식에 감동을 받았고, 떨어지는 포탄에 다친 아이들을 안아주고, 업어주고, 어디가 잘리면 들쳐 업고 뛰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사무국에 전화해서 물었어요. ‘저도 가도 돼요?’ 안 껴줄까봐~(웃음)”

이런 사람이 전쟁터에서 인간방패를 하고, 귀국해서는 전국을 돌며 강연을 하고, 피켓을 들고, 단식도 하고, 촛불도 들고, 국회의원도 만나러 다녔다. 그의 느리고 스스로 덜 떨어졌다고 표현하는 삶이 오히려 훨씬 더 커다랗고 굵은 획을 그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평화는 개념이나 이론이 아닌 감수성”

온 몸을 다해 전국을 누비며 평화활동을 했지만 정작 그가 풀어놓는 평화론은 없었다. 아이들에게 평화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는데, 그는 아이들에게 할 얘기가 없단다. 요즘은 책도 많고 정보도 넘쳐나기 때문에 강연에서 나올법한 얘기는 아이들이 더 잘 한단다. 강연을 통해 평화교육을 하려는 것은 관념 속에 젖어 있는 어른들의 생각일 뿐이지 우리 삶 가운데 놓여 있는 평화는 아니란 얘기다. 오히려 아이들과 숨바꼭질하면서 놀다가 아웅다웅 다툼이라도 벌어지면 그걸 해결하는 과정과 함께 어울리는 과정이 평화를 몸으로 느끼게 하는 방법이라고 그는 말한다.

“평화는 머릿속에 있는 어떤 개념이나 이론이 아니라 감수성이라고 생각돼요. 나 아닌 사람이나 자연물이나… 나 아닌 어떤 것에 대해서 그 처지가 되어 보는 것… 그런 연민의 마음, 사랑의 마음… 나 아닌 것이 될 수 있는 마음… 그게 바로 평화라고 할까요?”

논리로 풀어내는 평화론은 또 하나의 주입 밖에 될 수 없고 더 설득력이 있는 다른 논리가 나타나면 그쪽으로 기울어 버리기 쉽다.

박 작가는 이라크의 참상을 이라크에서 평화활동을 하는 살람 씨의 얘기로 들려주었다. 살람 씨는 자녀가 7명인, 중고타이어 장사를 하던 평범한 시민이었는데 전쟁과 미군 주둔기의 참혹함을 경험하면서 이라크에서 평화NGO를 만들어 활동하게 되었고 지금은 그 활동 때문에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지만 여전히 한국 반전평화팀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활동하고 있다. 그의 활동 중 하나는 이라크 아이들과 한국 아이들의 편지교환이었는데, 한국 아이들 편지를 이라크어로 번역해서 우체부처럼 이라크 아이들에게 직접 배달해 준단다. 편지를 통해 아이들은 그곳에도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니라, 서로 용서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얼마 전 터키에서 살람 씨를 다시 만났을 때, 미국이 조장한 내전으로 살람 씨의 친구가 죽었고, 그 분노로 종파가 다르면 자신의 친지마저 다 죽이고 싶었다던 자신의 얘기를 전하며 통곡하셨을 때, 박 작가는 전쟁기보다 미군의 주둔기가 그곳 백성들에게는 더 고통스러운 시기라는 걸 가슴 아프게 느꼈다고 한다.

지금도 그는 이라크의 폭탄테러나 폭격에 대한 기사를 접하면 7년 전, 그 거리를 오가며 구두를 닦던 아이의 생존이, 그곳 운동장에서 공차고 놀던 형제들의 안전이 걱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한없이 미안하다고…….


약한 존재들의 눈빛과 마음으로 쓰는 작품

그의 시선은 언제나 아이들에게 가 있다. 인터뷰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들이다. 동화작가라서 그럴까? 싶었는데, 아이들과 있으면 편하고 동화책 읽는 걸 좋아했고 아이들이 쓴 문집을 즐겨 읽으면서 어느새 동화작가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아이들과 친해지는 비결을 물었더니 애들과 수준이 같아서 애들이 만만하게 여기고 와서 집적댄다고 한다. 그의 책을 읽은 아이들이 보내오는 편지도 많이 받는데, 동화 속의 주인공과 닮아있는 아이들의 친구, 삼촌 등등의 이야기들을 담은 편지들이 그에게는 소중한 선물이다.

2003년에는 국회 앞에서 평화집회를 하던 중, 대전에서 올라온 어린이 독자를 만났다. 그 아이와 얘기하다 인연을 맺게 되었고 계속 연락을 했는데, 그 아이는 자라서 대안학교에 들어갔고, 4대강을 순례하는 청소년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지금은 분쟁지역으로 평화활동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7년 전 박기범 작가의 기분은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그의 동화책을 통해 곳곳에 심어진 씨앗들이 이제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작품은 자신의 삶 곳곳에서의 경험과 인상, 이미지들의 결합체에서 온다. 2008년 출간된 『미친개』는 사실 2003년 바그다드에서 첫 심상을 얻었다. 미군들의 탱크가 몰려오는 상황 속에서 겁에 질려있는 누런 똥개의 눈빛을 보았는데, 그것은 전쟁 속에 희생당하는 모든 생명체의 눈빛이기도 하고, 자신의 눈빛이기도 했기에 뭔가 쓰고 싶었다. 그 후 청와대 앞 길바닥에 누워 평화를 외치면서, 대추리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진창에 빠지면서, 출입국관리소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눈빛을 보면서, 5년 동안 묵히고 묵힌 절규가 고스란히 몇 쪽 안 되는 원고지 속에 담겼다.

