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증이라는 말은 많이들 쓴다만, 왠지 울증이라 하기에는 모자란 것만 같은. 그냥 우울에 젖고 잠겨드는 그것만이 아니라 이상케도 가슴이 잔잔하질 못하고 울렁울렁 출렁이고 찰랑이는. 그렇담 울증말고 울렁증이라 해야 할까. 아님, 렁증이라거나.
십일월부터 애월은 런던 날씨라더니, 런던이란 델 한 번도 가보진 못했지만 정말 그렇다. 뭍에 올라갔다오고나서 부터는, 해가 제대로 뜨는 날이 하루나 되었을까. 지난 주 월요일, 엄마랑 함께 오일장에 나서던 날, 다행스럽게도 그날 하루 해가 반짝, 그게 아니고선 비가 뿌리거나 하늘이 검거나 바람이 불거나 안개가 짙었다.
울증이건 렁증이건, 모든 건 다 이 놈의 날씨 때문이야.
바람이 셀 때는 이렇게나 두꺼운 까페 유리문이 들썩일 정도, 출입문 앞에 진열해놓은 병수 아저씨의 솟대 엽서들이 가을날 가로수 아래 은행잎들처럼 파라락 날아오르곤 했다. 스산이라고 해야 할까, 을씨년이라 해야 할까. 그럴 때마다 렁증은 더 깊어지곤 해.
날씨 때문이었다면 차라리 다행이겠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이 놈의 렁증은 대체 어디에서 온 거일지. 걱정인 게 있어 그런 건지, 조바심이나 조급증을 내는 게 있어 그런 건지, 그것도 아님, 어떤 자존감에 대한 건지, 실은 나도 그걸 잘 모르겠다는 것이 이 놈의 렁증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놓고는 달래가 가볍게 하는 말에도 크게 서운해하면서 다시 또 울증에 숙여지는 고개를 들지 못해.
술때문이었을까.
그래, 많이도 마셨다. 날마다 이벤트였다 싶을 정도로 일들이 많았고, 반가운 이들이, 기다리던 이들이, 보고싶던 이들이 카페엘 다녀갔다. 여덟 해 만에 호범이가 난장이공 카페를 찾아 나타났고, 동생의 내외가 감자를 보러 다녀갔다. 강정엘, 신부님을 뵈러 기차길옆의 큰이모큰삼촌복현이모와 하준이가 아침 첫 비행기로 다녀갔고, 그 다음 날엔 낮은산 큰아빠를 맞았다. 명퇴를 하셨다는 울진의 명희 샘이 다녀갔고. 말랴가 말로만 얘기하던 친구와 함께 다녀갔다. 거르지 않고 마셨고, 많이도 마셨다.
따뜻함까진 아니라도, 맑게 개는 날이 그리워.
햇볕을 쪼였으면 좋겠다. 파란 하늘, 파라디파란 그것을 더 환하게 해주는 햇살. 그 아래에서라면 까닭을 찾기 어려운 이 울렁증이 잠잠해지게 될까. 울렁이 잦아들어 잔잔한 마음이 되고나면 그 아래가 보이게 될까. 무어가 걱정이니, 무어가 두려우니, 무어가 불안하고, 무어에 조바심을 내고 있는지, 아님 그보다 근원이 될 어떤 자의식이 던지는 질문들에, 그로부터 흔들리는 자존감 같은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