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동

감자로그 2017. 4. 18. 18:11

 

 사일오, 그리고 사일육. 누군가는 안산으로, 또 누군가는 팽목으로, 목포신항으로, 그리고 광화문으로, 저마다의 마음을 리본으로 매듭지어 함께 하던 그날, 감자품자네 식구가 삼년 전 그날 함께 하는 건, 제주 시내에 있는 기억문화제 공연장에 함께 하는 거였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공연이었고, 감기와 장염으로 고생한 아가들에게는 그조차 조심스러운 일이긴 하였지만, 이틀 밤을 그 공연장엘 나가 있었어.

 

1. 기억문화제 - 공사일오

 

 

 어린이집 다닌 뒤로 내내 감기에 장염, 또다시 감기로 몸 상태가 좋지 못한 감자는, 이즈음 들어 바깥 나들이를 좋아하질 않았다. 잠깐이라도 어디엘 나가면 "집에, 집에!" 하며 슬픈 얼굴로 집을 가자 하거나, 어디엘 나가려고 내복을 벗기고 옷가지를 새로 입히려면, 싫다고 달아나기 일쑤였다. 그런데, 

 "감자야, 촛불 하러 갈 건데, 감잔 안 갈 거야?"

 하니, 눈이 반짝, 촛불없이 맨 손을 얼굴 위로 들어올리며 아주 좋아했다. 

 "으응, 감자야. 오늘은 이 노란리본이 촛불이야. 여기 감자 옷에도 노란리본 하고 가자."

 감자는 노란리본이 좋았다. 따라하기도 어려운 리본 발음을, 노란니본, 니본 하면서 옷깃에 그것을 만지고 또 만져.

 

 

 품자에게까지 촛불이니 리본이니 하는 말을 해주기는 쉽지가 않아 ㅎ 그저 걱정인 건, 앰프 소리가 엄청나게 울려댈 그 공연장에서 돌박이 아기가 놀라지나 않을까, 싶었던 건데 그게 왠걸. 무대에서 반주가 시작하고 노래가 들려올 때마다 얼마나 좋아하던지. 몸을 앞으로 뒤로 박을 맞추고, 두 팔을 쉼없이 흔들어대며 너무나도 좋아해. 세상에나, 노래 좋아하고 음악 좋아하는 건 감자 형아만 그럴 줄 알았더니, 그 반응으로 치면은 품자를 따라갈 수 없어 ㅎ

 

 

 두 아가가 낮잠을 늦게까지 자는 바람에 공연장엔 시작을 훨씬 지나 도착. 우리가 막 닿았을 땐 강허달림 이모야 노래가 시작할 즈음.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오른 전인권 아저씨. 엄마아빠도 처음이었네. 이렇게 가까이에서, 육성으로 그 목소리, 울림을 듣기로는. 신대철 밴드의 반주 위에서 이게 무슨 노랜가 싶던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그 뒤로 아저씨는 아름다운강산을 시작으로, 이메진을, 걱정말아요그대를, 사노라면을, 미인을, 아임세일링을, 노래를 듣는 게 아니라, 눈앞에서 거대한 지진이라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급이 다르다는 건, 이럴 때 하는 말이겠구나. 노래가 아니라 거대한 장막의 펄럭임, 바닥까지 긁어주는 위로를, 내 언어인 것만 같은 착각에 잠기게 해주는 공감을, 그리고 폭발하는 마음 속 깊은 꿈을.

 

  

 

 신기하기도 하지. 아저씨의 무대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내내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몸을 흔들거나 두 팔을 버두대며 흥을 어쩌지 못하던 품자완 달리, 혹시 지겨운가 싶을 정도로 뚫어져라 무대 앞만 쳐다보던 감자는, 그날 뒤로 "아저씨 노래, 아저씨 노래!"를 찾았다. 집에 돌아와 오디오를 가리키면서 "아저씨 노래, 아저씨 노래!" 하면서 전인권의 노래를 틀어달라 하였고, 그 담날도, 또 그 담날도 집에 음악만 틀려고 하면 "아저씨 노래, 아저씨 노래!"만을 틀어달래. 그동안엔 오디오를 틀려고만 하면 "이모 노래, 이모 노래!" 하거나 "오리 빡빡, 오리빡빡!" 하며 백창우 아저씨의 물오리떼 노래를 틀어달라 했건만. (우리 집에선 오디오를 켤 때 씨디 선택권이 오로지 감자에게만 있ㅠㅠ)

