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비

냉이로그 2010. 7. 15. 04:57

1984 작곡이라 되어 있어서 그 해 쯤 만들어진 옛 노래인가 싶었다. 음이 떨리거나 살짝 끊어지는 것 같은것도, 옛 레코드 판에 실린 그대로라 그런가 보다 싶었다. 그러니 그저 내가 모르고 있던 옛 노래 한 곡을, 그것도 이렇게나 좋은, 듣게 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야. 음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을까 하고는 검색해 따라 들어가서 보니 1984란 이 노래를 부른 팀의 이름, 두 멤버 모두 1984년 생으로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이란다. 어머나, 이런 귀한 보석을.

계속해 돌려들어도 좋다. 지금 시간이 새벽이어서 더 좋은가, 마침 이 새벽 빗방울이 수수 떨어지고 있어 더 좋은가. 현실이구나, 현실이구나, 희망, 꿈, 사랑…….

회색비/ 작사 김정민, 작곡 1984


오늘 하루도 꿈인듯
달콤한 위로의 시간
하지만 새벽녘
내 작은 방에
홀로 누워

현실이구나
이곳이
현실이구나
지금이

현실이구나
이곳이
현실이구나
지금이

눈을 감고서 바랬지
조금은 다른 내일을
달랐지 그저
달랐지 그저

현실이구나
오늘이
현실이구나
지금이

현실이구나
오늘이
현실이구나
지금이

아 아 아
아 아 아

희망 희망 희망 희망
꿈 꿈 꿈 꿈
사랑 사랑 사랑

아하하. 그러나 내가 오늘 아침부터 종일 입에 붙이고 있던 노래는 이런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ㅠㅠ. '태혜정 광경성 ♪ 목현덕 정문순 ♩ 선헌 ♬ 숙예 인의명 신회강 고원렬 ♪♩♬ 선숙혜 목정공 우창공' 푸하하, 이게 뭐냐면 고려시대 왕의 순서들이다. 시험쳐야 할 과목 가운데 국사도 있는데 어쩌다 구한 동영상 강의를 보다 보니 다음 때까지 이걸 외워오라나뭐라나, 산토끼 노래에 붙여서 하라나 어쩌라나.그래서 시키는대로 하자 하고선 샤워실에 들어가 물을 뒤집어 쓸 때도,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할 때도, 빨래를 해다 널 때도 깡총깡총 산토끼가 되어 태혜정광경성목현덕정문순……. 아이구야, 참말로.어쨌든 그러다보니까 얼추 입에 붙기는 했다. 풉.

석 달이 남고 나니 그 동안에는 손도 대지 않던 기본공통과목 준비도 함께 해야 하는데, 그래서 지난 주부터는 아침에 눈을 뜨면 이불 속에서 나오기도 전에 한국건축사 책부터 편다. 그리고는무조건 한 시간 동안 꽥꽥큰 소리로 읽어. 읽을 때는 녹음기를 옆에 켜 놓는다. 이제는세 시간씩 기차를 타거나 아님 동네 한 바퀴산책이라도 할 때면 녹음한 그거를 귀에 꼽는 거다. 아, 웃긴다. 잠에 덜 깬 내 목소리. 한국건축사는 그렇게, 국사는 동영상을 보면서그렇게, 아, 문화재보호법은 어쩐다.아직 거기까지 시간을 낼 형편도 못되고 아무런 대책이 없다. 그거야말로 진짜 벼락치기가 되어야 할 텐데. 머리에 피뢰침이라도 꽂고 지대루 벼락을 쳐야겠는지. 아, 이떨리는 노래를들으며 참 안 어울리는 풍경이다. 어느 새 비가 그쳤나,저 밑에 집에서는 아까부텀 닭 한 마리꺽끼요 꺽끼요 한다. 부지런하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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