“뭔가 궁지로 몰려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내 삶도 하루하루가 이렇게 사는 건 아닌데 하는 그런 고민들이 모아져서 결국 작품으로, 내가 쓰는게 아니라, 그저 쓰여지게 되는 거 같아요.”


내 삶과 내 몸이 평화가 흐르는 통로가 되기를

지금 그가 몰두하는 일은 집짓는 목수일이다. 목수학교과정을 거쳤고 전통 한옥을 공동작업으로 벌써 서너채 지었다. 좀 더 많이 배우고 싶어서 매주 강원도 영월에서 서울까지 올라와서 강의도 듣는다. 어떤 삶의 방향 전환이냐고 물었더니 그답게 머뭇대며 말한다. “제가 그런 결심을 할 인물이 아니어서요… ”

그의 인생에는 스승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 한분이 고 권정생 작가다. 열심히 평화운동하며 돌아다닐 때, 권정생 선생이 “전쟁반대라고 외치고 다니지 말고 집 앞에 땅이 있으면 씨앗뿌리고 농사지어라”라고 하셨단다. 당시에는 그 말이 와닿지 않았고 알아듣지도 못했지만 혹독한 전쟁의 상황을 경험하고 나니 전쟁이 일어난 후에 달려와서 반대하는 활동보다 좀 더 근본적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아무리 전쟁을 반대하고 다닌다 해도, 전쟁으로 이윤을 얻는 세력들은 끊임없이 더 많은 곳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석유전쟁을 반대한다고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주유를 하면 결국에는 그들의 기름탱크에서 사올 수 밖에 없는 거잖아요. 평화란 입으로 말하고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어떤 때는 촛불을 드는 그런 행위 안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내 삶과 내 몸이 평화가 흐르는 통로가 되지 않는 이상, 나는 여전히 안 그런다 하면서도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어떤 식으로든 경쟁을 하려고 하고, 해야 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놓여 있게 되죠. 또는 현실이라는 명목 속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진 것을 대량으로 소비하면 결국 그들의 질서 속에 사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거죠.”

박 작가가 찾은 것은 결국 전쟁의 악순환을 평화의 선순환으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물론 평화활동을 하면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 안에 발견하게 된 길이었다. 고민만하고 용기를 못내 던 중에 직장생활을 접고 목수의 길로 나선 선배의 권유로 2007년 함께 목수일을 배웠다. 그리고 역시 그 분와 함께 강원도 양양의 사잇골에, 자기 힘으로 집짓고 먹거리를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첫 보금자리를 짓게 되었다. 그 이후 전국 곳곳에 그런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으러 다니고 있다. 4월부터는 사잇골에 다른 집을 또 한 채 지을 예정이다.

“저는 제 자신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자판만 두드리는 작가의 모습만 갖고 싶지가 않았어요. 그렇게 하면 제 글이 진실해질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많았어요. 땀 흘려 일하고 몸을 움직여서 일하고 여기에 대해서 무의식처럼 마치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있나 봐요.”

목수일과 더불어 그는 독립 가능한 대안적인 삶을 꿈꾸는 사람들과 토론도 하고 <글과 그림>이라는 동인지도 매월 발행하고 있다. 그의 동화책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해 다음 책에 대한 계획을 물으니, 써 놓은 건 있는데 맘에 들지 않아 3~4년은 걸려야 할 거 같다고 한다. 역시 그다운 대답이었다.

그의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만 보면 동화작가에서 시작해서 평화활동가를 거쳐 지금은 목수이지만 그 중 어느 하나도 분리되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은, 하나의 괘로 연결되어 있는 삶의 진화과정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진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이 들어 있다. 박기범 작가도 그렇지만 우리 중 누구도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가 좀 더 천천히, 오래 그리고 깊게 그 질문의 심연으로 침잠해 들어간다는 것이 존경스러웠다.

박기범 작가를 보며 신영복 교수의 글귀가 떠올랐다. “세상은 우둔한 사람이 바꾸어 나간다.” 느리지만 큰 획을 그어가는 그의 발걸음을 앞으로도 쭉 주목해볼 따름이다.

붉어지는 낯으로 숨을 꾹 참으며 겨우 끝까지 읽기는 했는데인터뷰라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인지,내가 한 이야기와 조금 다르게, 혹은 하지 않은 말들이 있다.그럴 때마다 일일이 해명, 교정할 수야 없는 노릇. 어쩌면 그건 전적으로또렷하게 말해내지 못한잘못인지도 몰라. 으잉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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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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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13 1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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