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이 비췄다. 그러고 스무 시간 가까이가 지나고 있어. 간헐적인 연습진통. 얼굴을 찡그려보이긴 하지만, 그러나 달래는 평온하다.
감자 엄마‧아빠의 출산계획서
감자의 엄마가 육지에 있는 동안에는 서울에 있는 메디플라워라는 자연출산센터를 다니면서 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남편이 있는 제주에 내려와 감자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마침 이곳에 김순선 원장님이 운영하시는 자연조산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몹시도 반가운 마음이었습니다. 아마도 저희가 원하는 출산방식, 출산과정은 그동안 원장님이 오래도록 아기를 받아온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뿐 아니라 원장님과 몇 차례의 면담을 하기도 하고, 강의를 들으면서 많은 것을 배우며 신뢰하며 의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저희가 바라고 부탁드리는 것은 이미 원장님이 그간 행해오신 방식일 수도 있고, 혹여나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원장님께서 저희의 바람을 존중해 들어주실 수 있는 걸 거라 생각합니다. 다음은 감자의 출산을 앞둔 저희 부부의 출산 계획서입니다. 각각의 희망사항은 저희 부부가 신중하게 생각해 조심스레 결정한 것들입니다. 어쩌면 저희가 세운 계획서의 내용 가운데 어느 부분에서는 원장님의 경험이나 철학과 달라 좀 더 대화가 필요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원장님을 충분히 믿고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마음을 열어 원장님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그러니 저희의 희망사항이 원장님의 방식과 조금 다르다 할지라도 출산 당사자인 저희를 존중해주시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원장님의 의견을 충분히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막상 출산이 진행하면 저희가 희망하고 있던 이러한 생각이나 바람이 조금은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예상할 수 없던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때에는 가급적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출산을 진행하려 합니다. 그러니 저희가 요청하는 다음의 사항들을 존중하고 배려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이 내용은 원장님 뿐 아니라 저희의 출산을 도우며 간여하게 될 분들과도 함께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저희 부부는 최대한 아기와 산모의 자연적인 몸의 흐름에 따라 출산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출산을 위한 몸의 자연스런 호르몬인 옥시토신이나 엔드로핀, 릴랙신, 프로스타글라딘 같은 것의 분비를 방해하는 몸의 긴장이나 불안, 억압의 요소들이 최소화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애초부터 몸의 호르몬 분비를 방해하는 촉진제나 유도제, 무통주사 같은 의료적 처지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 저희는 약물이나 기구의 사용이 아니더라도 인위적으로 진통을 극복하거나 조정하기 위한 어떤 시도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몸이 자연스럽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이 안정될 수 있고, 몸이 이완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도움을 원하고 있습니다. • 아기와 산모가 스스로의 몸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평온하고 고요한 속에서 진통과 출산의 순간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출산을 하러 들어갈 방에는 어둡고 차분한 조명을 할 수 있고, 프라이버시가 보장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진통과 출산의 시간이 길어지게 되는 경우에는 수액 주사를 맞지 않고 물과 간식을 자유롭게 먹겠습니다. 또는 중간에 잠을 자며 휴식을 취하거나 샤워를 하기도, 걷기도 하면서 그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저희의 출산 시간이 다소 길어지더라도 아기와 엄마 몸이 최적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세요. • 진통과 출산의 과정에서 변이 나오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것은 남편이 감당하겠습니다. 저희는 진통이 길어져 산모의 체력이 소진하게 된다면 간단한 식사를 하려 합니다. 물론 저희는 산모가 출산 전 관장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 진통 간격이 다시 늦어지거나 진통이 멈추는 상황이 오게 되면 자연스러운 옥시토신 분비를 위해 부부가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세요. 프라이버시를 보장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 출산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배를 누르거나, 억지로 힘을 주게 하지 말아주세요. 또한 흡입기나 겸자 같은 것으로 아기를 끄집어내는 일 같은 것은 전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희는 억지로 아기를 밀어내려한다거나 끄집어내는 어떤 조치도 원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아기와 산모의 몸이 스스로 결정할 그 순간을 기다리겠습니다. • 출산에 참여하는 이들이 ‘고통’이나 ‘아픔’ 같은 부정적인 말은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산모에게 힘을 주라고 강요하거나 흥분된 목소리로 무언가를 큰소리로 말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아기의 머리가 보이는 순간이 올지라도 그 사실을 산모에게 알리느라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없기를 바랍니다. • 호흡이나 자세 등 산모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주실 때는 평온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해주세요. • 아기 머리가 나오는 단계로 넘어온 이후에도 몸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아기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겠습니다. 저희는 회음절개를 원하지 않으며, 마지막 순간에 아기의 자세에 따라 산모가 자세를 바꾸어가는 것으로 회음부 손상을 최소화하려 합니다. (회음절개가 필요한 경우에는 저희와 충분히 의논해주시기 바랍니다.)
• 감자가 완전히 나온 후에 아기 코와 목에 이물질을 빼내는 조치까지는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 감자가 태어나면 바로 엄마가 안고 있겠습니다. 이때는 서로 살결만으로 안을 수 있게 아기를 다른 것으로 싸지 말아주세요. • 감자가 태어난 순간, 저희는 아기와 교감을 나누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싶습니다. 이 시간을 최소한 두 시간 이상을 가지면서 태반을 내보내는 후산을 자연스럽게 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감자와 처음 만나는 이 순간을 방해받거나 재촉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기의 키와 몸무게를 재거나 씻기는 것과 같은 통상적인 절차는 이 교감의 시간을 충분히 보낸 뒤로 미루겠습니다. • 감자가 태어나 엄마 품에서 젖을 물어 초유를 먹게 될 때 모유수유를 위한 도움이나 조언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탯줄은 태맥이 완전히 멈춘 뒤에 자르겠습니다. 아기를 낳고 엄마 가슴에 안고 있는 동안에도 아기가 스스로 호흡할 수 있을 때까지 태반에서 산소를 계속 공급받게 해주고자 합니다. 그러니 태맥이 멈추기 전에는 탯줄을 꽉 집어놓거나 자르려고 하지 말아주세요. 태맥이 멎은 뒤 그 뒤의 일들을 하겠습니다. • 태반을 내보내는 후산의 과정 역시 저희는 자연출산과 동일한 방식으로 하겠습니다. 태반을 빼내려고 탯줄을 잡아당기지 말아주세요. 자궁의 수축으로 태반이 자궁벽에서 헐거워져 완전히 떨어질 때 자연스럽게 후산을 마무리지을 수 있게 해주세요. • 출산 직후 감자 몸을 뒤덮고 있을 태지는 닦아내지 않겠습니다. 태지는 아기 피부 속으로 스며들도록 그대로 둘 것이며, 피부로 흡수되지 않은 태지는 아기를 목욕시킬 때 적당히 씻어내겠습니다. • 출산 직후 아기와 함께 있는 방은 밝은 빛을 피할 수 있게 해주세요. • 저희는 감자에게 예방접종을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통상적으로 갓 태어난 아기 눈에 연고를 넣는다고도 하는데, 그러한 것도 저희는 원하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꼭 필요한 의료적 조치가 있다고 보여질 때는 저희에게 충분히 설명해주시고, 의논할 수 있게 해주세요.
감자를 맞이할 엄마 남현선, 아빠 박기범 올림 |
(진작 써놓았어야 했는데, 아직 더 시간이 남았을 거라며, 미뤄두고 있다가 이제야.)