 

 

 공연장의 무대가 고조되어갈수록, 품자는 흥이 더 했다. 한껏 몸을 흔들어 박을 맞추다간 형아를 만지면서 모가 그리 좋은지.

 

 

 

 

 

2. 기억문화제 - 공사일육

 

 

 둘쨋날, 집에서 나설 때도 감자는 "촛불 하러 가자!"는 말에 몸을 벌떡, 신발을 신겨달라, 현관 앞에 서서 들썩였다. 그러더니 전날 옷깃에 달아준 노란 리본을 찾아.

 

 

 이날은, 집에서 좀 더 일찍 나서서 공연 전에 실내에 마련된 작품 갤러리에도 들러, 작가들의 그림 작품들도 보려 하였으나, 갤러리는 제대로 둘러볼 수가 없었다. 어제 앉아서 보았던 반원형 무대의 공연장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 있는 갤러리로 가니까 "촛불, 촛부울!" 하면서 어찌나 울어대던지. 감자는 저 공연장으로 가자고, 어서 촛불 하는대로 가자고, 울음을 멈추지 않아. 아무리 감자에게, 감자야, 거기는 노래 촛불이고, 여기는 그림 촛불이야, 하고 아무리 얘기해주려 해도, 저 공연장이 촛불이라 각인된 감자에게는 그 밖의 다른 어떤 말도 들리지가 않는 것 같아. 공연장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촛불, 촛부울!" 하고 울어대는 통에, 우리는 바로 공연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어 ㅠ

 

 

 심각한 얼굴의 감자와, 마냥 신난 품자.

 

 

 내내 이런 얼굴 

 

 

 무대 위에 오를 밴드들이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품자는 기억팔찌 하나만 갖고서도 이렇게 즐거워.

 

 

 

 

 

 

 

 

 이날 문화제 공연에는 수니 이모야도 무대에 오를 거란 거야 알았지만, 굳이 따로 연락하거나 찾아가봐야지 하지는 않았더랬어. 그런데 우연히도 주영 이모야를 만났지 모야. 그러더니, 공연 마치면은 무대 뒤편으로 꼭 내려오라고, 수니 이모야도 감자랑 품자 엄청 궁금해하며 보고싶어하고 있다며, 약속을 해. 감자야, 수니 이모야도 만나고 갈 수 있겠네. 품자도 오늘은 이모야를 만나고 가겠네.  

 

 

 오랜만에 보는 수니 이모야의 무대. 숱하게 들었지만, 처음 듣는 듯 새롭게 들리던 노랫말들. 고마웠다. 그 무대에 선 수니 이모야가.  

 

 

 기억나니, 감자야. 그토록이나 예뻐해주던.

 

 

 이틀동안, 공연을 보는 내내 꼼짝 않고 자리에 앉아있던 감자가, 혼자서 객석을 걸어다니더니, 

 

 

 

 

 그날로부터 꼭 세 바퀴가 되던 날.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한 아홉의 가족들이 있고, 그날의 진실은 한꺼풀도 벗겨내지를 못하고 있는. 그저 공연이나 보고 있는 것으로 그날의 기억을 하고 있다는 게 못내 편치만은 많아. 그 아픔을 함께 살아내는 것, 그건 무어일지. 네 바퀴가 되고, 또 다섯 바퀴가 될 날들, 그리고 감자품자가 그날 수학여행을 떠나던 언니형아와 같은 나이가 될 날과 그보다 더 훗날들까지도, 그 아픔을 잊지 않고 함께 살아낸다는 건 과연.

 

 이천십칠년 공사일오, 그리고 공사일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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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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